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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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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포 고민환 성도의 바둑판 강태공의 말복 성주모시는 공사와 이원수, 신사임당의 율곡 이이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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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포 고민환 성도의 바둑판 강태공의 말복 성주모시는 공사와 


 이원수, 신사임당의 율곡 이이 탄생의 비밀









< 선도신정경>* 고수부님(천후님)께서 "소리개 까치집 하도 낙서는 선천용이요 자하도(慈下道)는 후천용이라. 용화교주(龍華敎主) 자씨부인(慈氏夫人) 자하도(慈下道) 칠현무(七玄武)는 선천용 하였고 육기초(六基礎)는 후천용 하느니라. 옥구는 닻줄 장상지지(將相之地)요 포육지지야(布育之地也)니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수식남방매화가(雖識南方埋火家)를 누가 알 수 있으

리요. 호남서신 아니고는 내 일을 누가 알까부냐. 여동빈의 자하도 세계극락 일월수부(日月首婦)" 하시니라.(선도신정경 pp202-203)*




첨언해설:위에서 소리개는 병아리를 애피타이저로 삼고 까치를 잡아먹고 까치가 애써 지은 까치집까지 차지해 까치알을 후식으로 삼는 폭군이다. '소리개 까치집 하도낙서가 선천용'이라 하심은 선천 약육강식의 패권시대를 포함해 '동지한식105제' 까지의 힘의 강권시대를 의미한다. 종통판에서 철지난 7午군화 시대를 상징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하도는 후천용이라 하심은 간신(艮申)의 신부(申符)사명을 드러낸 용담팔괘의 용담계사도(龍潭 癸巳圖)의  6기초- 天長地久 申命無窮-가 후천용이라 하신 것이다.




 원래 북 현무는 1,6 水인데 힘의 강권의 대표적 상징이 7午 군화이므로 105제 이전의 난법 과도기 시절 패권 조화를 부린다 하여 칠현무라 하신 것이고 6기초는 용담계사도의 중앙이 1,6 수로 6수의 추수 말복 인사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굳이 우주원리로 말하면 선천을 6양시대, 후천을 6음시대로 말하지만 선천 약육강식을 보여주는 하도낙서 영웅패권 시대를 무한분열의 7양 시대로 칠현무라 하신 것이고 후천 조화선경은 수화금목대시이성수생어화고천하무상극지리(水火金木待時以成水生於火故天下無相克之理:현무경 신부(申符))의 무한 포용의 부드러운 6음 성인시대이므로 용담계사도의 6기초가 조화선경을 여는 후천用이라 하신 것이다.




결론은 백오제 이전의  초중복 도정의 교의체계에 하도낙서만 포함되고 용담팔괘가 제외되어 있다가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인 사오미 개명장(2013계사, 2014갑오, 2015을유) 말복사명 기두 期에 율곡의 후신인 성포 고민환 성도의 낚시대 성주聖主 모시는 공사속에 말복인사 시절화의 출현을 통해 용담팔괘가 말복진리 진법 속에 포함될 것을 보여주는 성구말씀이다.誰識南方埋火家(수식남방매화가)'로 집행된 문왕 세살림 추수도수의 마지막 도운 상씨름 말복도운 결론은 일자(一字)와 삼자(三字)를 잡은 자로 申命無窮의 申符司命(玄武經)이다.




 운암강수만경래 숙구지문왕 都安 3父子초중말복 道運 세살림의 결론은 백오제 이전의  초중복 도정의 교의체계에 하도낙서만 포함되고 용담팔괘가 제외되어 있다가 말복사명 期에 율곡의 후신인 성포 고민환 성도의 낚시대 성주聖主 모시는 공사속에 말복인사 시절화의 출현을 통해 용담팔괘가 말복진리 진법 속에 포함될 것을 보여주는 성구말씀이다. 강태공 여상이 위수강가에서 성주 문왕을 만나듯 성포 고민환 성도에게 바둑판 위에서 강태공 문왕 모시는 공사를 집행한 대로 말복 시절화의 도운 등장도 이루어질 것이다. 




 더불어 옥구 오성산 윷판도수의 세번째 말복살림에서 후천 장상들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 기운으로 포교해서 기르는 바('옥구는 닻줄 장상지지(將相之地)요 포육지지야(布育之地也)니라') 숙구지 문왕 도수 도안 세살림 나오는 수식남방매화가(雖識南方埋火家)를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



곤존 태모님은 1880년 경진생, 성포 고민환 성도는 7년 아래인 1887년 정해丁亥생(~1966)입니다. 태모님은 너는 저울만 맡아 보라 하시고(도전 11:98) 모든 일을 민환에게 맡긴다 하셨습니다. 이율곡 선생은 1536년 병신丙申생 남녀포함 다섯째 아들입니다.(오륙무기토는 生數와 成數의 대표수로 상제님께서 엄지부터 차례로 꼽으며 주먹을 쥐었다 새끼손가락을 다시 펴시며 말씀하신 새끼손가락 오륙인 조화봉) 태몽이 흑룡黑龍이라 어린시절 아명이 현룡見龍입니다. 49세로 임종시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보니 흑룡이 몸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합니다. 말복인사 문제 출현에 대한 '시절화時節花' 비밀을 이율곡 후신인 성포에게 동지한식백오제(105년) 기간 동안 숨겨놓으셨습니다.





<고사모신정기 10P>*하루는  公事時에  姜孝伯을  命하시와  명주실을  드리라하시와  방안에  느러노시고  낙시대를 드리라 하시여  高旻煥으로  하여금   碁板우에  안저서 낙시질을  하게 하시니라  이난 聖主를 모시는 公事로다  하시니라







강릉 오죽헌 몽룡실.  1536년 병신丙申생 흑룡태몽으로 신사임당이 5째 율곡을 출산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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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수(李元秀)와 신사임당(申師任堂) 설화


▶활인수(活人樹)의 유래


   감찰공(監察公) 이원수(李元秀)는 강직(剛直)하고 고결(高潔)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녹발홍안(綠發紅顔)의 청춘시대에 일찍이 강원도 강릉(江原道 江陵)에 찰방(察防)으로 있을 당시 장가를 들었으니 그 부인은 당시 명사(名士)로 경향에 이름이 쟁쟁하던 진사 신명화( 進士 申命和)의 귀동 따님었다.


   신(申)부인은 그 아버지 신진사의 고결한 피를 받고 산수 좋은 강릉에서 생장하니 만큼 인물이 비범하고 천재가 비상하여 어려서부터 시문서화(詩文書畵)가 모두 절특하니 세상 사람들이 신녀(神女)라고 칭찬하고 자기는 또 옛날 주문왕(周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이 되기를 바라면서 자호(字號)를 사임당(師任堂)이라 하였다. 그러한 재원(才媛)과 재자(才子)가 서로 혼인을 하게 되니 그 외모와 덕행이며 재예가 피차 막상막하한 것은 물론이고 금슬(琴瑟)이 또한 남다르게 좋으니 그야말로 녹수의 원앙(綠水鴛鴦)과 단산의 봉황(丹山鳳凰)이 서로 짝을 만난 것 같아서 보는 사람마다 그들 부부는 천정의 배필이라고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의 청춘남녀 같으면 그렇게 다정스럽고 재미있는 신혼부부가 서로 헤어짐을 싫어하여 겨울밤과 여름낮은 그 기나긴 시간도 지루한 것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한 날 한 시 같이 금슬의 낙(琴瑟之樂)으로만 만족한 생활을 하겠지만 그들 부부는 모두 인격이 상당하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인 까닭에 구구하게 일시적인 환락(歡樂)에만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인격을 수양하고 좀 더 학문을 연구하여서 장래 한 사회 또는 한 나라의 큰 인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혼인한지 약 오년이 지나서 어느 날 밤에 서로 의논하되,


   “우리 부부가 젊은 정리에 서로 떨어져 있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한집에만 그대로 같이 있게 된다면 공부에 큰 방해가 되고 따라서 장래 발전에도 영향이 퍽 많을 터이니 아무리 애정을 못 잊을지라고도 서로 십년작정을 하고 각각 떨어져서 남편된 나는 서울에 가서 글공부를 하고 부인된 당신은 집에서 그림공부를 하되 그 기한이 되기 전까지는 서로가 단 한번이라도 내왕(來往)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서신까지도 일체 하지 말자.”


하고 단단히 약속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아침에 원수는 그 약속을 단연 실행하려고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사랑하는 부인과 이별하고 서울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원수가 처음에는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공명심이 많아서 가정의 재미와 부인의 애정도 모두 돌보지 않고 그 부인과 그렇게 굳은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지만 얼마 안가서 평소에 그 부인과 서로 사랑하던 생각을 하고 또 앞으로 장차 십년이 되도록 피차 얼굴 한 번도 못 보며 편지 한 장도 못할 생각을 하니 앞길이 캄캄해지고 가던 발길이 저절로 돌아서져서 대관령(大關嶺)마루턱까지 갔다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이틀 동안을 계속하다가 사흘째에는 남 보기에도 너무도 부끄러워 집 근처 대밭(竹林) 속에 와서 있다가 밤중에 남모르게 담을 넘어서 그 부인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부인도 처음에는 그 남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속으로 남자의 의지가 너무 박약한 것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에게 대하여 그렇게 사랑하는데 마음에 흔들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하는 동정만 보았으나 며칠을 계속하여 그렇게 하고 더구나 밤중에 담을 넘어서 들어오기까지 하는 것은 집안사람 보기에 창피도 하려니와 처음 약속과 상반이 되므로 고정(高貞)한 그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수가 방문 밖에 와서 여러 번 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하여도 절대로 열어 주지 않고 마지막에는 가위로 자기 머리털을 선뜩 잘라서 문밖으로 내어주며,


   “사람이란 것은 비단 부부간이라도 한번 약속을 한 이상에는 그 신의를 지켜야 하는 것인데 그까짓 구구한 애정을 이기지 못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피차에 어찌 신봉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나의 인격보다도 나의 외모를 더 사랑하시는 까닭에 그리하시는 것이니 나의 외모의 한 부분되는 머리털을 아주 잘라서 드리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셔서 십년동안 최초의 약속과 같이 잘 지키셔서 성공을 하시고 다시는 우리 집에 오시지 마십시오. 만일 이후에도 또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신다면 그때에는 아주 내목을 베어서 최초의 약속을 지킬 뿐입니다.”


하고 말하니, 원수는 깜짝 놀라 후회하며 그 부인에게 사과를 하고 그날 밤으로 다시 담을 넘어서 서울로 간 후에는 처음 약속과 같이 십년 동안이나 한 번도 되돌아 다시 가지 않고 글공부를 하고, 신씨 부인은 집에서 또 그림공부를 하되 특히 안견의 산수도(安堅 山水圖)와 포도(葡萄) 초충 등을 전공하여 그 화법이 모두 신경(神境)에 이르렀다.


   원수가 그렇게 공부를 하는 동안에 빠른 세월은 어느 덧 벌써 십년이 되어 약속한 기한이 되었다. 웬만한 남자 같으면 그 피가 끓고 기운이 용솟음칠 듯한 청춘시절에 객지에서 십년동안이나 홀아비 생활을 한다면 그 번화하고 유혹 많은 서울장안에서 반드시 화류장 같은 곳에 몇 번 발을 들여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다못해 남의 집 행랑방 출입이라도 더러 하였겠지마는 원수는 원래 강직 고결한데다가 더구나 그 부인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생명같이 사랑하는 머리털까지 자르던 일에 깊은 감동이 생겨서 십년 동안을 한 날 한 시 그 절조를 지키고 열심히 공부만 하였다.


   그러다가 기한이 차게 되니 원수의 그 기쁨은 마치 십년 간 귀양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단 몇 날도 지체하지 않고 만기가 되던 바로 그 이튿날에 서울을 떠나서 강릉(江陵)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 같으면 길도 좋고 자동차나 동해선의 기차 같은 것이 있어서 소위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으로 당일에 강릉을 갔겠지만 그때만 하여도 서울에서 강릉을 걸어가자면 거리가 워낙 멀어서 날짜도 여러날 걸리려니와 하늘이 잘 보이지 않도록 산림이 우거진 태산준령에 백주에도 화적(火賊)강도와 맹수(猛獸)들이 곳곳에 나타나서 웬만한 사람으로는 혼자서 길을 갈 엄두도 못내고 동행을 몇 사람씩 얻어야만 가게 되었다.


   그러나 원수는 원래 대담한 남자인데다가 십년이나 서로 떨어져 있던 사랑하는 그 부인을 만나 보려는 정열이 타오르는 까닭에 태산준령도 평지같이 보이고 화적과 맹수도 우습게 생각되어 같은 동행도 없고 또 신변에는 몸을 보호하는 칼이나 창 같은 것도 없이 그냥 한사과객(寒士過客)의 행장과 같이 죽장망혜 단표자(竹杖芒鞋 單瓢子)에 개나리봇짐을 해 걸머지고 좌청산(左靑山) 우록수(右綠水)에 양장구곡(羊腸九曲)같이 구비구비 뚫린 길을 유람 겸 탐험 겸 천천히 걸어갔다.


   때는 마침 양춘가절이라 곳곳마다 기암절벽에 두견 철쭉이 만발하여 금수(錦繡)의 세계를 이루고 나무마다 이상한 새가 노래하고 다람쥐들은 굿을 하며 춘흥(春興)을 돋우어 녹의홍상 산골 처녀들이 산으로 들로 헤어져서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나물을 뜯으며 강원도의 독특한 애조로,


   “형님 형님 사촌형님 시집 살이 어떱디까. 시집살이 삼 년만에 삼밭 같은 이내 머리 다복쑥이 되었네.”


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또 천장만자 되는 높은 산 절벽에서 화전농부(火田農夫)가 화전을 가느라고 역시 강원도의 긴 가락을 노랫조로,


   “어녀...... 어치돌지나마, 마라 한눈팔지 말고 잘 가거라 어-이놈의 소(牛)”


하고 적막한 푸른 산이 울리도록 처량하게 내는 소리, 그 노래를 들을 때는 시흥(時興)이 저절로 나서 다리 아픈 것과 몸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몇 십 수의 즉흥시를 지으면서 저절로 길을 걷게 되었다. 원수는 그렇게 길을 가는 것이 며칠이나 걸었던지 이럭저럭 강릉 땅의 대화(大和-지금은 평창(平昌)땅)까지 이르렀다. 이 대화라는 곳은 비록 산협(山挾)이지만 옛부터 큰 주막(酒幕)거리로 유명하여 인가가 즐비하고 비교적 물색이 좋았었다.


   원수가 급히 그 부인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으로 단 한 시간이라도 더 가고 싶었지만 그곳에 당도하고 보니 벌써 해가 저물었을 뿐 아니라 여러 날 행로에 몸도 피곤하고 중로에는 대관령(大關嶺)이란 유명한 큰 영(嶺)이 앞을 막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불가불 하룻밤을 쉬어 가야만 되게 되었다.





▲ 대관령 옛 주막터 자리에 그려져 있는 주막 그림






주막거리로 들어가서 아무집이나 깨끗한 집이 있으면 하룻밤을 자려고 한집 건너고 두 집을 건너서 두루두루 정한 집을 찾는 중에 한집 문 앞을 지나려니까 소복을 입은 한 여자가 나오며,


   “저 손님 어디로 가시는 손님이신지 날도 저물고 하였으니 우리 집에서 하룻밤 쉬어 가십시오. 집은 비록 적고 누추하지만 식구도 단출하여 조용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원수는 그 여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니 나이는 약 이십오륙 세 가량 되어 보이는데 비록 산촌 주막에 있는 여자이지만 얼굴도 제법 숭글숭글하고 잘 생기고 의복도 소복을 입은 것이 수수해 보이며 말씨도 또한 정다웠다. 원수는 주인만 보아도 그 집이 과히 흉하지 않는 주막으로 짐작하고 혼자 생각하기를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고 이왕이면 주인 여자가 좋은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그 여자를 따라서 갔다. 그 여자는 원수를 언제 친하였다는 듯이 특별히 친절하게 대접하여 방도 보통의 보행객을 재우는 길가 방을 주지 않고 안 건넌방으로 정해주고 이부자리도 새것으로 갈아 주며 음식 범절도 특별히 지성껏 잘하여 주었다.


   원수는 시장한 판에 저녁밥을 잘 먹고 피곤한 다리를 쉬며 한잠을 잘 잤다. 시간으로 치면 자정이 훨씬 지나 새로 한시쯤이나 될까 말까 할 때에 목이 말라서 머리맡에 있는 물을 먹고 다시 누워 있으려니까 별안간 안방문이 바시시 열리며 주인 여자가 소복단장에다 주안상을 차려가지고 자기방으로 들어오며,


   “손님 주무십니까? 곤하시게 주무시는데 여자가 이렇게 방에까지 들어오는 것은 미안하고 황송합니다만 집에 마침 변변치 않는 술과 안주가 있기에 잡수시고 먼 나그네길의 피로를 푸시라고 가져 왔습니다.”


한다. 원수도 초저녁에는 몸이 곤해서 정신을 모르고 잤지만 한잠 자고나니 잠이 잘 아니 와서 갑갑하던 차에 밉지 않은 안주인이 친절하게 손수 술상까지 가지고와서 술을 먹으라고 하니 여간 고맙게 생각되지를 않고 평소에는 잘 못 먹는 술이나마 열서너 잔을 받아먹고 주인 여자에게도 원수가 또한 몇 잔을 권해서 남녀주객이 모두 허물없이 말하기 좋을 정도로 얼큰히 취했다. 주인 여자는 원래에 마음속에 간직한 일이 있기 때문에 먼저 원수에게 말을 건네었다.


   “손님이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지금 상중이올시다. 본래는 정선(旌善)사람으로 이 집에 출가하여 집이 가난한 탓으로 부부가 주막영업을 하며 그날그날을 지냈으나 박명(薄命)한 탓으로 금년 봄에 불행히 남편을 여의고 지금 독신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청상과부로 있어서 날마다 여러 남자 손님을 대하면서도 이때까지 다른 생각이라고는 없더니 오늘 우연히 손님을 뵈오니 처음부터 호감이 생겨서 여자로서의 체면과 염치도 불구하고 이렇게 들어온 것이니 과히 추하게 생각지 마시고 하룻밤의 가연(佳緣)을 맺어 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남자 같으면 그런 경우를 당해서 누구나 그 여자의 소청을 들어줄 뿐 아니라 먼저 자진하여서도 수작을 걸겠지마는 이원수는 원래 고결하기로 유명한 사람인 까닭에 처음에 그 여자가 그렇게 고맙게 구는 것을 보고는 퍽 감사하게 생각하였으나 다시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여러 가지가 모두 더럽게 생각되고 더군다나 그 여자가 막중한 자기 남편의 몽상을 하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너무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처음 그런 말을 할 적에는 그냥 온순한 말로 거절하다가 재삼 간청을 할 때에는 아주 정색을 하여 꾸짖어 말하고 최후에는 그런 말을 또 한다면 밤중에라도 그 집에 있지 않고 길을 떠나 가겠다고까지 하니 주인 여자도 그제서는 하는 수 없이 크게 긴 한숨을 한번 쉬며 탄식하고 말하되,


   “사람의 운명이란 할 수 없다. 원래에 내 팔자가 기박하니 어찌 할 수 있으랴.”


하고 다시 원수에게 너무 실례하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초연한 안색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다. 원수는 그 여자를 돌려보낸 뒤에 혼자 생각에 그 여자가 보복으로 또 무슨 흉계나 꾸미지 않나 하고 무서운 생각이 나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이 말똥말똥하여 밤을 새우고 이튿날 첫 새벽에 무슨 죄나 짓고 달아나듯이 그 집을 떠나서 자기 처가로 갔다. 사랑하는 부부가 햇수로 꼭 십 년만에 서로 만나게 되니 그 반가움이야 이루 다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더구나 두 부부가 그간에 모두 독실한 공부를 하여 피차 괄목상대를 하게 되니 보통의 다른 부부가 여러 해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것보다 더 한층 반가웠다.


   그럭저럭 며칠을 지내는 중에 하룻밤에는 그 부인이 꿈에 큰대들보 같은 흑용(黑龍)이 자기 방으로 들어오더니 어린 아이를 품속에다 안겨 주었다. 그 부인은 그 꿈을 꾸고는 그날부터 태기(胎氣)가 있었다. 그 뒤 얼마 아니하여 원수는 과거(科擧)를 보려고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다. 대화 근처에 또 이르니 전날에 자던 주막 생각이 문득 났다. 원수는 전날에 그 집 여자에게 너무나 인정 없이 대한 것이 후회되었다. 혼자서 다시 뒤미쳐 생각하기를,


   ‘소위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의 그만 한 소청도 들어 주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몰인정하고 졸장부의 일이니 이번에는 일부러 그 집에 가서 그 여자에게 지난날에 있어서의 미안한 점을 사과하고 한번 호원을 풀어 주어야만 되겠다.’


하고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그 여자는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친절하게 원수에게 대해 주었다. 그 날 밤에는 원수가 그 여자를 자기 방으로 청하여 오게 하고 지난날의 미안하였다는 말을 한 다음에 그날 밤에 같이 재미있게 지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전날과 아주 태도가 달라지며 엄연히 정색을 하고 말하되,


   “내가 비록 삼로 가상에서 주막질을 해먹을망정 그런 말분(末分)의 여자는 아닙니다. 내가 비록 배운 것은 없으나 길가에서 오고 가는 사람을 많이 보는 관계로 남의 기색을 대강 살필 줄 알아서 전날에 당신의 얼굴을 살펴본 즉 그런 귀한 사람을 한번 낳아볼까 하는 욕심에서 여자로서 부끄러움과 창피한 것을 무릅쓰고 그런 말씀을 하였으나 지금은 벌써 당신 부인의 몸에 귀한 아드님이 잉태되어 있사온데 내가 공연히 당신에게 정조만 더럽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딱 잘라서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그러나 한 가지 아까운 일은 그 아이가 앞으로 출생할 때에 반드시 인시(寅時)에 낳게 되므로 일곱 살밖에 안 되어서 호환(虎患)에 죽게 될 터이니 그것이 걱정이올시다.”


하니 원수는 그제야 그 여자가 보통의 여자가 아닌 줄 알고 깜짝 놀라며 오늘까지의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다시 그 아들이 어떻게 하면 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 여자는 처음에 아무 말도 없더니 원수가 하도 지성스럽게 물으니까 그제서야 천천히 말문을 열면서,


   “속담에 말하기를 적덕(積德)한 사람의 자손은 담장 밑에도 서지 않는다고 말하였는데, 당신도 오늘부터라도 덕을 많이 쌓아올린다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요. 그런데 덕을 쌓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남의 생명을 천 명가량 살려야 하겠는데 사람의 생명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 사람 대신 즉 남의 집 신주(神主)가 되어 대대로 자손계승(子孫繼承)을 시키는 밤나무를 천주(千株)만 심으면 그 화를 면할 수 있는데 그것도 특별히 주의하여 그 아이가 일곱 살 되는 모월 모일에 그 아이를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말고 방속에다 깊이 숨기고, 또 늙은 중이 와서 그 아이를 보자 하거든 또 절대로 면회를 시키지 말고, 나도 많은 덕을 쌓은 사람인즉 내 아들은 함부로 잡아 가지 못한다고 그 밤나무를 보이면 무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니 원수는 그의 말에 다시금 크게 놀라고 감탄하여 서울 가던 일도 중지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그 부인에게 전후사연을 말하고 그때부터 고향인 화석정 앞집 주위 근처에다 밤나무 심기에 힘써서 불과 일 년에 약 천주가 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십이월 이십육일 인시(中宗三十年丙申)에 과연 신분인이 아들을 낳았으니 그는 곧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학자요 대정치가인 이율곡 선생(李栗谷 先生)이었다. 원수는 그를 낳은 때가 그 여자의 말과 같이 호랑이 때(寅時)인데 더욱 놀라고 신기하게 생각하여 특별히 밤나무를 키우는데 주의를 하였다.






 ▲ 대관령에 있는 주막터 표지                   ▲ 물방앗간                                     






 율곡이 다섯 살이 되던 해 모월 모일이었다. 원수 부부는 그 여자의 말과 같이 그날에는 특별한 주의를 하여 첫 새벽부터 율곡을 안방 한구석에다 깊이깊이 가두어 두고 방문까지 잔뜩 걸어 닫은 뒤에 그 동네에 있는 젊은 청년들을 모아다가 특별히 지키게 하고 원수는 의관을 단정히 하고 사랑에 앉아서 향을 피우고 주역(周易)을 낭독하면서 그 시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아니 있었더니 과연 백발이 성성한 늙은 중(僧) 하나가 갈포장삼에 굴갓을 쓰고 대문 밖에 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관세음보살 마하살 무상심심 미묘법 백천만겁난재위”


하고 염불을 하며 동냥을 청하였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하인은,


   “안에는 아무도 안계시니 사랑으로 가보시오.”


하고 말하였더니 그 노승은 다시 사랑으로 와서 원수에게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하며 자기는 금강산 유점사중으로 시주를 받으러 왔다하며, “


   주인 아기는 어디 갔습니까?“


하고 묻는다. 원수는 그 중의 말을 듣고 크게 소리를 치며 호령을 하되,


   “네가 어찌 나를 속이느냐. 나도 적덕을 많이 하였는데 어찌하여 내 자식을 해치려고 하느냐. 내 자식은 감히 해치지 못할 것이다.”


하니 그 노승은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이 또 말하되,


   “댁에서 무슨 적덕을 하였소?”


하고 반문을 하였다. 원수는 밤나무 천주를 심은 것을 말하였더니 노승은 조금도 곧이듣지 않아 원수가 그 노승을 데리고 집 뒷산으로 가서 그 밤나무를 보였더니 노승은 또 수요가 과연 맞는가 하고 하나하나 세어 보자고 하면서 원수와 같이 나무를 세게 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스물 서른 마흔...... 백 이백 삼백 사백 이렇게 세어서 구백 아흔 아홉까지는 수가 틀림없이 맞았으나 천 번째 되는 한 나무가 마침 소(牛)를 매었던 까닭으로 소에게 촉상(觸傷)이 되어 말라 죽고 수에 차지 못하였다. 그 노승은 돌연 변색을 하고 원수를 돌아보며 책망을 하되 당신 같은 정직한 사람도 거짓말을 하여 천명(天命)을 거역하려느냐 하고 아이를 또 급히 내놓으라고 하니 그 때에는 아무리 대담한 원수라도 용기가 없어져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하였다.


   그런 던 차에 이상하게도 별안간에 어떤 나무 하나가 말을 하며 『나도 밤나무』 라며 나서서 천주를 채우니 노승도 그제서는 어찌 할 수 없었던지 크게 소리를 한번 지르더니 다시 큰 호랑이로 화해서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율곡 선생은 그 화를 면하고 잘 자라서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는데 고향에는 지금도 밤나무와 비슷한 ‘나도 밤나무’란 나무가 있는데 그때에 그 나무가 이율곡 선생을 살려냈기 때문에 일명을 활인수(活人樹)라고 하고, 동리 명칭도 율곡리로 하였으며 선생의 호도 율곡(栗谷)이라 호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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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대명사이자 서화와 문장에 뛰어난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예술가,

신사임당申師任堂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다 펼쳐

보이지는 못했으나. 율곡이이栗谷李珥를 낳아 성현으로 떠받들어지는

대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수 있는 인물이다



신명화(신사임당의 아버지)평산신씨 신명화의 아버지는 영월 군수를 지낸 신숙권이고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그 유명한 문희공신개(세종대왕 시절 예문관대제학, 대사헌,

도총제 등을 지냈고, 나중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다.

족보를 계속 거슬러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공산 전투에서 왕건 대신 죽은 인물로

평산 신씨의 시조다)까지 나온다. 고려와 조선을 아우르는 명문가 중의 명문가다

신명화는 강릉에 사는 이사온의 무남독녀와 결혼했는데, 이게 좀 문제가 있는 결혼이었다.

결혼 후 남편따라 시댁이 있는 한양에 올라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강릉에 있는 친정 엄마가 덜컥 병에 걸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이씨 부인은 시어머니와

신명화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내가 가서 엄마 간병하면 안 될까 효도 한번 해보겠다는데

야박하게 내칠수도 없는 노릇이라 시댁에서도 이를 허락한다.

문제는 그렇게 가고 나서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신명화가 강릉으로 내려가

이씨 부인을 데려오려 하자 이씨 부인이 못 가겠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자식이라고 나 하나뿐인데 내가 가면 엄마는 어떡해 난 못가요

이렇게 해서 신명화는 이후 16년간 한양과 강릉을 오가며, 주말부부아닌 주말 부부생활을

한것이다 신명화의 장인 이사온도 거의 처가살이를 했다

"우리 장인의 장인이 참판을 하셨던 최응현이란 분이거든 이분이 강릉 사람인데,

우리 장인이 장가간 뒤 처가 생활을 계속하다가 거기서 딸을 낳았거든,

근데 우리 장인의 장인 최 참판께서 손녀가 너무 예쁜거야 그래서 손녀는 당신께서

기르겠다고 난리였지. 우리 마누라는 외할아버지 최 참판께서 키우다시피 했다니까.

신명화도 어쩔수 없이 손녀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난리신데, 결국 강릉 북평땅에

터 잡고 사셨지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 이원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신명화는

신사임당에게 3년간 "유예기간"을 준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결혼한지 석 달 만에 신명화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효심깊은 신사임당은 3년상을 치러야 한다며 강릉에 머물렀다
"그래도 아버지 가시는 길은 지켜드려야죠

"우리 결혼한지 석 달도 안 됐거든 우리 엄마는 아직 당신 얼굴도 못 봤어

당시 풍습으로는 결혼을 하고 일정 기간 처가에서 사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그러나 이원수 입장에서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3년상을 치르겠다는 신사임당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효도한다는데 결국 신사임당은 3년상을 치른뒤

시댁이 있는 한양으로 올라갔다. 시어머니 홍씨은 3년만에 며느리를 본 것이다

신명화 그는 마흔살이 넘도록 소과도 통과하지 못하다 마흔한 살에 겨우 진사시에 합격했다.

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봤으면 통탄할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와 함께 그의 발목을 잡는것이 바로 "아들"이다. 부인 이씨와 열심노력했지만

그는 딸만 내리 다섯을 낳았다.

신진사는 딸 다섯을 낳고는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신 진사가

"아들미련"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은 아들보다 나은 둘째 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선(신사임당의 이름)아 네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물 잘났지. 똑똑하지, 그림 잘 그리지, 글 잘쓰지,,아깝다.

둘째 딸 인선에 대한 신 진사의 마음은 애틋함을 넘어 연민으로 발전한다

저게 아들로 태어났으면 어쩌냐 딸로 태어난걸 기왕 이렇게 된 거 딸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어. 나 죽고 나서도 저놈재능은 살려줘야해"

시집을 가면 어떤 시어머니가 그림 그리겠다고 방구석에 있는 며느리를 좋아하겠냐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는 신사임당을 보며 신 진사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나이는 벌써 다 차서.19세가 된 신사임당 신 진사는 결국 모종의 결심을 하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둘째딸 시집보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사위는 좀 다르거든 ,

내가 원하는 사윗감은 일단 집안이 좀 받쳐줘야해

내가 말하는 집안은 적어도 평산 신씨와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으면서도 망했어야 해

망한건좀 그런가 좀 기운집안의 애면 좋겠다.

"잡안은 명문가인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가세가 기운 집안 있잖아

"좀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제 사정은 입에 풀칠하는 정도, 사위감의 직계가족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아 형제가 적은 집으로 찾아봐, 그리고 시누이 있는 집안은 절대안된다"

신명화가 벼슬길에 나가진 못했지만 핏줄로 따지면 문희공 신개의 집안인데, 뭐가 아쉬워 ...

"나으리가 원하는 사윗감을 찾았습니다

덕수 이씨쪽 총각입니다. 덕수 이씨라면 조선시대 위세를 날리던 문무겸전의 명문가다. 대표 주자로는 문반 계열에서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이이, 무관 계열에서 그 유명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집안은 죽음이죠

이름이 이 원수라고 하는데요. 덕수 이씨에 백부 이완은 경상좌수사를

사촌 이원근은 경상 현령, 당숙 이기와 이행 형제는 영의정에 좌의정까지...

말 그대로 형제가 나라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집안은 괜찮은데

"사촌들하고 아저씨들은 잘나가는데 얘만 비리비리해요, 아직과거 준비하고 있답니다

일찍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 외아들로 자랐답니다

22세 시집오겠단 여자가 없었다는건 이원수의 조건을 보여주는 증거다

"불리한 조건"들이 거꾸로 조선 최고의 신붓감을 아내로 맞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

"보아하니 네가 시어머니 봉양하며 집에서 썩을 팔자는 아닌 거같고...

내가 왜 그 원수 같은 놈을 사위감으로 골랐는지 너도 감 잡았을 거다,

너한테는 좀 덜떨어진 남편이 필요해, 집안도 좀 기우는 듯해야 함부로 개개지 못할 거야

게다가 외아들이니까 너한테 시비 걸 시댁 식구도 없을 거고, 결정적으로 편모슬하니까

잘하면 처가살이도 가능할 거야, 이게 내가 해줄수 있는 전부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중종17년(1522)8월20일 이원수와 신사임당은 결혼했고, 신명화는 몇달 뒤 세상을 떴다,

사위감을 고르느라 너무 힘을 뺀 것일까 신명화는 신사임당에게 "최적화된 신랑감"을 찾아냈고. 이를 딸에게 선물한뒤 세상을 뜬 것이다

신사임당 시어머니 홍씨 수다를 떨다 며느리에게 와서 같이 수다를 떨자고 하자

신사임당"여자로 태어나 문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안에서 수다 떨고 이야기하는 여편네들은 집안 살림은 안하고 싸돌아다니는

못 배운여자들이 된것이다. 시어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 현숙하기로 소문난 신사임당이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낄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원수 4남3녀를 둔다. 처가와 시댁을 오가며 좋아하는 서화와 글공부를 계속할수 있던 것도

이원수(그의 나이 50줄에 들어서야 종5품 수운판관 벼슬을 얻었다.

이 역시 과거를 통한 출사가 아니라 음서에 의한 낙하산 인사였다) 덕이다

이원수는 결혼생활 자체가 꼬리 내리고 사는 인생 그 자체였다

장인 신명화가 고르고 골라 뽑은 이원수 아닌가. 신사임당의 위세에 눌려 지낸 삶이기도 했다. 마누라는 일찍부터 서화와 문장에 재능을 보인 천재여류 화가인데,

자신은 나이 쉰이 넘을 때까지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한백수 남편이라면 그 신세가

처량하지 않겠나. 게다가 신사임당은 자기 집안의 전통을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으로

강릉 친정으로 떠난 상황이었다(율곡이이를 낳기 위해 강릉 친정으로 떠났다)

"원래 산후조리는 친정에서 하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16년 동안이나 한양과 강릉을 왔다갔다했어요"

아무리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라지만 며느리가 살림은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주야장천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곱게 보이겠는가. 오늘날 신사임당의 작품이 후세에 전해질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활동을 가능케 한 친정과 이를 용인한 시댁과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만한 시댁과 남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으니

"산후 조리를 몇 년씩 한다니.빵빵한 집안의 능력 있는 며느리를 들인 게 죄지

홍씨 부인은 늙어서 집안 살림을 돌볼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며느리를 한양으로

불러들였다. 이때가 신사임당의 나이 서른여덟 되던 해다. 조선 미술계 전체를 봤을때

신사임당의 존재는 축복 그자체지만 홍씨 부인과 이원수는 무슨 죄인가.

결국 이원수는 엉뚱한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폭발하고 만다.

신사임당도 여자 였다, 축첩이 허용되던 조선시대에 첩을 들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죽은 뒤에 새장가를 가지 말라니..유교적 지식을 총동원해 새장가의 부당서을

남편에게 설파했다는 점이다 잘난 아내가 학문으로 남편을 제압하는 상황,

이원수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게 어디 마누라냐 너무잘나서 친정에서만 살겠다는 분인데

"여자가 잘나 봐야 여자죠

이원수가 급기야 바람이 난 것이다. 신사임당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원수와 바람이 난 권씨부인(신사임당이 죽은뒤 이원수의 부인으로 들어온다)은

주막에서 술을 파는 여자였다

현모양처로 역사에 기록된 신사임당과는 정반대 타입이다

"툭하면 그림 그린다지, 심심하면 친정가지, 가서 돌아올 생각도 안하지, 뭔 말을 하려고 해도

너무 잘나신 분이라 말발에서 밀리지...나보고 어쩌라고"

마누라를 데리고 사는게 아니라 모시고 살던 이원수로서는 못 배우고 잘나지 못한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권씨 부인에게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바람은 얼마 가지 못해 끝난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원래 몸이 약한데다가,

남편의 외도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신사임당은 몸져눕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화가로 불리는 신사임당.

그러나 신사임당의 뒤에는 아버지 신명화의 치밀한 계획과 남편 이원수의 희생이 있었다.

아버지 신명화야 딸이 잘 되는걸 봤으니 지하에서도 웃을 테지만 이원수는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평범한 인생을 산 이원수에게 신사임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언제나 아내와 비교 당하고 아내의 위세에 눌려 지내야 했던 이원수,

신사임당의 남편 이율곡의 아버지로 기록되지만 그런 이름보다는 이원수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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