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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프랑스 국조 사라 모친 마들렌의 비밀-마들렌 성당과 생 막시맹 봄므 바실리끄 석관묘 및 봄므 산 석굴 은거지

프랑스 국조 사라 모친 마들렌의 비밀-마들렌 성당과 생 막시맹 봄므 바실리끄 석관묘 및 봄므 산 석굴 은거지

 



파리 시내중심에 파리의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그 옆에

막달레나의 프랑스식 이름 마들렌을 딴  마들렌 거리가 있다.

마들렌 거리에는 마들렌 역과 막달라 마리아 신전인 <생뜨 마리 마들렌 신전> 성당이

세종문화회관  스케일로 우뚝 서있다.

왜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창녀로 알려져 있던 막달레나 신전이 서 있을까?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직계후손인 프랑스인은 바티칸이 창녀로 매도한 것 즉 예수의 수석 사도로서

초대교회 성립의 첫 복음 선포자로서 막달라 마리아가 차지해야 했던 첫 교황자리를 빼앗은

베드로를 비롯한  바티칸 교황청의 종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세 아비뇽의 유수를 비롯한 피튀기는 바티칸과 프랑스의 싸움은  바로 직계혈통 민족과

여성인 막달레나의 종통을 삭제시킨 남성 사제집단으로서 종권을 쥔 바티칸과의 종통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 한복판에 마들렌 신전을 세운 것은 바티칸이 창녀로 매도한 데 대하여

보아라!

우리는 누가 뭐래도 자랑스런 聖 마들렌의 후손이라는 프랑스의 단군신전같은 것이다!

이 한가지 만으로도 서울의 한복판에 국조단군 신전조차 못세우는 대한민국보다는 프랑스의 민족 자존감이 한 수 위임을 증명한다!





 



파리중심부의 막달라 마리아 신전 생뜨 마리 마들렌 신전 성당


              


스페인 접경의 보르도 아래 뚤루즈 밑 렌느  르샤또 지방Rennes le Chateau.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소니에르 신부의 막달레나의 고증 그리고 막달레나 직계후손임을 주장하는 플랭타르의 고백. 이에대한 보수 기독교계의 부정. 그러나 이러한 한가지 사실에 대한 진위여부는 그 자체로 진부한 것이다. 프랑스에는 막달레나에 대해 렌느 르 샤또의 소니에르 신부와 관련한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가 현실로 존재하기때문이다.


신라경순왕 덕주공주는 월악산에서 마애미륵불을 조성하고 평생 수행하다 그곳에서 죽었다. 마의태자도 함께 마애불을 조성하고 금강산으로 떠나 불도를 닦다 생애를 마감했다. 막달레나는 동생 마르타, 나사로와 마르세이유  좌측 옆 ‘쁘띠 론(Petit-Rhone)’ 강 입구인 지금의 까마흐그Camargue에 있는 해변 소도시 ‘생뜨 마리 드 라 메흐(Sainte Mary de La Mer)’에 상륙했다는 내용이 프로방스 모든 전승에 나타난다. 마르세이유 옆 ‘생뜨 마리 드 라 메흐(Sainte Mary de La Mer)' 해변에 도착해 생 막시맹 라 생뜨 봄므, 렌느 르 샤또 등 프로방스 전역을 순례한 마들렌은 마리아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던  ‘생 막시맹 라 쌩뜨 봄므(Saint-Maximin-la-Sainte-Baume)’ 의  ‘라 생뜨 봄므la Sainte Baume) 산 동굴에서 기도와 수행의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석관무덤은 이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하며 막달레나-프랑스 名 마리 마들렌은 마르세이유 생 빅토르 사원 Basilique St. Victor 지하무덤 까따꽁브(카타콤베) 석관무덤에도 누워있는 것으로 전한다. (나사로 석관무덤도 함께)


 


92-3년무렵 배낭여행 중 파리 중심가 오페라 역에 내려보니 마들렌 거리가 있었다. 마들렌 거리는 파리의 중심 문화거리로 옆에 샹젤리제 거리와 콩코드 광장이 바로 옆에 있는 파리의 가장 중심부이다. 다리가 아파 길가에 서서 커피 음료한잔을 마시며 보니 막달레나 신전이 웅장하게 서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무엇때문에 성경속의 허구많은 인물중에 창녀로 일컬어지는 막달라 마리아 건물을 저렇게 웅장하게 지어놓았을까 하고 상념에 잠긴 인상깊은 추억이 있다. 그 뒤에 한국에 돌아와 신의 무덤이란 툼오브 갓이란 영어원서를 보며 렌느 르샤토와 템플기사단의 관계를 알게 되고 프랑스 민족의 국조 사라가 막달라 마리아의 딸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프랑스 하면 세계의 그 어느민족보다도 민족 자긍심이 높은 나라로 모국어 프랑스어에 대해 최고의 자존심을 가진 나라로 정치인이 공식적인 칸훠런스에서 불어를 안쓰고 외국어를 쓰면 다음부터는 기용을 하지 않을 정도로 모국어의 정책적 배려가 깊은나라라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박근혜처럼 대통령 위치에서 미국가서 영어로 연설하고 중국가서 중국어로 하면 곧바로 국민모독으로 국회에서 탄핵감이 된다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위의 사진은 브르고뉴(프랑스 중동부(독일경계))  베즐레 생뜨. 마들렌 신전 성당 < (Vézelay. 생뜨 마리 마들렌)-Sainte-Marie-Madeleine de Vézelay>-이다. 프랑스 중동부(독일경계) 브르고뉴지방은 중세 클뤼니 수도원(10세기)을 중심으로 성직자 개혁운동의 중심으로 십자군전쟁을 주장한  우르반2세 등 교황을 배출한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한곳이다. 당연히 프랑스 국민의 종교적 성지가 브르고뉴 지방이다. 이곳에 마르세이유에 안치된 막달라 마리아, 마들렌의 유해 일부를 모셔다가(마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한반도 곳곳에 모시는 명산대찰들 처럼) 신전을 지어 모셨으니 그곳이 바로 브르고뉴 베즐레 생뜨. 마들렌 신전 성당 < (Vézelay. 생뜨 마리 마들렌)-Sainte-Marie-Madeleine de Vézelay>-이다.  참고로 성인추대된 종교적 인물은 성인 성聖에 해당되는 세인트(Saint)를 쓰는데 프랑스발음은 "생"이고 남성에게는 생을 쓰고 여성에게는 여성명사에 붙이는 e를 덧붙여 생뜨(Sainte)라 발음한다.-위 사진은 2차, 3차 십자군전쟁 출정시 모든 지휘관이 모여 마들렌에게 승리를 축원한 베즐레 마들렌 신전 사진이다.


 


 


 


사실 프랑스 모든 국민은 바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도들로서 예수의 직계 혈통의 민족이니 얼마나 자부심이 컸겠나? 당연히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인 차원에서  이 사실을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예수의 공생애를 함께하고 로마병정이 무서워 도망가 숨은 12사도와 달리 십자가 처형에 함께 했으며 무덤속에서 부활을 목격하고 12사도에게 최초로 복음전파를  한 유일한 초대 교황자격을 가진 사람이 바로 막달레나였다. 하지만 예수 살아생전부터 그녀를 질투한 베드로를 비롯하여 바울 등 남성 교권주의자들은 교권을 차지하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을 영지주의(Gnosis)로 매도해 탄압한 것이 기독교 종통에 숨겨있는 구린 역사다. 유대인이 예수의 혈통이라지만 프랑스 민족만큼 직계혈통은 아니다. 프랑스는 회교로 비유하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혈통을 직접잇는 정통 칼리프 혈통이기때문이다. 바티칸의 남성교권주의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잘라내 창녀로 만들고 예수의 수석제자였던 그녀의  복음을 영지주의로 도려내고 프랑스와 바티칸이 피튀기는 전쟁을(카놋사의 굴욕에 대한 복수와 아비뇽유수) 한 것 역시 바로 이러한 프랑스의 자존심과 바티칸의 권력유지에 대한 현안때문이었다.


막달라 마리아(프랑스식 발음 마들렌), 여동생 마르타, 남동생 나사로(프랑스 이름 생 라자르:파리에 생. 라자르 역이 있다) 셋이 바울 베드로 등 남성


사도 및 남성 교권 권력을 피해 배를 타고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항에 도착한다.


 


베다니 마을의 가나안 혼인잔치는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결혼식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여동생 마르타(마르다)와 남동생 나사로. 예수는 나사로를 죽음 속에서 살리고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행한다. 유대인은 랍비라는 칭호를 받는 예수에 대해 전통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랍비라 불리지 않는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구약의 멜기세덱처럼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는 의식을 거행한다. 막달라 마리아 가족은 남성 사제권력의 탄압을 피해 남불 프로방스로(마르세이유) 도망가 막달레나의 딸 사라는 프랑스 최초 메로빙가 왕실의 국조가 되고 나사로는 이곳 마르세이유 켈트교 대주교가 된다. 프랑스 파리의 중심 샹젤리제 거리 뒤 콩코드 광장 뒤에 막달레나 거리가 있다. 막달레나를 프랑스 이름으로 마들렌이라 하여 마들렌 거리라 이름하고 루이 18세가 가장 크고 장엄한 <생뜨(聖) 마리(마리아) 마들렌(막달레나) 에글리즈(사원)>라 명명해 프랑스 국조인 사라 모친(단군성조 모친격인 웅씨왕녀) 마들렌에게 봉헌했다.


 


 프랑스 민족 자존심의 근원으로 성스러워야 할 국조의 모친이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에 의해 A.D. 591년 회개한 창녀로 온 누리에 공포되었으니 그 이후 1500여 년 동안 프랑스인의 민족 자존심이 얼마나 처참하게 구겨지고 상처받았을지 가히 불문가지이다."막달라 마리아" Maria Magdalena 는 예수의 발에 3번이나 향유를 바르며 사랑하는 수석 애제자가 되었다.마르세이유의 생뜨 마리 드 라메르에 상륙한 "성녀 막달라 마리아"는 이곳 마르세이유 생 빅토르 사원 Basilique St. Victor 지하무덤  까따꽁브 (카타콤베)에 누워있다. (나사로 석관무덤도 함께) 마리아 막달레나는 남성 교부세력의 핍박을 피해 동생인 마르타, 나사로와 함께 이 항구 마르세유 에 상륙해서는 인근 프로방스 지방의(렌느 르샤또) 동굴에서 30년간 참회의 고행을 행하였다고 한다.


 


 마르세이유를 비롯 남프랑스 프로방스 전역에서는 매년 2월 2일에 막달라 마리아를 기리는 의식이 축제 처럼 대대적으로 행해진다. 성유물인 막달라 마리아의 신체 일부는 서기 860년에 비엔 백작 제라르 드 루시용이 마르세이유 생 빅토르 사원 Basilique St. Victor 지하무덤 까따꽁브(카타콤베)로 부터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지방 베즐레 마을로 옮겨 <베즐레 생뜨 마리 마들렌 (Vézelay. 생뜨 마리 마들렌)-Sainte-Marie-Madeleine de Vézelay>-약칭 <라 마들렌> 이라는 성당을 건축했는데 마리아는 발끝까지 닿는 탐스러운 머리를 갖고 향유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내진다. 죽은후 천사에 의해 중천 높이 올려졌으니 “막달라의 마리아 승천” 이라는 그림이 나폴리의 카포디 몬테 미술관에 있다.  1,190년 7월 영국왕 리차드와 프랑스왕 필리프가 제3차 십자군 전쟁 출정식을 한 곳이 베즐레 라 마들렌인데 그전인 프랑스왕 루이 7세가 제2차 십자군 전쟁 출정식을 한 도시도 베즐레 이다. 이는 프랑스 국조이자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 에게 출정식을 고한 것이다. 루이 18세는 파리 콩코드 광장 뒤 마들렌 거리에 <생뜨 마리 마들렌 에글리즈> 소위 막달라 마리아 신전을 당대 가장 웅장하고 호화롭게 지어 프랑스 국조인 사라(단군성조 위격)의 성모 막달라 마리아(단군성조 모친 웅씨왕녀)에게 봉헌한  바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두개골이라는 성유물이 프로방스의 소도시 생 막시맹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 성당은 성 루이 9세의 외투도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지금의 까마흐그Camargue에 있는 생트마리드라메흐에 상륙했다는 내용이 모든 전승에 나타난다.프랑스는 그들 민족혈통의 뿌리역사를 기리기 위해 막달레나가 바다에 도착한 곳을 "성 막달레나가 도착한 바다"라는 뜻의  "생뜨 마리 드 라 메흐"란 도시이름을 지어 기억하게 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프랑스 국모의 모친으로서 남불 프랑스 곳곳에 자취를 남기고 나중에 아래 사진인 생트봄 산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한다.


마들렌(막달라 마리아)이 평생 수행기도한 남불 은거지 ‘그로뜨 생뜨 마리 마들렌(Grotte Sainte Marie Madeleine)-라 생뜨 봄므(la Sainte Baume)’ 산 동굴


막달라가 상륙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큰 도시 아를르(비제 아를르의 여인)는 이시스 숭배의 중심지였다. 이 곳은 늪이 많이 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가 처음 1세기 내에 프로방스 지방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1279년 12월 9일에 프로방스의 백작 샤를 2세 당주(르네 당주의 선조)가 성 막시미노 성당의 지하묘실에 매장되어 있던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한다.

샤를은 그 지역 대주교와의 비밀 회동에서 그 계획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성 막시미노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베네딕토회 대신 도미니크 스도회를 그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 도미니크회는 그 자리를 넘겨받지 않을고 했지만, 결국 교황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도미니크회의 단장 그리고 교황과 왕의 대표단들이 방문하자 지역주민들이 격력하게 저항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샤를은 이들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내야만 했다. 이 사건에서 한 가지 이상한 결말은 도미니크회가 1279년에 막달라 마리아를 그들 수도회의 '딸, 자매 그리고 어머니'로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르네 당주는 생트마리드라메흐에서 (분명히 막달라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을 하였다. http://cafe.daum.net/cjwhc/1nxV/8335?q=Alpha%20Galates&re=1




프랑스 최초 왕조 메로빙가 왕조 시조 사라는 흔히 얼굴이 검어 프랑스에서 흑인이라 말해지고 있다. 튀니지 사람은 원래 알파벳을 만든 페니키아인으로 중동, 지중해의 상권을 주도해 번영한 포에니 족이다. 그만큼 중동에는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았고 셰익스피어 4대비극 오델로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바로 포에니인 셈족계의 흑인이다. 비록 피부가 검었지만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던 술람미 여인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프로방스(남프랑스) 생 막시맹 市의 생 봄므 바실리카 성당에 모셔진 마들렌(막달라 마리아) 상도 딸인 프랑스 국조 사라처럼 흑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남프랑스) 생 막시맹 市는 마들렌(막달라 마리아)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성전 제단중앙에 모셔진 막달라 마리아의 진신 해골성체와 지하묘굴의 대리석 석관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 처형시 쓴 것으로 주장되는 '가시 면류관'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다음 사진은 생 막시맹 市 생 봄므 바실리카 성당에 모셔진 마들렌(막달라 마리아) 상과 지하 묘굴의 석관이다.








2012년 9월 18일, 로마에서 열린 국제 콥틱학회에는 300여 명의 학자와 기자들이 마음을 졸이며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단에 올라온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요, 초대교회 연구의 권위자인 카렌 킹이었습니다. 그는 유리판 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워 보존한 고대 기록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 옛사람들은 갈댓잎을 펴 붙여서 그 위에 글을 쓰곤 했습니다. 이를 파피루스라고 합니다.

카렌 교수가 보여준 파피루스에는 놀라운 한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 아내… 그녀는 제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Gospel_Jesus_Wife.jpg


겨우 여덟 단락에 불과한 짧은 쪽지 조각에 사람들은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내 아내”라는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카렌 킹 교수는 이 파피루스가 어떤 복음서의 부분이었을 것으로 생각했고, 기억하기 쉽도록 “예수의 아내 복음서”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이 표현은 예수님이 결혼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복음서도 그런 기록을 담지 않습니다. 카렌 교수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이 파피루스 쪽지의 진위를 두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적인 결과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위조라는 설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카렌 교수는 이 파피루스가 진짜이며, 예수님과 그 주변의 여인들을 이해하는 데 큰 단서가 된다고 여전히 주장합니다.주낙현 요셉 신부

-cheramia-


 





마르세이유 빅토르 신전과 지하 까따꽁브 지하무덤-이상 cheramia-


 


Notes on a Strange World


Massimo Polidoro


Skeptical Inquirer Volume 28.6, November / December 2004



What if the Holy Grail, the San Greal, was not the legendary and elusive cup that held the blood of Christ dying on the cross but was itself a blood, or a bloodline, a “sang real,” a “royal blood?” The idea, suggested for the first time in Holy Blood and Holy Grail, a 1982 book by British journalists Henry Lincoln, Richard Leigh, and Michael Baigent, is at the core of Dan Brown’s bestseller The Da Vinci Code.


Lincoln and his colleagues suggested that the “royal blood” is that of Jesus Christ, who did not die on the cross but survived the ordeal, married Mary Magdalene, had a child, Sarah, and the bloodline secretly survived and continued for 400 years, up to the Merovingian dynasty of the Franks of dark-age Europe. Jesus died an old man in France, where he fled with his family to escape prosecution from Peter and the Apostoles, and was buried near a little town on the Pyrenees, Rennes-le-Château.


This amazing story was supposedly kept secret for two millennia by the Priory of Sion, a mysterious sect that is said to have also founded the Order of the Templars. Notwithstanding the secrecy, clues to this concealed story were scattered throughout the centuries by some initiates belonging to the Priory, such as Leonardo da Vinci, [1] Isaac Newton, Victor Hugo, and Claude Debussy. This is how Lincoln and friends have been able to reassemble the story, uncoding hidden names, enigmas, wordplays, and hints hidden in various paintings.


But is this all true?


In order to better understand the story, I visited the remote town of Rennes-le-Château (RLC) on the Pyrenees last July.


The Legendary Treasure


The story of the RLC myth starts in 1969, when Henry Lincoln read a thriller by French author Gérard de Sède, titled Le trésor maudit (The Cursed Treasure). In the fictional story, the treasure of the title had been found around 1891 by the priest of RLC after he deciphered some old documents hidden in the local church.


The priest was Bérenger Saunière, who had been the priest of RLC since 1885. RLC sits on top of a hill, about 40 kilometers from Carcassonne, in France.


The church, dedicated to Mary Magdalene, was almost in ruins when Saunière arrived in RLC. Having raised some money, the priest started restoration around 1887. From here on, facts are few and fantasy creeps in. According to legend, by moving a heavy stone that served as the altar, Saunière found that one stone pillar supporting the slab was hollow and contained four parchments. Two of them detailed a genealogy, while the other two presented enigmatic writings that, once deciphered by experts in Paris, allowed Saunière to obtain some very strange messages.


One of the most important ones was the following: A Dagobert II Roi et a Sion est ce tresor et il est la mort (“To King Dagobert II and to Sion belongs this treasure, and he is dead there”).


While in Paris, the priest bought reproductions of a few paintings, including Nicholas Poussin’s The Shepards of Arcadia. The painting, dated 1640, shows some people standing close to a sarcophagus holding the inscription: Et in Arcadia Ego (“And in Arcadia, I”). It was said that the sarcophagus really existed near Rennes-le-Château and was identified by matching the mountain profile on the painting with the real one.


Meanwhile, work at the church continued, and another stone slab was found under the floor, but only Saunière had access to it and could see what was behind it. From that moment on, the priest began long and secretive searches of the surrounding area, and after that, the restorations started once again. This time, however, funds seemed limitless, and Saunière used them to buy land and to build a number of constructions around his parish church, including a bizarre “Tower of Magdala” honoring Mary Magdalene. He also filled the church with mysterious statues and had various Latin inscriptions written all around the place, including one at the entrance of the church which reads: Terribilis est locus iste (“This place is terrifying”).


Where did Saunière’s riches came from? According to Lincoln and colleagues, Saunière found a treasure that included much more than valuable antiquities. Buried in Rennes-le-Château were documents confirming that Jesus Christ had come to live in France with his family and that his child initiated a dynasty which eventually became known as the Merovingian Kings of France.


One of the secret messages stated that the “treasure,” (meaning the secret of the bloodline) belonged to King Dagobert II, a Merovingian, and to the Priory of Sion. “And he is dead there,” then, may indicate the presence of a sepulchre containing the body of Christ. Such a tomb, it was reasoned, was the one painted by Poussin, since the phrase Et in Arcadia ego could be anagrammatized: I! Tego arcana dei, meaning: “Go away! I hold the secrets of God.”


With such notions in hand, Saunière could have turned Christianity on its head and inspired a whole new interpretation of world history. So why not use it to blackmail the Vatican and obtain wealth by these means?


Decoding the Enigma


But this, as I said, is the legendary version of the story. The facts are quite different, and I had the opportunity to verify this during my trip to RLC. The hollow pillar that contained the parchments, for example, is still preserved in the museum of the village, and you can see that it is not hollow at all but has only a very small hole (the size of a CD box), where no parchments could be hidden. Saunière’s trip to Paris may be another invention, since no proof of it exists.


 


              


 




 


 


 





몽세귀흐Montségur.렌느 르 샤또의 보물들은 솔로몬 신전이나 인근의 까르까손느 또는


몽세귀흐Montségur로 옮겨졌다. http://www.bibliotecapleyades.net/merovingians/merovingios_renneschateau02.htm




 




As to the sepulchre painted by Poussin, thanks to my colleague Mariano Tomatis I was able to locate the exact spot where it was said to exist. However, such a tomb did not exist when Poussin created his painting in 1640, because the tomb was built in 1933. It is true that it resembled the one in the painting, but it also resembled the dozens of similar tombs scattered around the area. After continuous invasions by treasure hunters, the tomb was destroyed in 1988. Furthermore, the profile of the mountains in the painting bears only a slight resemblance to similar mountains around the area.


Other enigmas have simpler solutions. The inscription that reads, “This place is terrifying” actually is a biblical quotation (Genesis 28:17) meaning “This place is wonderful.” (The complete phrase is: “How dreadful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but the House of God, and this is the gate of Heaven.”


Another inscription that appears at the base of a crucifix, “Christus A.O.M.P.S. Defendit,” had been translated by some as Christus Antiquus Ordo Mysticusque Prioratus Sionis Defendit (“Christ defends the ancient mystical order of the Priory of Sion”). In reality, that is a common phrase used in some Catholic inscriptions, like the one in Rome on Pope Sisto V’s obelisk: Christus Ab Omni Malo Plebem Suam Defendat (“Christ defends his people against every evil”).


While no documents and no secrets were discovered, however, it is true that the priest found some valuable artifacts during restorations of the church. He noted such a discovery in his notebooks and tried to keep it secret in order to sell the objects and raise money. He also started to excavate the church’s surroundings, hoping to find more.


Is this, then, the true and only source of Saunière’s wealth? Actually, there was something else. Rumors had spread around of Saunièr’s spending attitudes, and the local Catholic bishop investigated the matter, concluding that the priest had made his money from “trafficking in Masses,” a quite common wrongdoing among nineteenth and early-twentieth-century priests. In the Catholic Church, Masses can be celebrated for the benefit of a specific soul, in the hope of helping a deceased loved one to ascend from Purgatory into Heaven. Masses can also be said for a specific aim for the benefit of living persons (for instance, for healing purposes). Prior to Vatican II, priests received a stipend for each Mass they said. “Trafficking in Masses” meant, in practice, that priests advertised their willingness to celebrate a great number of Masses for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Advertising in this way was regarded as a kind of unfair competition with other priests and was condemned by the Church. The matter became even worse, of course, when priests failed to celebrate the Masses requested, despite having received the appropriate payment.


The bishop traced advertisements placed by Saunière in Catholic magazines throughout France, and even abroad, and quickly determined that he could not possibly have celebrated all the Masses he had received payments for, thus in fact defrauding his “clients.”


In 1909, the Bishop asked Saunière to leave RLC; the priest refused and was suspended from his priestly duties and privileges, thus ending his ecclesiastical career. He died in 1917 and left all his belongings to his housekeeper, Marie Denarnaud.


The Would-be King


Polidoro and Madgala

Now another question remains to be answered: Who invented such an incredible story? As usually happens in every thriller, the culprit is almost always the one who stands to gain from the crime. Though there is no crime here, there could have been, and the perpetrator would have been one Pierre Plantard.


Plantard was an anti-Semite and the leader of a minor occult, right-wing organization known as Alpha Galates. His scheme was quite ingenious and complex. He had the parchments made by an artist friend, Philippe de Cherisey; then, he passed them on as real to Gérard de Sède, to whom he also told the invented story of Saunière’s findings.


Plantard also invented the Priory of Sion in 1956 and created fake manuscripts and documents that linked the Priory to RLC and deposited them at the National Library in Paris, where he suggested Lincoln and friends go to look for important discoveries.


But why go to all this trouble? All this and more was necessary in order to demonstrate not only that Plantard was the current Grand Master of the elusive Priory but also that he was the last descendant of the Merovingians. This meant that he was the current vessel of Christ’s holy blood and, above all, the heir to the throne of France as its legitimate king.


The scheme did not work out, however; there were no descendants after Dagobert II, and there were no living Merovingians pretenders to the throne that fell with Louis XVI. Plantard’s fake geneology quickly dissolved under close scrutiny.


As Umberto Eco wrote in his novel Foucault’s Pendulum, “Believe that there is a secret and you will feel an initiate. It doesn’t cost a thing. Create an enormous hope that can never be eradicated because there is no root. Ancestors that never were will never tell you that you betrayed them. Create a truth with fuzzy edges: when someone tries to define it, you repudiate him. Why go on writing novels? Rewrite history.” And this is exactly what Pierre Plantard and his followers tried to do.


Note



  1. His name was Leonardo; “da Vinci” is not his surname but a reference to the place were he was born, meaning “from Vinci.” So does the title of Dan Brown’s book mean that the code relates to the little town of Vinci?


Massimo Polidoro


Massimo Polidoro's photo


Massimo Polidoro is an investigator of the paranormal, author, lecturer, and co-founder and head of CICAP, the Italian skeptics group. His website is at www.massimopolid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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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세귀흐Montségur.렌느 르 샤또의 보물들은 솔로몬 신전이나 인근의 까르까손느 또는


몽세귀흐Montségur로 옮겨졌다. http://www.bibliotecapleyades.net/merovingians/merovingios_renneschateau02.htm




 


 


 


As to the sepulchre painted by Poussin, thanks to my colleague Mariano Tomatis I was able to locate the exact spot where it was said to exist. However, such a tomb did not exist when Poussin created his painting in 1640, because the tomb was built in 1933. It is true that it resembled the one in the painting, but it also resembled the dozens of similar tombs scattered around the area. After continuous invasions by treasure hunters, the tomb was destroyed in 1988. Furthermore, the profile of the mountains in the painting bears only a slight resemblance to similar mountains around the area.


Other enigmas have simpler solutions. The inscription that reads, “This place is terrifying” actually is a biblical quotation (Genesis 28:17) meaning “This place is wonderful.” (The complete phrase is: “How dreadful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but the House of God, and this is the gate of Heaven.”


Another inscription that appears at the base of a crucifix, “Christus A.O.M.P.S. Defendit,” had been translated by some as Christus Antiquus Ordo Mysticusque Prioratus Sionis Defendit (“Christ defends the ancient mystical order of the Priory of Sion”). In reality, that is a common phrase used in some Catholic inscriptions, like the one in Rome on Pope Sisto V’s obelisk: Christus Ab Omni Malo Plebem Suam Defendat (“Christ defends his people against every evil”).


While no documents and no secrets were discovered, however, it is true that the priest found some valuable artifacts during restorations of the church. He noted such a discovery in his notebooks and tried to keep it secret in order to sell the objects and raise money. He also started to excavate the church’s surroundings, hoping to find more.


Is this, then, the true and only source of Saunière’s wealth? Actually, there was something else. Rumors had spread around of Saunièr’s spending attitudes, and the local Catholic bishop investigated the matter, concluding that the priest had made his money from “trafficking in Masses,” a quite common wrongdoing among nineteenth and early-twentieth-century priests. In the Catholic Church, Masses can be celebrated for the benefit of a specific soul, in the hope of helping a deceased loved one to ascend from Purgatory into Heaven. Masses can also be said for a specific aim for the benefit of living persons (for instance, for healing purposes). Prior to Vatican II, priests received a stipend for each Mass they said. “Trafficking in Masses” meant, in practice, that priests advertised their willingness to celebrate a great number of Masses for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Advertising in this way was regarded as a kind of unfair competition with other priests and was condemned by the Church. The matter became even worse, of course, when priests failed to celebrate the Masses requested, despite having received the appropriate payment.


The bishop traced advertisements placed by Saunière in Catholic magazines throughout France, and even abroad, and quickly determined that he could not possibly have celebrated all the Masses he had received payments for, thus in fact defrauding his “clients.”


In 1909, the Bishop asked Saunière to leave RLC; the priest refused and was suspended from his priestly duties and privileges, thus ending his ecclesiastical career. He died in 1917 and left all his belongings to his housekeeper, Marie Denarnaud.


The Would-be King


Polidoro and Madgala

Now another question remains to be answered: Who invented such an incredible story? As usually happens in every thriller, the culprit is almost always the one who stands to gain from the crime. Though there is no crime here, there could have been, and the perpetrator would have been one Pierre Plantard.


Plantard was an anti-Semite and the leader of a minor occult, right-wing organization known as Alpha Galates. His scheme was quite ingenious and complex. He had the parchments made by an artist friend, Philippe de Cherisey; then, he passed them on as real to Gérard de Sède, to whom he also told the invented story of Saunière’s findings.


Plantard also invented the Priory of Sion in 1956 and created fake manuscripts and documents that linked the Priory to RLC and deposited them at the National Library in Paris, where he suggested Lincoln and friends go to look for important discoveries.


But why go to all this trouble? All this and more was necessary in order to demonstrate not only that Plantard was the current Grand Master of the elusive Priory but also that he was the last descendant of the Merovingians. This meant that he was the current vessel of Christ’s holy blood and, above all, the heir to the throne of France as its legitimate king.


The scheme did not work out, however; there were no descendants after Dagobert II, and there were no living Merovingians pretenders to the throne that fell with Louis XVI. Plantard’s fake geneology quickly dissolved under close scrutiny.


As Umberto Eco wrote in his novel Foucault’s Pendulum, “Believe that there is a secret and you will feel an initiate. It doesn’t cost a thing. Create an enormous hope that can never be eradicated because there is no root. Ancestors that never were will never tell you that you betrayed them. Create a truth with fuzzy edges: when someone tries to define it, you repudiate him. Why go on writing novels? Rewrite history.” And this is exactly what Pierre Plantard and his followers tried to do.


Note



  1. His name was Leonardo; “da Vinci” is not his surname but a reference to the place were he was born, meaning “from Vinci.” So does the title of Dan Brown’s book mean that the code relates to the little town of Vinci?


Massimo Polidoro


Massimo Polidoro's photo


Massimo Polidoro is an investigator of the paranormal, author, lecturer, and co-founder and head of CICAP, the Italian skeptics group. His website is at www.massimopolidoro.com.


 


 


Marie-Madeleine


Publié le par kate.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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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attendant la publication (très très longue) de la fin de nos aventures vénitiennes, une petite mise en bouche de tableaux collectés à Venise et ailleurs.


Collectionneurs infatigables, nous avons commencé une nouvelle quête : les images de Marie-Madeleine. Nous faisons donc appel à nos lecteurs pour nous aider à recueillir les représentations de la belle pécheresse. Évidemment, les images insolites sont les plus prisées... Pour l'instant, notre préférence va à celle qui est ci-dessus. Regardez attentivement le personnage qui se trouve debout derrière le Christ. Observez son regard lubrique et sa main droite qui... qui... eh oui !!!   Imaginons la scène quelques secondes plus t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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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 voir les autres, c'est ici


 


reliques marie-madeleine


 


Pour être plus sérieux, je vous confie l'histoire des restes de Marie-Madeleine, qui, comme tout le monde le sait préside au destin de Vézelay. La crypte de la Basilique possède une châsse où seraient les saintes reliques dont voici l'histoire, contée par Édith de la Héronnière (Vézelay, l'esprit du lieu) :


 


마들렌의 유해는 사라센이 프랑스의 중앙을 쇄도해 와서 신전(성당)을 황폐화시켰을때 프로방스의 생(聖). 막시맹 꼬뮨(카운티, 동리 등 행정구역)에 있는 설화석고(백대리석) 석관 안에 안치되어 안식중이었다. 막달라 마리아의 묘는 페허가 된 지하 속에 묻혀 휴식을 취했다. 그 시절에 그것은 대 수도원 중에서 마들렌 석관의 위엄있는 성유물로써 명망을 돋보이는 역할을 해냈다.


"Le corps de la Madeleine reposait dans un sarcophage d'albâtre(설화석고;백대리석 석관) à Saint-Maximin de Provence losque les Sarrasins déferlèrent sur le Midi de la France et dévastèrent l'église. Le tombeau resta enfoui dans la crypte sous les ruines.


À cette époque, il fallait à tout grand monastère des reliques prestigieuses(화려한,위엄있는 성유물) pour rehausser sa renommée. Un moine de Vézelay, Badilon, fut chargé de la mission dangereuse qui consistait à s'aventurer en pays infesté par les Sarrasins pour y dérober - à l'insu des Infidèles - les précieux restes qui une fois rapportés sur la colline, magnifieraient le prestige de sa nouvelle église. L'expédition dura longtemps, un ou deux ans. On ne saura jamais comment les moines firent pour atteindre le tombeau dans la crypte comblée et emmurée. Il est très probable qu'ils ne ramenèrent qu'une partie du corps. Ils laissèrent en tout cas sur place le crâne de Marie-Madeleine sur lequel on reconnut en 1320 "dans la région gauche de l'os frontal, au-dessus de l'orbite (...) une petite portion de chair recouverte de peau et restée adhérente à l'os". Tout de suite, en ces temps d'innoncence, on identifia le Noli me tangere, l'endroit où le Christ toucha du doigt le front de Marie-Madeleine.


L'expédition de Badilon peut fort bien n'avoir jamais eu lieu. La querelle des reliques n'en continua pas moins entre Bourguignons et Provençaux. Pour relancer le pèlerinage qui était sur son déclin, l'abbé de Vézelay eut l'idée en 1267 de procéder à l'ouverture du coffre scellé dans la crypte. La reconnaissance solennelle des reliques eut lieu en présence de saint Louis.


Les précieux restes, soi-disant trouvés à Saint-Maximin, étaient alors entourés de "quantité de cheveux de femme", ce qui suffit à les identifier. Le corps, retiré de son coffret de métal, fut placé dans une châsse en argent. Les religieux de Vézelay firent cadeau au roi d'un bras de la sainte et d'un os de mâchoire avec trois dents. Peu de temps après, saint Louis les renvoya au monastère après les avoir fait magnifiquement enchâsser. Il y adjoignait des reliques provenant du Trésor de Constantinople.


Ce même jour solennel, une côte de sainte Marie-Madeleine fut offerte au légat du pape qui, devenu pape à son tour sous le nom de Martin IV, l'offrit à la ville de Sens. Elle fit longtemps partie du Trésor de la cathédrale avant d'être rendue en grande pompe à la colline en 1870.


Sait-on combien d'envieux firent ces reliques ? Quelles jalousies elles suscitèrent ? Combien de meurtres se commirent en leur nom, si l'on songe à la fortune que représentait alors le moindre de leurs fragments ?


Dès l'arrivée des pieux débris sur la colline bourguignonne, les miracles commencèrent : la spécialité de la sainte fut alors la délivrance des captifs. Un si grand nombre d'entre eux apportèrent leurs fers sur son tombeau que l'on dut au XIe siècle faire fabriquer des grilles pour protéger l'autel. D'autres furent délivrés du démon ou guéris de leurs maux. L'un des plus beaux miracles recensés est celui de l'aveugle de Chastellux qui, se rendant à pied au village, recouvra la vue en suppliant la sainte de lui permettre de "voir les tours de son église".


Cette rocambolesque Histoire d'Os fut brutalement interrompue par les Huguenots qui occupèrent la ville de 1568 à 1570 et se soucièrent de clarifier la situation. La clarification fut expéditive.


Ils pillèrent les reliques et les brûlèrent sur la place "au milieu des quolibets". Sainte Marie-Madeleine, Pontien, Ostien, Andéol et le bois de la croix partirent en fumée et leurs cendres emportées par les vents s'en allèrent fertiliser les terres alentour. La basilique fit alors office d'écurie pour les chevaux protestants.


Finies les fariboles et les superstitions ! L'on revint brutalement à la lettre des choses. La mentalité puritaine vous fait toujours déchanter.


Les jacobins, deux siècles plus tard, s'attaquèrent aux sculptures, aux représentations des saints. Dieu le Père dans sa mandorle, trop haut placé pour être atteint, échappa au désastre, tandis que Jean-Baptiste, le Précurseur - celui qui prit toujours les coups en premier - eut la tête cassée, et non tranchée pour une fois ; il se vit aussi supprimer l'agneau qu'il présentait pieusement à la chrétienté..."


 


Quant à moi je me demande comment un doigt de Marie-Madeleine s'est retrouvé à San Marco à Veni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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