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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교운의 역사에서 골간이 되는 맥을 정리함(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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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




<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득의지추 득의지추


교운의 역사에서 골간이 되는 맥을 정리함(2/4)

사실 증산도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답사와 고증으로 밝혀낸 바에 의하면,
둘째 살림에 변동이 생긴 것은 기사년(1929)이었는데, 고수부님은 조종골 강씨들의 배신에 의해 그곳을 떠나 정읍 왕심리로 옮겨서 신정공사를 보고 계셨으며,

그 이듬해인 경오년(1930)부터
청음이 간부 조학구와 함께 1년 정도 찾아와서
간청하는 바를 받아들여 신미년(1931)에
동화교와의 통합을 허락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진 통합교단에서
성포 고민환 수석성도를 중심으로 한 임옥 신도들과 동화교 신도들 간에
서로 이질적인 신앙 행태로 인해 화합이 어려웠으며,
이로 인해 임옥 신도들이
거의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고민환 성도마저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오성산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흩어졌던 임옥 신도들을 규합하여
오성산에 교당을 짓게 되었는데,

고수부님이 이를 인정하시고
1933년 계유년 동지에 오성산 교당으로 옮겨가시어 그로부터 선화하실 때까지 2년간은
오성산에서 신정공사를 계속 보신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신정공사 기간 10년을 장소에 따라 구분해보면 조종골에서 4년, 정읍 왕심리에서 2년,
통합교단을 주재하신 용화동에서 2년,
마지막으로 오성산에서 2년이다.



그런데, 남주 이정립이 정리한 <증산교사>에서는

통합교단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완전히 왜곡해서 본말을 뒤집어버렸다.

고수부님이 경오년(1930) 동짓달에
고찬홍 성도를 동화교로 보내어,
그 다음해 신미년은 상제님의 회갑치성을
동화교에서 합동으로 지내자는 요청을
먼저 하신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그 다음해 신미년 7월 그믐께에 이청음이 고찬홍의 안내로 고수부님을 찾아뵙게 되면서, 청음 자신이 고수부님의 세 살림에 대해서 다 알고 상제님이 말씀하신대로 용화동에 기지를 구축하고 경전까지 편찬해 두었으니 몸만 가시면 된다는 뜻을 피력하여 고수부님이 받아들이신 것으로 나온다.

(고수부님이 먼저 회갑치성을 요청하시고
청음이 고수부님을 찾아뵈었다고 하는
7~8개월의 공백에 관해서
<범증산교사>는 한술을 더 뜨고 있는데,

고찬홍 성도가 신미년 1월에 다시 찾아가 회답을 구하니 청음이 아직 간부회의를 열지 못하였다고 해서,
5월에 고찬홍 성도가 다시 제물을 장만하여 가지고 와서 교당 앞마당에 진설하여놓고
‘동청룡사명’이라 쓴 진모본단 기폭을 청음에게 주며 '펴들고 제석 머리에 서 있으라' 하고 헌작 배례하였으며 '기폭은 전봉준을 의미하며
이제 전봉준의 기운이 열리는데
그 기운을 붙일 곳이 청음밖에 없어서 예식을 행하였다'며 '그 기폭을 잘 보관하여 두라'고 하고
합동치성에 관한 회답을 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7월 그믐께 경성에서
임경호와 김환이 내려왔는데,
때마침 고찬홍 성도가 다시 왔으므로
청음이 김환과 임경호에게
그 일을 의논하여 모두 찬성하므로
청음이 고수부님을 찾아뵙게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청음이 통합교단을 성사시키기 위해 1년동안
고수부님을 찾아와서 간청했다는
고민환 성도의 기록과는 완전 대조적이며,
어느 쪽 얘기가 신빙성있는 기록인지는
상식으로 판단이 될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그 해 가을,
상제님의 회갑치성부터 먼저 합동으로 거행하고
동지 때는 아예 이사하여 통합교단을 꾸리신 후에, 용화동에 법소를 짓는 준비를 하는 4개월간
정읍 대흥리에 가서 일을 보신 것으로 흐름이 그려진다.

그리고, 청음이 찾아가서 고수부님을 뵌 곳은
분명 김제 조종골이 아닌 정읍 왕심리(당시에는 대흥리로 인식될 수 있다고 봄)일텐데,
그 부분에 관한 언급은 생략법으로 처리하여
어디로 찾아갔는지에 대해서는
바로 알 수 없도록 기술해 놓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는 통합교단이 만들어지기 전의
정읍 왕심리라는 장소 개념이 아예 묻혀 버리고, 조종골에서 바로 용화동 통합교단으로 넘어간 것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통합을 선포하신 이후에
잠시 대흥리에 가 계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조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청음 남주의 기록 조작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통합교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1933년 동지를 계기로 고수부님이 기존의 임옥 신도들이
자력으로 개설한 오성산 교당으로 옮겨가시어
그곳에서 신정공사를 계속하시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화교 부설 오성산 수양소로
고수부님이 은거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 조작에 의해
고수부님은 조종골 둘째 살림과 동화교와의 통합교단이라는 셋째 살림을 마지막으로 하여
말년에 오성산으로 은거하셨다가
선화하신 것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증산도 측의 실제 고증에 의해
정읍 왕심리라는 과도기적인 장소가 밝혀져도
큰 틀에서는 여전히 변함없는 이미지가 유지되고 있다.

청음 남주는 통합교단이 고수부님의 셋째 살림이라는 종통 명분을 확보하여 추수 사명자로서의
자신들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하기 위해
기록 조작도 서슴지 않았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둘째 살림의 중간 시기인
1926년 병인년부터 시작된 신정공사는
고수부님이 선화하신 1935년 을해년까지
10년간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신정공사를 시작하게 된 둘째 살림의 의의는 분명하지만, 그와 구분될 만한 셋째 살림의 의의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살림과 셋째 살림을 구분 지으려면
각각의 살림의 주제와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인데,
둘째 살림의 의의는 이미 명백하게 드러나므로
셋째 살림의 주제와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수부님의 위상으로 보아,
셋째 살림은 낙종물과 신정공사라고 하는 역사적 의의와 비견할 만한 수준의 뭔가여야 할 것이지만,
그만한 반열에 들 만한 별다른 이슈를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신정공사의 범주 안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주제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정공사가 둘째 살림 이후로
내내 이어졌기 때문에
셋째 살림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저 장소의 이동이라는 의미밖에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그 조차도 장소가 여러 군데이다 보니
그것을 다 구분 지어버리면
세 살림이 아니라 다섯 살림이 되어버리므로
장소 구분을 넘어서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살림은 고수부님의 위상으로 보아,
교운에서 남은 과제인 추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신정 공사일 것이라 생각한다.

추수야말로 둘째 살림과 구별되는
셋째 살림의 의미를 충분히 보여줄 만한
주제라 할 것이다.

셋째 살림이 추수 문제를 다룬 특별한 공사라고 할 때, 둘째 살림이 정읍 왕심리까지 포함한다고 볼만한 이법이나 근거를 찾기가 어려우므로

조종골을 떠나신 이후로의 세 군데 장소를
통째로 모두 셋째 살림으로 볼 수도 있고,
기존처럼 동화교와의 통합교단 시기만을
셋째 살림으로 보게 되면
앞뒤 두 군데는 과도기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앞뒤 4년간을 과도기로 보고
2년의 통합교단만을 셋째 살림으로 인정하려면
통합교단 자체가
고수부님의 전체 세 살림에서 차지하는
그만한 의미부여가 되어야 하고,

그것은 나머지 4년을 과도기로 돌릴 만한
특별한 의미여야 할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세 군데의 장소가 각각 균등하게
2년씩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모두 신정 공사를 집행하신 면에서 본다면,
전체 6년을 통틀어 셋째 살림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면, 셋째 살림 자체가
세 마디를 함축하고 있는 모습이 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추수 도수가 세 단계 변화로
구성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고수부님이 교단을 창립하신 이후
그것을 뿌리로 하여 수많은 교단으로 분파되어 나갔는데, 고수부님이 그 많은 교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통합교단을 직접 주재하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것도
추수와 연관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만한 공을 들이신 것에 비하면

통합교단의 위상은 그다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으며,

그 주인공 되는 청음과 남주를 대하신
태도로 보아도 그렇고,
오성산으로 옮겨가시어
통합교단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신 것으로 보더라도 고수부님과 청음의 만남 자체가
셋째 살림의 중심 테마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통합교단을 떠나 오성산으로 옮겨가시며
고수부님이 청음과 남주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과제 속에 고수부님이 통합교단에 응해주신
본뜻이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그 과제는 건곤사당을 짓는 것과
용봉기를 꽂고 사람을 맞이하라는 것이
주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교단은 고수부님이 떠나신 이후
얼마 안 있어서 일제의 탄압으로 무너져버렸고,
그것은 당시의 모든 교단이
예외 없이 맞이한 운명이었다.
세운의 상황에 의해 교운의 활동은 단절되었고
해방 후에야 다시 새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수부님이 특별히 기운을 붙여주셨고
과제를 부여한 두 주인공, 청음과 남주는
해방 후에 특별한 한 인물(운산 안흥찬 총사수)을 만나
마련된 교단 입지를 바탕으로
그들이 꿈꾸었던 추수주인공으로서의 자부심을 만끽하며 추수 과업을 위해  범증산 종단 통합운동을 펼치게 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로써 600만 신도를 자랑하던 차경석 보천교 교주에게 혁신운동으로 대항을 할 정도로 배포도 있었고,
김형렬 수석성도를 비롯한
당대의 상제님 추종 성도들을 두루 만나
성적을 수집하여 경전작업을 해낸 지식인이었으며,

고수부님을 직접 모셨던 이력을 가짐으로써
가장 화려한 스펙을 갖추고
종교 교주의 풍모가 돋보였던 인물,
청음 이상호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교운의 역사는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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