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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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이제는 말할 수 있다.(9월말 한시적 게재) 성도사님 선화등천이후 중복도정의 비밀 1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초복살림(소위 2변)을 개창한 문왕사명자의 등천선화와 더불어 폭군 중복사명자의 사명과 한계 역시 2013,2014,2015년의 사오미개명장의 진법출현과 더불어 끝이 났습니다. 천륜인 안중건이 원고로 직접 형제를 고소한(막가파식 천륜고소 30여건) 본 형사소송 안병섭(피고) 제출 준비서면은 상제님 진리권 증산도 종권에 대한 단체문제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형제난으로 얼룩진 가정사 문제이므로 단체의 주요 간부나 주요 신도에게만 알리는 것이 목적이고 그 외 외부 인사에게 알리는 것은 적당치 않다 생각하여 9월 말까지 일정기간 만 공개하고 내리려 합니다. 부디 천지공사의 초중말복 세살림 도정의 실체와 함께 중복,말복도정의 교체기에 직면한 내부사정을 파악하여 일반신도에게 전해주기 바랍니다. 증산도 단체를 포교 개척한 당사자이자 공식적으로 부종정으로서 40여년간 부당하게 안경전 종정으로부터 단체에서 배척되어 요즘은 뒷골목 양아치배도 안쓰는 온갖 무지막지한 저질 쌍욕과 중상모략을 묵묵히 참아온 사람으로서 모든 신도들이 내막을 알 수 있도록 진실을 법정에 밝힌 자료입니다. 단체에서 본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중상모략한 동영상 테이프도 모두 열람해 보았으나 수십년에 걸쳐 타신도 역시 과도하게 포장하여 비난 욕설했던 선례처럼 모두 새빨간 거짓말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초중말복 도안 세살림의 진법을 거두절미하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위를 내세워 형제들을 내치고 부친의 묘를 지킨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형제들 참배를 차단하는 냉혈한에게 상제님 매듭짓는 사명을 맡겼을리 만무합니다. 안경전의 깨진 독에 물붓기식 무한소모성 시한부 도정경영에 올인한 신도들이 개선을 요구하는 차원의 불만을 토로하면 난법으로 몰아부쳐 쫓겨나면서 느꼈을 처참한 억울함을 동일하게 느껴 본 사람으로 한 마디 합니다. 지금까지는 미우나 고우나 동지한식백오제의 적막강산근백년의 과도기였습니다. 청음남주가 정립한 (진인해도) 소위 두사람론을 맹목적으로 도입한 중복도정의 실체는 교리적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는 말복 도정의 진법으로 깨어나기 바랍니다. 시한부에만 매달린 갑오생 중복도정은 동지한식백오제 105년간의 과도기에 황극제 태양임을 선언하여 후천으로 상륙을 못하는 풍파를 당한 난파선입니다. 갑오동학의 세운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갑오생 중복도정의 풍파당하심과(갑오년甲午年에는 상륙을 못 하여 풍파를 당하였으나)  말복도정의 최종결론 "이제는 상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결론내리신 것입니다. 본 준비서면의 정보가 전해주는 의의는 이 정보 속에 왜 상제님께서 숙구지 문왕 초중말복 세살림을 예비하시어 마지막 말복 살림을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출현하게 하셨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의 단서를 제공하는데 있습니다. 중복살림은 사오미개명장의 말복도정 진법 선포로 이미 끝났습니다. 다만 넋빠진 채 맹목적 충성으로 국망어충, 도정어충 하는 신도들만 모를 뿐입니다. 지난 40여 성상동안 중복책임자는 도정경영의 실책을 스스로 반성하거나 개선책을 마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이 모든 책임을 특정 신도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전가하는 정치적 저질 술수행위로 도정의 생명을 연장해 왔습니다. 본인도 그 희생양 중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중 하나로 중복 도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중복책임자는 수없는 간부들 앞에서 종정자리를 찬탈하려 한다는 등 허무맹랑하게 욕질하고 중상모략해 매도하고 부종정 출판사에 가는 놈은 모두 내쫓겠다고 하고 수년 전까지도 자신의 손위 선정사 누이에게 연락하거나 접근하는 신도는 모두 내쫓는다 협박하여 완전히 고립시키고 툭하면 생활비를 끊네마네 협박했던 것으로 압니다. 본인에 대해 3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행해진 일방적인 중상모략과 매도는 모든 신도들에게 정말로 나쁜 인간으로 왜곡되어 명예훼손된 것은 물론이지만 본인은 증산도에서 쫓겨나간 신도를 보면 본인처럼 수없이 억울하게 당했겠구나 하는 동병상련을 느끼는 바입니다. 천륜에게도 잔인하게 하는 간장종지만도 못한 위인이 무슨 천하사를 하는 인물을 쓸어담겠습니까. 개선하기를 바라면 오히려 역적 난법으로 몰아부치는 폐쇄적인 중복책임자의 단체가 망해가는 이유를 아직도 모릅니까. 그런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독불장군의 사람에게 상제님이 마무리짓는 말복인사로 정했겠습니까. 기본이난이면 말치자부의입니다. - “시운 벌가 벌가 기측불원(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이 어길 바 없으나 이는 도시 사람이오. 부재어근(不在於斤)이라.- 도끼자루를 베는 원칙은 바로 지도자의 품성과 자질인 사람문제 그 자체이며 도끼문제가 아니오 그 모델이 멀리있지 않고 바로 지도자(不斤)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이러한  깨진독에 물붓기식의 중복살림이 끝간데 없이 헛바퀴를 돌리고 있는 와중에도 말복도정에서나 차례가 오는 의통목에의 환상적 믿음으로 시한부 신앙의 선포와 춘치자명의 맹목적 추종이 서로 한데 맞물려 만복동이 되고자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다같이 스스로 깜부기가 되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맹인봉사잔치 시원하게 한 번 한 것을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범증산계 통합경전:본문포함 기독교신구약 두배넘는 방대한 분량. 갑오년 탈고 대기중. 서문총론 만 출간>의 진법을 이해하면 의통목 시한부는 과도기 중복도정에서는 절대 해당이 안됩니다. 단지 말복 진법을 난법이라 매도 헛소리하는 정보에 여러 대중 신도가 정신 못차리고 마취되어 있는 것일 뿐입니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판안의 신도는 마치 태양볕이 내리쬐는 썰물빠진 해변가에 퍼져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말미잘류의 어패류같은 신세와 같을 뿐입니다. 진법을 놓치고 고귀한 시간대를 모두 허사로 돌리면 마지막에 제 복장 제가 찧을 뿐입니다.  목전지사 쉽게 알고 심량 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 같쟎으면 그 아니 한이겠습니까. 그게 남의 일 같다고 보면 큰 오산이고 곧 그 운명이 자신에게 매사부대자연래로 다가옴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선도신정경>190P(4장11절)*제 오장(五臟) 제 난리에 제 신세를 망쳐 내니 보고 배운 것 없이 쓸데없는 오장난리 쓸데없는 거짓지기, 쓸데없는 허망치기로다. 잘못된 그 날에 제 복장(腹臟) 제가 찧고 죽을(死) 적에 앞거리 돌멩이가 모자라리라.     

   준비서면

사건번호 2014 고정 389
원고:A중건 증산도 유지재단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피고:A병섭
대전광역시 중구 계룡로 (오류동 s아파트)
010-****-****


이미 살고 있던 본인의 아파트가 경매 처분되어 가족이 뿔뿔이 해산되어 남의 빈 사무실 전전하며 사는 본인을 인지하면서도(홈페이지 공개) 친형제인 원고 안중건은 본 형사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 민사소송 5천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민사소송의 준비서면 작성을 위해 지난 7월 10일(목) 성남 법원에 재판과정의 모든 기록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안중건의 수족들인 박동희(안중건 비서실장 격인 수석 수호사)의 旣제출 진정서와 이홍배(대구 경일대 경영과 교수)가 旣 제출한 <안병섭에 대한 사정위 결의 내역>이란 허위사실을 기록한 문건을 처음으로 보고 이에 대한 사실을 법정에 밝혀 후일 증산도 역사에 진실을 남기고자 합니다. 별도의 사법절차는 지금 몸 하나 주체 못하는 떠돌이 신세이므로 숨을 돌려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되는대로 대처하려 합니다.

<대국을 조망함>먼저 본 2014 고정389 명예훼손 형사 소송 건은 이미 제출한 준비 서면서에 밝혔듯이 그 핵심은 부친사후 자신에게 굽히는 형제만 경제적으로 거두고 경영개선 요구하는 경쟁이 될 만한 형제와 그 외 형제는 일방적으로 신도들에게 상속 재산에 욕심 있다거나 증산도에 반하는 난법이라는 등 온갖 사실무근의 음해로 매도하여 상속을 지연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기본 틀입니다.

실제로 원고 안중건의 명을 받든 증산도 간부 이홍배, 박동희 등은 전 신도들 앞에서 피고를 포함한 형제들을 재산에 욕심이 있다는 등 여러 가지 허위사실을 밝힌 바 있고 오정란 등 외 신도들을 동원하여 형제들을 비난해 명예를 짓밟은 바 있습니다. 먼저 본 형사소송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부친이 돌아가신 즈음의 상황을 이해할 본인의 메모장 기록지와 차남 안택원이 대전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 자료 두 건을 대국적 상황을 이해하는 증거자료로 제시합니다.(각각 증 第 乙 1호 가證, 증 第 乙 1호 나證)


1. 부친 사후 장례식 치루고 나서 안병섭은 증산도에서 안중건 아래 최고직위인 수석 수호사 박동희에게 개인적으로 부친사후 벌어지는 상속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피상속인의 사위인 이종성 1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면 반드시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니 신도들 중에 법과 세무에 밝은 일반신도들을 포함하는 10여명 안팎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무리없이 상속문제를 대처할 수 있도록 두 번 만나 두 번 모두 이 점을 강조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언은 묵살되고 말았으며 예상대로 이종성에 의해 모든 형제들을 법적 고소, 고발 戰으로 얼룩지게 했습니다.(형제들 대상 고소 건이 20 여건)

2.박동희의 진정서에서 안병섭이 증산도 교단에 대해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욕심의 일환으로 문자를 보냈다 하는데 이는 명백한 거짓말로 위증입니다. 박동희 이전에 수석 수호사를 지낸 노상균의 고백 동영상에서 보다시피 단체를 폭력과 테러 납치 비밀녹음, 말맞추어 위증하기 등 등 도저히 민족종교라고 하기에는 요즘의 물의를 빚고 있는 구원파 이상의 타락상을 보여 부친 사후 이러한 곪을대로 곪은 상황을 손위 누이 장녀 안중환이 2012년 3.24일 아침 얘기해 차남 안택원(간이식 환자 한국정치학회 회장역임)은 위중한 간이식 환자로 매달 면역주사를 맞으러 서울을 다녀야 하고 최소한의 생활비 조달이 안 되면 생명부지가 힘들어지므로 상속문제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하므로 모두 상속을 포기하고 다만 몇 천이라도 차남에게 배려하려는 목적으로 상의차 피상속자 부친의 집에 동거하는 4남 안중건을 만나러 대전 선화동에 들른 것입니다.(증 第乙 가證 참조) 이홍배는 이 자리에서 안병섭이 (안중건을) 죽이려면 확실히 죽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명백한 위증입니다. 그런 대화는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증산도 현직 최고위 간부인 박동희와 이홍배 양인을 법정증인으로 청구합니다.

3.위에서 문자보낸 것과 관련해 해명합니다. 증산도에는 적지 않은 지방책임자 간부가 있습니다. 지방 책임자들이죠. 부친사후 시한부 개벽 운영으로 경제가 파탄난 신도들이 단체 개혁을 요구하다가 마치 구원파 종교에서 신도들 내쫓듯 내쫓기고 간부들끼리 위증해 가며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등 고발자 안중건과 안중건의 여동생 안선경 그리고 안선경의 부군이자 안중건의 매제인 이종성을 정점으로 하는 증산도가 그 뿌리부터 철저하게 썩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녀인 누이 안 중환이 그런 정보를 전국 신도 수수 십 명을 직접만나 보고서를 만들어 부친 돌아가시기 전, 여신도를 통해 읽어드리게 했답니다. 그 과정에서 단체가 법정에 제출한 CD 동영상인 노상균 증언이상으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음을 파악한 모양입니다.

4.당시 피고인 안병섭 부부를 비롯한 차남 안택원 부부 안중환 등 5인은 이러한 정보를 배경으로 부친이 사셨던 선화동으로 가서 모든 형제들과 부친 사후 단체개선을 비롯한 형제들의 생활문제 대책을 논의하려 간 것이었습니다. 이날 선화동 이층에서 안상돈과 안선경 안중건의 시비로 말싸움이 벌어져 본래 상의하고자 했던 의제는 채 말도 꺼내지 못하고 형제간에 파아닌 파가 둘로 갈라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날 싸움은 주로 안상돈이 차남 안택원을 부친에게 영양제 알부민을 추천하여 부친을 사망케 한 살인마라 소리질러 싸움을 촉발시키고 안중건을 자극하여 4남 안중건이 차남 안택원에게 안상돈과 동일하게 살인마라 공공연히 소리지르며 화내자 안중건의 손위 누이인 장녀 안중환은 안중건이 차남 안택원에게 살인마라 소리치자 안중건에게 네가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끊임없이 괴롭혀 죽게 하고 누구에게 뒤집어 씌우냐며 안중건의 멱살까지 잡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병자였던 장녀 안중환은 안중건과 다투다 바로 탈진해 쓰러졌습니다.(제출 증거자료 증 第 乙 1호 가證 참고)

5.부친에게 영양제를 추천한 차남 안택원에게 살인마라 윽박질러 대화자체가 되질 않았고 8째 안상돈은 등장하자마자 차남인 형에게 성질을 내며 살인마로 매도했습니다. 안중건이 짜 놓은 일련의 계획대로 부친은 그 영양제 세대를 맞고 일어나신 덕으로 안중건에게 증산도 교주 직책인 종통을 전하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때는 문제 삼지 않던 것이 왜 돌아가시고 나서 문제를 삼는 것일까요. 영양제를 추천해 살인마라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것일까요. 장례식기간 중에도 안상돈과 안중건이 차남 안택원을 부친에게 알부민 영양제를 추천한 살인마로 매몰차게 쏘아부쳐 말다툼을 한 것을 지켜본지라 장례식 끝나고 본인 안병섭 부부는 대전에서 분당의 집에 올라와 탈진해 앓아 누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영양제를 맞으며 간호사에게 알부민 영양제를 맞고 살인마로 몰리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웃으며 그러더군요. 영양제에 대해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일소에 부치고 살인마로 덮어씌울라치면 돌아가실 즈음에는 물 한 모금 마신 것도 독약이라는 핑계가 되지 않겠느냐 합니다. 영양제를 추천한 것을 두고 살인마라 매도하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었습니다.

6.나중에 차남 안택원은 그러더군요. 안중건이 점점 변하더니 홍범초 집단 살인사건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고. 이 사건은 사건당시 증산도 간부명령 계통도를 살피면 저절로 답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증산도 신도 연루 소식을 부친 장례식 치룬 이후 처음 접해 알았고 본인이 내막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 논외로 하겠습니다.

7.박동희는 본 법원에 제출한 2014 고정389 건 <진정서>에서 진정의 취지로 본인의 부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안병섭이 증산도 교단에 대한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욕심의 일환으로 문자를 보냈다 주장하는데 이 또한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본인은 2012년 폐쇄적으로 형제대화를 끊은 고발인 안중건과의 대화를 위해 대전 선화동 본댁을 세 차례 내려가 초인종을 10여분 간 눌렀지만 세 번 다 문도 안 따주고 냉대만 받았습니다. 일반사회인의 시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오히려 경호신도들 여러 명으로 하여금 서로 인계를 해가며 무책임하게 4-5분씩 서로 인계하며 사라졌습니다. 그때 박동희도 두 번이나 나타나 그때마다 이종성 1인에게 상속문제를 다루게 하지 말고 일반신도를 포함한 10여명이상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두어 공적으로 다루라고 강조했습니다. 박동희가 어떤 인물인지는 증산도 내부 문건인 박동희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증 第 乙 2호 證)

8. 박동희의 위증에 대해 본인이 박동희에게 이런 말을 해 준 기억이 있습니다, 본인도 분명히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부친이 고발자 안중건의 반강제 입원 수술을 받고(2010년 7월) 앉은뱅이가 된지 1년 뒤 2011년 8월 초(본인이 핸드폰을 교체한 바로 전날이라 분명히 기억) 박동희가 이홍배, 한응섭과 함께 급히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하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분당 AK플라자 6층 식당에서 만나 84년 이후 맡은 증산도 부종정 직위를 해제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부친사후에야 그 통보가 증산도 종통(교주직)을 빨리 승계받으려 노심초사했던 안중건과 그의 주축 옹립세력인 이홍배가 간부 신도 수백명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본인을 모함, 험담해 죽일 놈으로 만들고 정치적 연판장을 돌려 날인하게 한 후 본인에게 부친의 이름으로 해임통고하고 이미 수술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된 채 단체의 모든 정보가 안중건에게 차단당한 부친에게 제출한 모양입니다. 부친은 이홍배에게 전해 받은 이종성으로부터 해임통고 사실을 사후보고로 받은 모양이지만 만성 천식으로 산소통으로 연명하는 부친은 이미 가타부타 할 입장이 안되는 상태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박동희 및 3인에게 안병섭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친의 뜻으로 해임한다니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모든 간부들도 종교의 본질은 희생과 봉사이니만큼 보직인 간부직에서 해임되면 본연의 품계로 돌아가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데 지금껏 지켜본 바에 의하면 간부직에 해임되면 아주 내쳐져 영원히 죽는 줄 알고 단체에 앙심품고 욕하고 하는데 이는 희생과 봉사정신이 결여되어 그런 것이다. 앞으로 내가 기꺼이 웃으며 간부해임을 받아들이듯 나의 케이스가 간부들 사이에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9.일 년 전인 2010년 여름에 부친이 아주대 병원 병실에서 강제수술하시기 전 급히 문안차 찾은 부친에게 본인이 부종정인 본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필요하면 직위를 적당한 다른 신도에게 넘기라 한 적 있었습니다. 그래서 1년뒤에 해임통보를 위해 본인을 찾은 3인에게 기꺼이 웃으며 해임통보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임통보는 이홍배가 부친에게 사전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친이 정보를 차단한 채 죽음을 앞두고 누워계신 사이 이홍배가 주동이 되어 연판장을 돌려 부종정직 해임 연명을 받아 본인에게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0. 박동희가 주장하기를 안병섭이 부친의 혈통으로 태어나 증산도 신앙을 안하며 나아가 증산도를 훼도하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애통해 했으며 1)부종정에서 해임시킨다. 2)개인홈페이지 폐쇄하고 대외적으로 명예와 위신을 실추하고 증산도를 대외적으로 왜곡하고 증산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거짓증언하고 3)안병섭이 대원출판사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중지하고 증산도 재산으로 환원하라 부친이 했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히 해명합니다.

먼저 이자들은 안중건과 공모 결탁하여 마치 구원파의 유병언이 간부들과 서로 공모하여 신도들을 내치고 거짓증언하여 법정에 세우듯 동일한 부류들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증거를 대라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증거를 만들어 공모결탁한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는 인면수심들입니다.

11. 증산도는 본인이 대학가 판을 개창하면서 세월이 흘러 중장년층이 되면서 종단으로 자리잡은 단체입니다. 증산도는 도가(道家)입니다 그리하여 포교한 사람에 대해 진리적인 스승으로 연원주라 하여 진리의 스승이라 합니다. 증산도 진리가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리하여 군사부 진리라 합니다. 단체가 본인이 직접 포교한 연맥의 신도가 70% 이상입니다. 단체 형성이 본인이 이러한 연맥의 최상위에 서자 안중건은 그 직책이 안병섭(부종정) 위에 있는 종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출한 동영상에서 고소인 안중건의 최고직책을 지낸 노상균 수석 수호사가 양심선언했듯이 안중건은 포교공덕이 큰 안병섭에게 한없는 부담감을 느꼈으며 재정공덕이 큰 안정주에게도 아주 큰 부담감을 느꼈다고 토로합니다.

12. 심지어 판을 모두 만든 본인 안병섭에게 안중건이 무서워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노상균을 포교한 그 형 노영균(한의사)은 안중건이 본인이 포교해 만든 단체를 결과적으로 단체의 발전은 커녕 30년간 안병섭이 포교해 키워온 단체의 연원의 맥을 자르고 끊는 짓만 해온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아 밖으로 욕하고 다니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룬 사람이 밖에서 자신의 집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정신병자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이 만든 증산도를 대외적으로 왜곡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언어도단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이 바로 정신병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친이 대원출판사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중지하고 증산도 재산으로 환원하라고 했다구요? 그 문제 간단히 해명합니다.

13.본인이 창립한 대원출판사는 증산도 유지재단 소속이 아니고 83년 가을 처음 본인이 종로 4가에서 향군회관 6층 사무실에서 안광현(성대 통계4), 이준규(경희 법학4년), 석인희(이대불문4) 등 창립멤버인 신도 3인을 데리고 안병섭 명의의 개인 회사로 처음 등록한 것입니다. 물론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한 전두환 정권의 문화정책변경으로 도중에 사정이 있어 동일한 안병섭 개인회사 이름으로 재등록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법적으로 엄연한 안병섭 개인출판사로 등록한 것이지 증산도 유지재단과는 아무상관 없는 회사입니다.(증 第 乙 3호 證)

14.부친도 수없이 대원출판사가 증산도 책을 펴내면서도 너의 개인출판사로 시작했으니 공적인 출판사이면서도 사적인 출판사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 말했습니다. 너는 평생 방한칸 없이 떠돌이로 살았으니 법적으로 개인회사인 출판사라도 잘 운영하면서 생활하라 했습니다. 본인이 종교운동을 시작하며 미래를 바라보니 문화운동은 결국 책 출판이 중심이므로 애초 부친을 비롯 누구 말 듣고 출판사를 등록한 것이 아닙니다.

15.당시에 증산도에서 낼 책이 없어 증산도가 아닌 본인이 번역한 <성약성서:후일 보병궁의 성약으로 책명을 바꾸어 출판>라는 기독교 책을 첫 작품으로 낸 출판사입니다.  현재 증산도 유지재단은 동일한 이름으로 두 개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단체의 재산이 막 형성되는 시점에 무늬만 재단인 증산도 유지재단을 2012년 작고하신 부친이 2001년 즈음에 안정주를 통해 만든 비법인 재단입니다. 비법인 재단은 1)종교 2)종중 3)기타 등 세 종류가 있는데 3)기타에 속하는 재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친이 2012년 2월 말 작고하시자 안중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2개월 뒤인 5월에 부친의 종도사 직위를 승계하고 경쟁력있는 형제들을 내치고 법률적으로는 상속재산일 수도 있는 비법인 증산도 유지재단 재산 이외에 2012년 8월에 정부에 또 다른 <증산도 유지재단>을 만듭니다.

16.그리하여 기존에 <증산도 유지재단>의 이사였던 본인 안병섭과 안병섭의 연맥인 이종혁, 노영균, 신민식 등을 해임하고 새로 만든 <증산도 유지재단>의 새로운 이사를 임명해 넣고 고발인 안중건이 재단이사장으로 등록이 됩니다. 기존 재단의 이사해임도 완전히 불법입니다. 이사회 연락 한 번  받은 적 없이 나중에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17. 이홍배가 이미 이 부분에 대한 모함을 <안병섭에 대한 사정위 결의 내용>이란 문건으로 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문건이 위증이 되는 이유는 뒤에 간략히 해명합니다. 안중건의 경호조직에 의해 철저히 격리 차단된 90이 된 부친이 안중건의 지시하에 자신들의 종통승계를 위한 스케쥴 속에 대상포진으로 고통받는 부친을 아주대에 미리 수술 예약해 반강제 수술하여 앉은뱅이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90노인이라 혈이 안잡혀 항문 속 혈을 잡았는데 이때 신경을 잘못 건드려 이 수술 이후 바로 앉은뱅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수술 이 시점 이후부터 모종의 작업 착수한 사위 이종성이 종통승계문제와 상속문제에 대한 모든 법적 검토를 끝냈다고 본인의 애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었음을 부친 사후 들었습니다. 이미 이들의 모종의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당히 계획적인 프로젝트가 공모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거지요.

18.당시  부친은 나이 90에 이 수술을 안 받으려 손자 두 명에게 구원 요청하는 긴급 전화를 한 적 있었습니다. 부친은 신도들 사이에서도 경희대 출신 박사 한의사 신도들을 가르칠 정도로 의학에 박학하신 분으로 신의(神醫)로 회자되던 분이라 90에 수술을 받으면 위험함을 인지하여 안중건, 이종성 등이 추진하는 부친의 외과 수술을 적극 반대했으며 국내 최고 전문의라는 설득에 속아 결국 수술 후 곧바로 앉은뱅이로 드러누웠습니다. 안중건 이종성은 부친의 사망을 염두에 두고 미리 종통 승계 작업을 받기위해 안택원이 추천한 영양제 알부민을 서너 대 한 번에 놓아 깨어나신 부친으로 하여금 미리 종통승계를 위해 공고한 대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종통을 승계받았습니다.

19.부친이 산소호흡기를 끼고 1년 반 정도 생활하는 중에 모든 정보를 차단당한 부친은 30여년 간 전국 대학가에 증산도를 포교해 개척한 장본인인 안병섭을 못마땅하던 안중건의 심법을 읽고 충성을 다짐한 이홍배 등에 의해 본인 안병섭을 내치기 위한 허위 날조된 모함을 공개석상에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천륜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증산 상제님께서도 고종부자의 천륜을 해한 최익현을 꾸짖은 예에서 보듯이 증산도 역사에 그 진실을 남겨 경계를 삼고자 합니다.

20.부친께서는 대상포진 수술 당시 안중건과 이종성의 아주대 수술예약 강행을 위한 설득에 손사래를 치며 반대하여 차남 안택원의 자식들에게 수차 할아버지 수술을 막을 수 있도록 차남을 통해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합니다. 다른 쪽 손자들에게도 전화를 구원요청 의사를 밝힌 것이 후일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막상 구원요청 전화를 받은 손자들은 그 전화를 경시하고 누구에게도 말 안하고 무심코 넘긴 뒤 할아버지가 막상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러한 구원요청 전화에 대한 사실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저들의 반강제적 설득에 못 이겨 2010년 여름 아주대에서 수술을 받고  바로 앉은뱅이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시다 1년 반 만에 돌아가신 것이 사건의 실체이고 그러한 사이 안중건과 이종성을 둘러싼 간부들은 종통을 공개적으로 승계받기위해 형제들의 명예를 공개적으로 날조 훼손해 공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21. 안중건 아래에서 10여년 간 증산도 최고직인 수석 수호사를 지낸 노상균의 양심선언 동영상은 가장 측근에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면서 안중건은 증산도 교리상 자신이 증산도 천지공사에서 쓰기 위해 내놓은 마지막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항상 초조해 하고 불안해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旣提出 노상균 동영상 증언자료 참조)


22. 본인 안병섭은 가난한 증산도 단체를 직접 포교일선에 나서 개척한 사람입니다. 2012년 2월24일(양) 부친사후 안병섭은 2012년 7월 형제화합과 대화를 위해 분당에서 안중건이 거주하는 대전 선화동 본가에 3번이나 찾아갔으나 3번 다 안중건 이종성 등이 본가의 철문을 굳게 잠그고 경호신도를 내보내 돌아가라 만류해 허탕을 친 일이 있습니다. 안중건 이종성 이홍배는 공히 안병섭 본인을 그들이 내친 차남 안택원을 위시한 다른 형제들을 도매금으로 몰아 증산도 재산에 욕심이 있는자라고 신도들에게 헐값에 매도해 명예를 훼손시켰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당시 대전을 세 번 찾았을 때 박동희에게 두 차례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지금 부친이 돌아가시고 자연적으로 법적으로 상속문제가 불거졌는데 상속재산은 증산도 신도들이 혈심으로 모은 재산이므로 이종성 개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면 문제가 생기니 일반신도의 주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일반신도들 중 세무 문제와 법무 문제에 밝은 신도들 다수가 포함되는 10인 내외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반드시 구성하라 했습니다. 당시 박동희가 노상균을 이어 증산도 내 최고위 직책인 수석 수호사였기 때문에 해준 말입니다.

더불어 자의든 타의든 떠나가는 혹은 쫓겨가는 신도에게 온갖 음해로 전신도 앞에서 헐뜯는 다는 소문을 듣고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내치고 모함하지 말고 차라리 평범하게 명예 은퇴하는 것으로 예우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회에서도 은퇴하면 최소한 은퇴금도 주고 고마움도 표해주는 터에 은퇴비는 커녕 생활비도 끊는 나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어린 자식도 있는 터에 테러도 하는 위인들이라 점쟎게 한 말입니다.

23.그런데 저들은 오히려 이종성 하나만을 내세워 형제 대란을 만들어 형제들에게 각종 20여건이 넘는 각종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종성은 자신이 모든 소송을 주관해 여러 간부들 명의로 집행해 자신은 법적인 법망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 유병언 구원파 간부의 소행을 그대로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6월에 대전 법정에서 2012년에서 출발된 상속법정이 안중건 이종성에 의해 계속 지연되면서 두 차례에 걸쳐 조정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조정위원이 단체의 종권인 종도사는 안중건이 가져갔으니 증산도 유지 재단 이사장직은 밖으로 내쳐진 형제들에게 넘기는 안을 상속인 형제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장남과 차남 안병섭 안정주는 의견일치를 보아 모든 상속재산을 포기한다고 조정위원에게 입장표명을 했습니다.

24.조정위원의 조정안을 100% 받아들여 차남 안택원을 대표로 선임해 증산도 유지재단의 이사장으로 하는데 찬성한다고 만장일치로 입장표명을 했습니다. 2012년 3월 24일 차남 안택원 부부 안병섭 부부 안중환 5인이 선화동을 찾아 안중건을 만난 첫모임 자체도 모든 형제가 상속을 포기하고 간이식 환자인 차남 안택원의 생활비 보조를 위한 문제를 상의하러 간 것입니다. 안중환은 여동생 안선경에게 이점을 여러번 얘기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신도들 앞에서 온갖 거짓말을 하며 거꾸로 상속에 욕심이 있다고 매도를 해왔습니다.

25. 1991년에서 92년 사이에 선화동 본가를 개축할 때 거의 완공가까이 이를 때 서울에서 본가를 들른 본인에게 부친이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이 단체는 3부자(父子)가  일군 단체니께 3인이 선화동 부지와 개축건물을 3인 공동 명의로 분할 등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때 본인은 분명하게 제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금도 본인은 그때 그렇게 말한 것이 옳다고 봅니다. 아버지 저는 순수하게 신앙운동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체의 증산도 재산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빼주고 아버지가 착하고 말썽나지 않을 동생들을 선정해 본인대신 그 이름으로 분할등기하시라고 아주 힘주어 강력히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부친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준 덕에 본인은 부친의 배려로 증산도 유지재단의 상무이사로 안중건과 함께 이름은 올랐지만 안중건은 부친과 재산권을 반분하는 이사로 등록되었음에도 본인은 재산권이 전혀 없는 명의만의 이사로 등록되었으며 상생방송국 임원에서도 전혀 재산권이 없는 상무이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인은 법적으로 아직도 지분 없는 상생방송국 이사입니다. 본인은 이 신념이 비록 지금은 경제적으로는 경매조치되어 가족이 해체되어 빈사무실로 전전하는 신세지만 원래 무일푼으로 종교운동을 한 사람으로 늘 대학시절 룸싸롱 웨이터 보조로부터 캬바레 조명공 재래식 목욕탕 때밀이 아르바이트 시절의 초심을 지금도 지니고 있으며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운명에 순응하며 현실에 적응해 사는 사람입니다.

26.그런데 우습게도 후일 수년이 지나 선화동 재산등기 상황을 알아본 일부 고위신도들에 의해 재산등기 등록 상황을 보면 최고지도자인 부친의 신임도를 가늠할 수 있다며 부종정인 안원전이 완전히 내쳐진 것이니 부종정에 줄 설 것 없다라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단체가 신앙단체가 아니라 90년대 들어 무슨 이유에선지 실권자에게 줄서는 반신앙 정치단체로 변질되어 있던 겁니다. 그것도 친척까지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나서 신도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 한심하고 불량해 보여 어느 날 부친에게 본인이 스스로 재산등기등록을 만류한건데 신도들은 재산등기를 무슨 아버지의 신임도로 생각해 부종정을 내쳐진 것으로 생각해 정치적 줄서기 개념으로 변질되어 신앙판이 정치판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으니 눈여겨 살펴볼 것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27. 이때는 이미 증산도 단체가 안중건에 의해 사오미(2001,2002,2003) 시한부개벽설로 스스로 태양신이라 오만을 떨며 신도들을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옥죄던 시기여서 노상균의 양심고백 동영상 그대로 증산도 간부진에 의해 벌어진 2001년 홍범초 교수 부부 살인사건 등과 더불어 온갖 납치 감금 협박 폭행 등 그 누구도 안중건의 독주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안중건의 환관으로 이종성 이홍배 박동희의 예에서 처럼 스스로 충성의 기회를 못 갖는 것이 한(恨) 일 때였습니다.

28.부친을 만나 주위를 환기하는 자리에서 안병섭은 부친의 설득으로 증산도를 매두몰신 할 즈음 78년도 즈음 부친과 나눈 일화를 상기하며 이같이 변질된 단체 분위기를 파악하도록 환기시켜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마침 <삼국지연의>라던가 <모택동> <초한지> <십팔사략>을 한참 읽던 무렵이라 본인은 <십팔사략>에 나오는 춘추시대 패자인 진문공 중이의 일화를 말씀드리며 증산도가 일개 종교가 아니라 장차 장래에 진정한 중생구제를 하는 천하사라면 이 세상이 난세라 중간에 수많은 간부들이 들어서서 부친의 천륜을 떼놓는 사람도 분명히 생길터인데 그때 아버지가 인의장막 속에서 그러한 상황을 알아보고 그런 비극적 상황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27. JP는 자신이 만든 중정에 의해 쫓겨다니고 모욕도 당했는데 아버지도 어리석은 계모에 속은 진문공의 아버지 진헌공같은 사람이면 나중에 나도 엉뚱한 계략에 걸려 아버지와의 천륜도 상하는 것은 물론 내가 만든 단체에 의해 쫓겨나는 비극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읽고 있었던 십팔사략의 이야기를 거론하며 춘추패자인 진문공이 아버지가 죽이려 해 십 수 년을 도망다녔듯이 아버지가 사람의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해 자식을 의심해 막판에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들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친의 살해를 피해 십 수 년 간 해외로 망명하며 떠돌아다닌 것도 부친 진헌공이 계모로 들인 황후의 이간질로 벌어진 것인데 내가 만일 단체를 키워놓고 커진 단체 속에서 아버지가 인의장막 속에서 남이 음해하고 중상 모략해 날조하는 험담을 구분해 낼 수 있는냐 물은 것입니다. 그 때 당시 대학가는 박통의 얼어붙은 학원가를 제어하기 위해 캠퍼스에 5-6인만 모여 있어도 안기부 정보원이 따라붙는다 하여 말도 쉬쉬하는 정국일 때여서 이런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교리자체도 자세히 모르는 철부지에게 더 큰 관심사일 때였습니다.

28.부친은 한참을 응시하더니 잠시 대견하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시더니 이 애비가 알아볼 수 있고 말고 걱정마라 하신 바 있습니다. 본인은 부친이 알아볼 테니 걱정 말라는 그 한마디로 그 이후부터 부친에 대한 용인술을 크게 믿었으며 그 뒤로 부친은 본인을 크게 기대하시어 박통의 명리사주를 봐준 것으로 유명했던 당대 최고의 사주명리학자인 박사주(박재완 옹) 집으로 본인을 데려가 본인의 장래 일을 함께 상의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작은 종이에 증산도 주문을 친필로 써주시고 항상 외우고 다니라는 부탁을 하셨는데 본인은 어려운 서울 생활에 이를 기점으로 마음의 대세가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본가에서 생활비 보조를 일체 못받아 목욕탕 때밀이, 룸싸롱 웨이터 보조, 캬바레 전공생활 등으로 전전할 때라 증산도 개척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지 못하고 마음만 돌아선 상태였습니다.

그 후 80년 들어 모친이 돌연 떠나시며 증산도 일에 모든 것을 걸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바로 이종성 박동희 이홍배 등의 인물이 바로 본인이 부친에게 처음 우려한 바로 인의 장막 속에서 온갖 모함과 흉계로 부친과 자식의 천륜을 결과적으로 끊은 자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안중건의 종권승계와 관련하여 안중건과 유착하여 1901년 홍범초 살인사건 이후 변질된 신앙생태계 속에서 부친 타계를 전후해 부친이 종무에 손을 뗀 사이 부친과 자식의 천륜을 전 신도들 앞에서 떼어놓는 파렴치한 짓을 벌이고도 모지라 오히려 모든 죄악을 역으로 본인에게 뒤집어 씌운 것입니다.

29.이홍배는 본 소송의 법정에 旣 제출한 증 제1호증 <안병섭에 대한 사정위 결의내역> 제하에서 전신도 앞에서 여러 가지 안병섭에 대한 구구한 모략을 해댄 바 있습니다. 그중에서 다른 사건으로도 바쁜 본 법정에 모든 것을 일일이 거론 할 수 없어 몇 가지만 대국적으로 해명해 전체 윤곽을 밝히려 합니다.

첫째. 상기  <안병섭에 대한 사정위 결의내역> 제하에서 이홍배는 안병섭이 운영하는 대원출판사에 대해 대원출판사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중지하고 증산도 재산으로 환원하라 주장합니다. 대원출판사는 안병섭이 80년도에 전국 대학가에 증산도 서클을 개창하면서 종교운동은 문화운동이기 때문에 개척단체에서 출판사가 모든 정보를 담아 책을 직접내지 않으면 고비용구조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83년 겨울에 안병섭은 당시 이대 불문과 3년 학생이던 석인희와 성대 갓 졸업한 안 광현 경희대를 갓 졸업한 이준규를 창업 직원으로 하여 안병섭 개인 명의로 등록한 것입니다.

당시 국보위를 이은 전두환 군부정권에서 언론통제를 심하게 하는 과정에서 2년 정도 운영하다 모종의 행정착오로 등록증을 대전 증산도 괴정동 도장으로 새로 등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지방의 출판사 등록은 허가하되 서울의 출판사 등록허가를 통제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83년 출판사 이후 출간한 첫 책도 증산도 책이 아니고 바로 본인이 번역한 기독교 서적인 <성약성서(Aquarian Gospel of the Jesus the Christ>>이며 이 책은 뒤에 제목을 <보병궁의 성약>으로 바꾸어 재출간한 바 있습니다. 이홍배는 인병섭이 80년대 초반 전국 대학가에 증산도 서클을 개창하고 증산도 종단이 성립된 84년 이후 수년이 흐른 뒤 90년대 초에 들어온 신도이므로 출판사 개창 내막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부친 타계 전후해 안중건에게 충성하기 위해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원출판사는 증산도 유지 재단에 속한 업체가 아니고 83년 창립 시부터 안병섭이 개인기업으로 운영하던 회사입니다.
  
둘째, “안병섭이 통장비밀번호를 바꾸면서 출판사를 탈취해간 죄업을 저지르고 대원출판사 관련업무를 보아온 신도들을 협박하고있는 실정입니다. 근 20여년 동안 대원출판사를 직접 경영하지 않고 방임하다가 태상종도사님의 근심거리로 변하게 되었으며” 라는 주장에 대해

간략히 설명합니다. 안병섭은 上記한 바대로 83년 개창해 재등록과정을 거친 대원출판사를 직접 경영해 왔습니다. 1995년-96무렵 모 유명 인사의 베스트셀러로 늘 경영이 어렵던 출판사 매출액이 다소 늘어나자 당시 부친이 단체 경영자금이 부족해 다소 활기를 얻은 출판사를 통해 대출을 받으려 86년도부터 세무회계를 담당한 손성호 세무사(지금도 맡고있음)와 상담해 원하는 당시 부친이 원하는 대출액에 매출액이 못미치자 법적허용치 안에서 매출액을 손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다른 이유로 부친이 대출은 받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23년간을 직접 경영하던 2006년 봄 어느날 아침 송파구에 있던 출판사에 아침일찍 출근하니 미리 출근한 모든 직원이 다들 상기되어 본인을 맞았습니다.

아침 회의를 시작하니 어제 다들 퇴근한 밤늦게 김성영 편집 2부장이 야근을 혼자 하고 있는데 출판사 사장인 안병섭에게 사전 전화통고 하나 없이 노상균 신도(CD 양심선언 수석수호사)가 행동대원을 이끌고 와 출판사내로 강제진입해 부친의 명이라며 모든 경리장부를 불법적으로 다 끌어내 실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 이러한 있을 수 없는 몰상식한 행위에 대해 본인은 부친의 명이었다는 말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교주와 부종정, 부친과 자식이라는 멍에로 인해 아무 조치를 못하고 며칠을 지나니 김구연 이미동을 통해 부친의 명이라며 안병섭 인감과 모든 은행거래통장을 가져오라 하여 부친의 명인지라 일단 인감을 제외한 거래용 도장과 출판사 거래 은행통장을 가져가게 했습니다.

이때 본인은 무언가 부친이 오해하고 있으니 사실이 밝혀지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해 그 뒤부터 출판사출근을 안하고 사과 전화가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편집부장 김성영의 전언에 의하면 안중건은 출판사 전 직원을 대전 포정원으로 호출해 수십명 간부들 있는 곳에서 16억원을 해먹었다고 먼저 김구연(실장)과 이미동 편집부장에게 쌍욕을 해댔다 합니다. 그때 이미동과 김구연은 들다 서울대 나온 재원부부로 국내 최고의 편집진이었고 성금도 1억 5천씩 낸 열성 신도였습니다. 둘 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지금은 출판사 대광서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이 절대 그런 적이 없음을 다각도로 해명했더니 다시 김성영을 공개적으로 도둑놈으로 몰았답니다.(기록용이란 명분으로 신도를 동원해 CCTV촬영) 노상균은 별실로 김성영을 데리고 들어가 마치 국정원직원이 조사하듯이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불라고 했답니다. 이는 김성영 부장이 전해준 표현 그대로입니다. 김성영이 신앙인으로 그런 몹쓸 짓을 했다면 간이라도 팔아 갚겠다고 말하고 나니 문득 순간적으로 자신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단서가 마침 출판사에 있음을 알고 새벽 두어 시에 노상균과 함께 서울 출판사에  올라와 결백함을 증명했다 합니다.

그 뒤에 빌미가 필요한 안중건과 충성에 눈먼 그 휘하 간부 노상균 등은 대원출판사의 경영을 흑자경영으로 바꾼 공로자로 김성영과 함께 80년대 중반 증산도 연세대 서클을 주도한 김대영 부장을 16억을 해먹은 도둑놈으로 지목하더랍니다. 당시 김대영은 안중건의 별도 지시로 혹사당하여 몸과 영혼이 지쳐 모 월간지 기자로 있는 부인이 회사에서 1년간 미국으로 휴가를 보내주어 외동딸과 함께 미국으로 간지 수 개월 되었을 때였습니다. 물론 김대영은 전혀 그런 짓을 할 사람도 아닌 순수한 신앙인이었고 16억이 없어진 적도 없는 은행대출을 받기위해 세무사에 의해 경리장부상에 매출액이 부풀려진 가공의 기재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럼 실제 내막은 무엇이냐. 당시 부친이 은행에서 대출을 일으키기 위해 손세무사를 통해 매출 장부를 부풀려 손본 것이 95년 무렵입니다. 본인은 당시 부친이 대출을 받기 위해 부친이 직접 개입해 손세무사와 연락해 추진한 사항이라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86년 무렵부터 출판사 문제가 아닌 다른 세무문제로 부친이 손성호 세무사를 자주 만나 서로 알고 있는 사이여서 부친이 본인을 거치지 않고 손세무사를 만나 추진한 성사되지도 않은 사안을 본인은 당연히 알지 못했고 출판사 간부들이 16억을 해먹었다며 간밤에 들이닥쳐 경리장부를 탈취한 사건의 내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95년 부친에 의한 출판사를 통한 은행 대출시도가 무한연기 된 후 2002년 넘어 서울의 출판사 사무실이 너무 비좁고 임대료가 비싸 출판사의 각종 허드레 자료들을 쌓아둘 공간이 너무 부족하여 이미동 부장의 추진으로 월세가 싼 대전의 모처에 월세 10만원의 창고를 얻어 본인의 사적 용도의 각종 비품과 20여 년 간의 각종 경리 장부 및 각종 책자들을 박스로 보내어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바로 안중건이 부친을 압박하는 각종 부작용을 연출하던 때였습니다.

전국도장에 교주인 부친의 사진액자 옆에 마치 김정일이 그랬듯이 자신의 액자도 걸어야 한다하고 인터넷 TV로 전 신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오래사냐 내가 오래사냐 하며 누구에게 줄을 설래하며 말해 신도들을 깜짝 놀래게 하기도 하고 증산도 사상연구소에서 강의하는 동안에(노상균 양심선언) 부친을 “걔”라고 표현하여 강의 듣는 모두를 혼비백산하게도 하고 노상균의 증언에 의하면 부산에 부친(종도사)과 함께 집회를 마치고 부친과 언쟁을 한 후 각자의 차를 타고 올라오는 중에 안중건(종정)은 자신을 호위한 신도들에게 “내가 종도사여 이 새끼들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주인 부친은 허수아비고 내가 실권가진 교주니 부친보다 나에게 잘보여라 하는 소리입니다.

이 사건 뒤로 부친과 안중건은 6개월간 소통자체가 멈춘시기였다고 장녀 안중환이 2013년 여름에 밝힌 바 있습니다. 장녀 안중환은 부친과 안중건이 유럽을 관광하고 왔는데 편집광적인 히스테리 환자 안중건이 백화점에서 신도들이 부친의 휠체어를 끌고 자신에게서 조금만 떨어져도 욕을 하고 혼냈다고 합니다. 부친은 정신이 누구보다 명석하고 모든 문화와 현실에 호기심이 왕성하신 분이라 이곳 저곳 마음대로 보기를 원해 휠체어 끄는 신도들에게 이곳저곳을 자유자재로 다니기를 원했지만 안중건에 의해 자유를 속박당하기 시작해 말년을 아주 비참하게 보냈다 들었습니다.

후세에 남길 부친에 대한 기록이라는 명분으로 촬영신도 녹음신도 기록신도 수시 동태보고 전담 신도를 배치해 이어폰을 끼고 어느 신도가 부친 방에 드나드는지 2충에서 부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보고받는 것에 대해 부친이 역정을 자주 내셨다고 합니다. 전화까지 2충에 있는 안중건이 전화선을 연결해 감청해 듣는 지경이어서 본인 역시 부친에게 전화하기조차 부담스러웠을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솔직히 부친이 직접 전화해 오기 전에는 직접 한 적이 별로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부자간 대화도 감청해 듣는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고 곤혹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출판 결사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곳입니다. 아무튼 부친은 안중건에 의해 정도를 넘어 통신과 이동의 자유 및 모든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그러한 불편한 심기를 서울의 장남에게 토로 한 적도 있고 차남 및 손자들에게도 심정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부친이 외출을 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안중건이 기사들이 밖에 외출해 없다고 부친에게 핑계대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은 경직된 단체 개선안에 대해 부친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 진언했으며 그때마다 안중건의 신경질적인 대응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부친이 몹시 괴로움을 당했으며 본인이 등장해 증산도 일을 하면 과잉반응으로 그 스트레스를 부친에게 쏟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 부친에게도 접근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본인도 세 자식을 기르고 있지만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듯이 자식끼리 말다툼하면 혼내는 자식이 더 마음이 아픈 법입니다. 밖에서 다투고 들어오면 내 자식을 혼내고 혼자 눈물 흘리는것이 세상사입이다. 마찬가지로 부친의 입장에서는 다 같은 자식일 뿐이란 거죠.

90년대 초에 부친은 너무 괴로우신지 본인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비밀인데 네 형이 정신병에 걸려서 이 애비가 강력한 처방을 내려서 차도있게 고치면 신도들 데리고 밤새 얘기해서 병을 원점으로 돌리곤 하니 이 애비가 똥 병이 다 걸렸다. 내가 쟤 때문에 제 명에 못살고 죽을라나 봐. 너는 앞으로 네 형 병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니 형에게 일체 말 걸지 마라. 니가 나서면 니 형이 그렇게 예민해져서 이 애비를 들들 볶아 이 애비가 견디지를 못하겠다. 실제 부친은 90년대부터 몰라볼 정도로 부쩍 늙어 여위여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때는 증산도에서 <증산도 도전> 출간에 이어 스스로를 태양신이라 공언하며 아주 악명 높은 안중건의 사오미(2001,2002,2003) 시한부 개벽설 주장으로 스스로 쳐놓은 덫에 의해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좀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부친의 전언에 의하면 정신병이 들어 부친의 힘으로 한약처방으로 조금 살려놓으면 신도들 모아놓고 시한부개벽을 부르짖으며 자신도 병을 후퇴시키고 신도들 역시 병들게 한 것입니다.

본인은 부친이 언질을 주던 바로 그즈음에 안중건이 <장자> 책자를 내어주며 웃기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알아듣고 출판사 경영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출판사에 가서 본인을 접촉하는 신도는 내쫓는다고 하여 일체의 신도가 아무도 안 오고 있는 거라고 당시 김대영 편집부장에게 들은 바 있습니다. 게다가  안중건은 자기이외의 사람이 증산도 책을 쓰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고 혐오했습니다. 본인이 집필한 <동양학 이렇게 한다>와 <통곡하는 민족혼>에 대해서도 89년 90년도 즈음에 서점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신문지상에서 다루어줄 정도가 되자 본인에 대한 엄청난 욕을 부친에게 퍼부어대고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를 부린 사람입니다.

본인은 한문본 <대개벽경>이란 책도 91년 완역하고 부친에 대한 안중건의 엄청난 히스테리와 압박 속에서 종교적 필화사건으로 22년 만인 2013년에 E-Book으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 <한한한의 사명과 비밀>을 집필한 전 상하이 총영사 출신 이상학 신도 역시 책 쓴 사람을 혐오하는 바람에 이유없이 미움을 사 멀어져 간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경제학도였던 노상균이 집필한 <코리아 웅비의 증산도>도 대학가 학생들이나 지식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안중건이 시기해 폐기처분시켰는가 하면 김한국의 <동이비젼>이란 도서도 더 이상 츨간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 끝내 폐기처분되었고 김 한기의 책도 결국 출간을 못했습니다. 안중건의 이런 히스테리는 결국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신 명의의 상생출판사를 90년대 중후반 등록시킨 바 있습니다. 안중건의 상생출판사가 증산도 유지재단 내부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친 사후 비정상적인 절차로 증산도 유지재단 재단이사장임을 주장하는 자신의 상생출판사를 따로 등록한 것 보아도 대원출판사는 법인 출판사가 전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본인은 대원 출판사 증산도 간부들 야간 난입으로 경리장부를 탈취해 간 안중건의 희대의 사건이 사오미 시한부 개벽에 모든 신도로 하여금 경제를 올인시켜 파산시킨 안중건이 시한부의 시간대가 맥없이 넘어가자 신도들의 불만과 관심을 돌리기 위해 출판사를 희생양으로 잡기 위해 벌인 희대의 사건으로 판단합니다. 이미 그룹전체를 말아먹은 대기업 CEO가 자신이 실패한 경제상황을 반성하기는커녕 잘나가는 출판사의 경영 문제를 흠잡고 대전의 출판사 창고를 무단으로 따고 들어가 경리장부를 찾아내 사건을 벌인 것입니다. 당시 대원 출판사는 국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정예멤버로 짜여진 회사였는데 그 사건 이후 김구연 실장, 이미동 편집부장, 김대영 부장, 김성영 부장, 강채령 편집부 직원, 김기연 편집부 직원 및 경리직원 등은 모두 흩어졌으며 대다수 마음의 상처를 입고 떠났습니다. 당시 이미동 편집부장이 한 유명한 말이 황금알을 척척 낳아주었더니 그 공로를 모르고 (안중건이) 칼로 닭의 배를 째어 죽인 형국이라고 본인에게 직접 심정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셋째, 도기 134년(94년) 4월 9일 5천만원을 차용증없이 증산도에서 돈을 빌려가서는 갚지 않는 일이 발생하였고, 도기 136년(96년) 2월 1일에는 종이대금 5천만원을 다시 차용하러 왔다는 말에 대해,

출판사는 원래 저자와 계약을 함에 있어 저작권 계약을 하여 출판사의 사정에 의해 출판시기를 서로 상의해 조정하는게 관례입니다. 폭군인 안중건은 증산도내부 책자의 경우도 거의 4-5일 전에 원고를 넘기고 집회 치성일에 맞추어 발행하라 편집부직원을 압박합니다. 4-5일은 길게 설명한 거고 거의 인쇄당일 바로 직전에 원고를 넘기고 인쇄 후 교정자가 나오면 교정자 하나 못 본다고 출판사 편집부 직원을 마치 개잡듯이 다룹니다. 안중건의 독선에 대한 유명한 말이 신도들에게 있습니다. 자신은 불변의 상수고 나머지는 모두 변수다. 신도는 모두 안중건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말이 됩니다.

도서 출간과 관련해 이에 대한 불만은 증산도 내부 월간지 개벽 제작 책임자였던 이상화 신도가 지적한 것과 동일하고 적지 않은 신도가 주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단 이러한 배경 설명을 한 이유는 출판사와 증산도의 책에 대한 관계는 본래 출판사와 서점의 관계가 그러하듯 대원에서 책을 펴내면 증산도 신도에게 공급할 분량을 먼저 입도선매해 가곤 했습니다. 후불이라는 거죠. 일반적으로 국내 출판사는 전국 서점에게 책을 먼저 보내면 나중에 일괄적으로 수금은 못하고 서점 사정에 따라 일부씩 수금해 주는 형태를 취합니다.

과거 증산도에서는 출판사에게 책값을 지급할 것이 있으면 책값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달이 고리를 붙이는 차용증을 주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더러는 광제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더러는 증산도 중앙종무부라는 이름을 취했습니다.(서로다른 결제 방식으로 나중에 상계하는 과정을 저들 이홍배는 알 리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증 第乙 4호證 참조)  

증산도의 성금으로 메꾸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안중건은 안병섭이 판을 개척해 키워놓은 이후 한 번도 경영을 성공시킨 적이 없이 모든 정책을 실패했습니다. 실패하면 할 때마다 희생양을 잡는 바람에 수많은 신도들이 대거 이탈해 나갔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정책을 가다듬고 개선할 궁리를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전신도 보는 앞에서 몰아세우고 하는 바람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신도들을 앤티로 몰아세워 못된 짓을 해 온 것입니다. (증 第乙 5호證 참조)

안중건에 의한 사오미 시한부가 무위로 끝나고 95년 부친은 본인이 기획한 정통 6임제로 포교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서울에는 마포 성지도장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 본인의 정책을 발표한지 2개월 만에 10여개 도장으로 파죽지세로 세포 분열되어 나갔고 전국 도장도 35개 정도에서 100여개로 팽창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본래 안병섭의 인맥이 뻗어나가는 것을 시기질투한 안중건은 부친을 채근하고 실적이 없어 불안해 하는 선임교정(지방 책임자)들의 투서를 구실로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포교맥을 완전히 일도양단하고 기독교의 구역장 제도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안중건의 정책은 수 백억 원의 돈을 전국 방방곡곡 개벽책 야립 광고로 뿌려버리고 경제마저 파탄나자 대원출판사를 희생양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95년 파죽지세로 벌어져 나아간 포교대운이  안중건의 방해공작으로 일도양단되자 96년부터 증산도의 포교는 침체기에 젖어 모든 신도들이 풀에 죽어 있을 때였습니다.

안병섭은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싶어 당시 유명인사의 책으로 경제적으로 다소 활기가 붙은 자금으로 나가지도 않는 책인 안중건의 <이것이 개벽이다> 책을 3개 공중파 TV와 방송 전 매체에 광고를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돈으로 하면 15억에서 20억 가까운 돈 될 겁니다. 괴정동 본부도장의 대치성 집회엘 가니 2층에서 5-6백 명이 모여 당시 대원출판사 강형석 실장을 모델로 하여 찍은 개벽 광고를 보며 침체되어 암울한 단체 분위기 속에서도 다들 박수를 치며 우리도 TV 광고까지 한다고 좋아하더군요.

책 얼마나 나갔냐구요? 일년간 6-7천부 나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 본인은 돈 아까운 줄 모르겠습니까? 본인은 원래 증산도 부흥에 목숨건 사람이지 돈이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수많은 경제적 난관을 묵묵히 견디며 빈껍데기에 불과한 출판사 사장직을 성직으로 달게 여기며 이충무공이 북풍한설에 칼 한자루 잡고 서있듯 한 것이거든요.

본인은 당시 부친에게 경제력 있는 신 도 들어오면 출판성금 다만 얼마라도 협조하게 배려해 달라는 말 만 전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럼 그 뒤로 배려 받았느냐. 그런 일 전혀 없었고 오히려 단체는 단체대로 안중건의 경영실패로 어려워서 출판사에 누적된 책값도 제대로 못 줄때여서 증거자료처럼 차용증을 받아가 고리를 오히려 뜯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나중에 상계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후일 2012년 경 대원출판사 담당 손성호 세무사가 증산도 신도들 출판사 야간난입과 경리장부 탈취에 이어 수년간 사과를 기다리노라 잠시 경영을 직접안하고 있는 중이라 하니 그런 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얘기냐 하며 깜짝 놀라더군요. 그러면서 1995년경 출판사를 통한 은행대출 문제로 부친과 상의해 당시 매출액을 손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대출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안중건의 주장대로 16억은 과장한거고 5-6억 정도 매출액을 손 본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해 그 사건의 진상의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2008년 부친이 위독해 입원한 대전 건양대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뒤 부친이 2010년 7월 수원 아주대 병원에 대상포진 수술 차 입원하셨을 때 애 엄마와 당시 4 살배기 아이를 들쳐 업고 찾아갔습니다. 이홍배가 부친의 병원에 병문안도 안간 불효자식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건 한마디로 천륜을 끊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봅니다. 병원 위문한번 안간 불효자식이라는 이홍배의 공개질타는 총 세 자루 살해 운운 발언과 함께 명예훼손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인격살해에 가깝습니다. 당시 부친을 찾은 본인은 <하락이수>라는 책을 선물로 드리고 출판사 문제를 처음으로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부친 대답입니다. 나는 조금도 관여한 사실이 없고 네 형이 간부들 데리고 한 짓이다. 그런 줄 만 알면 된다. 그리고 대원을 통해 대출을 일으키려다 포기한 장본인인 부친이 그걸 모르고 장부상에 비어있는 십 수억을 해먹었다고 하여 상식적으로 사적으로는 자식이요 공적으로는 단체의 부종정인 안병섭에게 연락하나 없이 야간 난입하여 모든 장부를 탈취해 갔다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주장이 위증이라 보고 있습니다.

넷째, 141년(2011) 7월 22일자로 부친이 부종정직을 해임하고 출판사를 비롯한 모든 재산을 증산도로 환원하라고 특명을 내렸다고 주장하는데 본인은 2010년 7월 16일 즈음 수원아주대 병원 입원실에서 부친의 수술직전 병문안을 가 출판사 야간난입 장부 탈취문제에 대해 분명히 물어보았는데 부친은 내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 네 형이 전적으로 한 짓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본인은 평생을 의롭게 사신 것을 지켜본 부친이 거짓말 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친은 2010년 여름 수술직후 바로 앉은뱅이로 전락하셨으며 오래된 천식까지 겹쳐 산소통을 안방에 비치해 항상 산소마스크를 끼신 채 늘 비상사태로 1년 반 고통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차남 안택원은 이 수술자체도 부친이 하기 싫은 수술을 이종성 등이 설득해 반강제적으로 소 도살장 끌려가듯 했다 합니다. 90되신 연로한 부친이 자리에 눕자 야심이 많은 이종성 등은 부친이 돌아가실 것을 예견하고 상속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2월(양) 돌아가시기 전 1년 전, 대전에 내려간 안병섭의 처 이현지에게 우연히 이종성이 춘치자명으로 발설한 내용인데 당시에는 처 이현지가 그 말의 의미를 잘 새겨듣지 않았다가 부친 사후에 자신의 종교권력에 걸림이 되는 형제들를 모두 내치는 이종성의 못된 행실을 보고서야 후일 이종성이 일련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을 추진했음을 깨달았다 합니다.

부친 살아생전 부친의 예금통장에 대한 모든 심부름은 여동생 안선경이 전적으로 하고 있었던 관계로 누구보다 단체의 자금문제를 꿰고있던 그 신랑 이종성은 오랫동안 안중건에 의해 정보가 차단되어 단체의 실정에 이미 눈이 어두운 부친의 예금통장을 이용해 이홍배와 결탁해 대학원을 만들려 시도했다가 부친에게 의도를 들켜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부친은 임종의 시간대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고 이종성과 결탁한 8남 안상돈은 장례식장에서 부친이 여름쯤이면 돌아가실 것으로 자신은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건에게 맹목적 충성을 하는 이종성 그리고 이홍배 박동희는 평소 안병섭에 대해 불같이 싫어함을 피력하는 안중건의 의도를 미리알고 안병섭 제거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본인도 모 중견 신도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부친이 누워계신 사이 이홍배가 수백명 앞 간부회의에서 선동을 해 안병섭을 명예훼손하여 흠을 잡아 모략날조하고 연판장을 돌려 서명을 받은 다음 내막을 전혀 모르는 사이 부친의 명으로 부종정에서 해고한다 통고한 것입니다. 본인은 출판사 야간 난입사건이래 본가엘 한 번도 못 가고 2011년 12월 17일과 한달 뒤 2012년 양력 1월에 있는 구정에 처 이현지와 세 딸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부친을 찾아뵈었습니다.  

이때는 부친이 돌아가시기 한 달 여 전인데 방안의 대형 삼성 TV의 볼륨을 최대로 틀어놓아 여동생인 선경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귀가 이제 안들리시냐고 그랬더니 여동생이 오빠 그런 소리 말라고 그래요. 나는 아버지랑 잘만 얘기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러 군데 보청기 회사로 전화를 하여 보청기를 알아보고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너는 아버지 곁에 항상 있어 모르는 모양인데 아버지 귀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아 내가 서울의 보청기 회사에 전화하니 전문기사가 출장가서 보청기의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해 끼어야 한다고 하니 돈은 내가 부담하니 보청기 낄 수 있게 해달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펄쩍 뛰는 겁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본인은 지금에 와서야 이때의 반응이 갑자기 보청기를 끼워드리면 자신하고만 대화를 해야지 다른 사람과 무슨 뜻밖의 대화를 못하게 막으려 했다는 심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손위 둘째 형수에게도 뺨을 탁탁 쳐대며 이년 저년 하는 걸 보고 우리 착한 선경이가 어쩌다 저렇게 많이 변했나싶어 부친 떠나신 슬픔과 함께 거의 1년 반을 눈물을 삼키며 살았습니다.

다섯째 통장비밀번호를 바꾸었다는 것에 대해

그동안 부친의 설명으로 재확인한 거지만 안중건과 노상균의 사과전화를 6년간 기다렸지만 너무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부친도 홀연히 떠나신 마당에 출판사를 다시 직접 운영해 판을 비약적으로 키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동안 대전에서 안중건의 명을 받은 안선경의 결재지시로 대원출판사 실무 역을 했던 탁정희 신도를 올라오게 했습니다. 누구 결재를 받아 운영해오고 있었느냐 물어보니 여동생 안선경 결재를 받았다고 하여 처음 내막을 알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본인은 무능력한 형을 보좌해 형이 본인을 받아들여 주기만 하면 수많은 정책기획을 입안해 부친 살아생전 키우지 못한 증산도를 4-5년 내로 만족할 만큼 키울 복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부친 타계후 형제간의 불화과정을 배경설명한 후 출판사 문제를 계속하겠습니다.

부친 타계 후 한 달 뒤인 2012년 3월 24일 선화동에서 형과 독대해 간이식환자 차남 안택원의 생활비 우선 배려 문제와 전 형제 상속포기와 증산도 중흥을 위한 증산도 대개혁 방안을 안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찾아간 것입니다만 문에 들어서자마자 적개심으로 살인마라 소리치며 차남 안택원에게 싸움을 건 안상돈의 방해로 모든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안상돈의 입장에 서있는 안중건마저 형인 차남 안택원에게 알부민 영양제를 추천한 살인마라 고함치자 대화자체가 실종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장녀 안중환은 소리치는 안중건에게 부친을 죽인 장본인은 네 자식인데 누구보고 살인마라 하느냐. 손윗 형 누이 등 모든 식구가 단체를 위해 네 놈에게 굽신거리며 지금까지 왔는데 아버지를 괴롭혀 말려죽인 너야말로 정말 나쁜 자식이라 하며 멱살을 잡아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이종성이 부친 방에 있는 금고문을 형제입회하에 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한 모임에서 이종성 본인이 통고한 모임자리에 형제 중 처음으로 도착한 안택원에게 네가 여기에 뭐하러 왔느냐하고 소리를 쳐 격분한 안택원이 사위놈이 건방지다고 소리를 지르자 문간방의 막내까지 가세해 형인 안택원을 폭행하고 밀쳐 다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 같습니다.

이날 안중건은 둘째 형수에게 멱살을 잡고 쌍욕을 퍼부었다 하며 접시까지 집어던져 하마터면 맞을 뻔 했다 전합니다. 차남 폭행 사건 두어 시간 후 안중건이 안선경을 통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본인에게 금고 개봉했으니 들어오라 했지만 핸드폰 속에서 안중건의 고함소리가 크게 들리고 안중건을 감싸는 형제 외에는 그 누구도 참관한 사람은 없었지만 본인은 금고 열었으면 되었지 내가 본래 돈에 관심있는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꼭 보여줄 필요가 무어 있느냐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욱하는 성격을 제어하지 못하는 폭군인 안중건이  손위 형수님에게 접시까지 날렸다 하고 멱살까지 잡고 온갖 욕설을 늘어놓은 것을 이미 확인했는데 폭력을 행사할게 뻔한데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애초에 재산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들어갈 마음도 아예 없었습니다.(증 第乙 7호證 참조)

그 날 금고 공개 명분으로 형제를 불러 안택원 만 폭행하고 만 사건 이후 안중건은 손아래 매제 이종성과 8째 기독교 목사 안상돈을 내세워 형제화합을 반대한다며 안상돈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최후통첩하며 전해 주었습니다. 첫째, 앞으로 일체 형제들과의 대화와 협상은 없다. 법적으로 소송하려면 하라. 둘째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는 형제는 앞으로 안씨 가문에서 아웃시키고 영원히 의절한다. 포기하면 생활비를 주되 예전보다 삭감해 준다. 받아주어도 각서를 받고 받아준다. 셋째. 병섭형은 중건형이 받아들이려 했는데 내(이종성 뜻을 수용한 안상돈 발언)가 결사반대했다. 앞으로도 병섭 형을 내가 결사반대해 막을 것이다. 넷째 나는 형제들을 내치도록 아버지가 숨겨놓은 비밀병기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운명이 현실처럼 부친 타계로 무너진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자 본인은 당년인 2012년 5월경 우선 탁정희를 분당 자택으로 불렀는데 증산도 간부 한응섭과 같이 왔기에 애엄마 이현지와 함께 출판사의 정상적 운영을 위한 여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안중건이 상생출판사를 따로 세워 교수신도들의 책을 대원출판사의 영업망을 통해 이용만 하고 있을 뿐 기존의 대원출판 발행의 책은 거의 다 품절시키고 해외 작가와 로얄티 계약을 맺고 출판했던 책들은 모두 품절시켰으며 게다가 일체 단 한권의 책도 저작권 재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가비아라는 호스팅회사와 계약해 힘들여 만든 출판사 홈페이지도 그 사이에 본인 허락 없이 오채원 신도명의로 옮겨놓은 상태였고 안중건이 만든 상생출판 책자를 대원 홈페이지에 실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당일 탁정희에게 본인은 향후 대원 출판사를 본인이 직접 경영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가급적 상생출판사도 자체 영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하고 서로 그렇게 이해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뒤 동년 7월경 출판사 후속 업무 진행과 가급적 형제화합을 위한 대화차 선화동 본가를 세 번 방문했으나 세 번 모두 문도 열어주지않는 냉대속에 포기하고 만 것입니다.

안중건은 내친 형제들에게 모든 생활비를 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인이 대원을 운영하기로 서로 인지한 상태였으므로 일단 본인 통장의 비밀번호를 바꾼 것입니다. 이홍배는 본인이 차용증없이 돈을 빌려갔다는 둥 어쩌고 주장하고 통장 비밀번호를 바꾸어 출판사를 탈취해 갔다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야밤에 무단히 탈취를 한 사람은 바로 안중건이거나 그 휘하 졸개 신도들입니다. 본인은 이들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마치 구원파 신도와 유사하게 변질되어 있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대원은 안병섭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 계속 탁정희가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양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후속업무를 보러 세차례나 내려갔지만 일체의 대화를 끊고 소위 경호신도를 내세워 내쫓아냈기 때문에 부친도 돌아가신 마당에 본인회사 본인의주장을 하는게 법치국가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5월 탁정희와의 대화에서 대원을 직접 경영한다고 서로 이해가 된 상황에서 업무처리가 서로 맞물린 상황에서 대화를 일체 끊고 법적인 소송만으로 해결하려 하는 와중에서도 상호 편의를 위해 탁정희에게 안병섭 개인구좌를 현재 열어주어 운용하고 있고 OTP 번호까지 주어 이용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홍배는 출판사 관련업무와 전혀 관계도 없는 신도일 뿐 아니라 90년대 입도한 신도여서 80년대 만들어진 출판사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하는 자입니다. 절도죄 운운하는 것은 대전을 찾아간  선화동을 세 번 찾아갔다가 세 번 모두 대화를 끊고 쫓아낸 상황에서 과거 출판사 영업부에서 사용하던 안병섭 개인 명의의 영업용 승합차 차량을 2012년 여름무렵 이홍배 박동희가 정병부로부터 키를 빼앗아 갔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직원이었던 정병부에게 차량을 대원출판사에게 돌려달라 한 것입니다. 법정에 묻습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과거 본인이 운영하던 차량을 달라는데 과연 누가 적반하장의 주장을 하는 걸까요. 본인은 이홍배 박동희를 대원출판사 영업부 직원으로 채용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영업방해죄에 절도죄로 형사고발할지에 대해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섯째 2011년 전신도 앞에서 안병섭에 대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말로 날조해 이종성을 죽이기 위해 총을 세 자루 사서 준비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명예훼손한 사실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발언은 본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이미 훼손시킨 사항입니다. 본인은 이런 일이 있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부친 사후 이홍배가 본인이 없는 사이 전 신도에게 이러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본 첨부한 대전의 가람속기에서 뜬 녹취록 원본에는 이종성을 죽이기 위해 안병섭이 총을 세 자루 사놓고 준비하고 있다고 신도들을 선동하는 발언을 하여 명예훼손을 했지만 본 법정에 이홍배가 제출한 문건에는 그 사실 부분을 살며시 빼놓았습니다. 녹음한 부분을 직접 음성으로 들으면 이홍배가 전신도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무엇이 무서워 본  법정에서는 그 부분을 빼놓았을까요. 참으로 가증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 준비서면 맨 뒤에 가람속기 녹취록 원본을 첨부합니다.

이 홍배는 부친이 임종 전까지 일 년 반 동안  산소 호흡기를 끼고 앓아누운 사이, 본인에 대한 上記의 여러 험담과 이러한 과격한 거짓말로 신도들에게 연판장을 돌려 선동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신도들에게 서명을 받아 부친의 명命이라는 이름으로 동년 2011년 8월 박동희, 한응섭과 함께 분당에 올라와 부종정직을 해임한다고 일방 통고한 것입니다. 본인은 부친이 해임하는데 동의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뒤 만난 부친에게도 그 사실을 들은 적 전혀 없습니다. 이미 병원에서 놀리고 있는 직책이니 능력있는 다른사람을 임명해 직책을 사용할 수 있으면 사용하라 한 적 있으므로 편챦은 부친에게 구차하게 묻지도 않았습니다만 다만 해임사실은 전혀 모르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부친은 84년 서울 회기동 도장에서 종정 부종정 체제를 처음 시행하면서 본인에게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족보문제 연구소 사무총장을 역임한 박재도란 분을 부종정으로 영입해 본인과 2인 부종정직을 맡은 직후입니다. 이 분과 동석한 자리에서 박재도 분에게 들으라는 듯이 본인에게 종정 부종정 직은 단체가 커져 또 다른 직제를 만들기 전까지는 누가 뺏어갈 일도 없고 이 애비가 있는 한 너희 형제가 만든 단체인데 누가 감히 배사율(背師律)로 너희를 밀어낼 놈이 있겠느냐. 상제님 진리 자체가 그렇게 되어있지도 않고 상제님 진리는 다 연원(淵源)체계다. 너희 형제는 그저 지금까지 잘 해 오고 있는 것처럼 서로 화합해 매두몰신 일만 열심히 해서 상제님 의통 성업을 성공적으로 이룰 궁리나 잘하라 하신 바 있습니다. 이 말씀은 혹시나 2인 부종정 사이의 갈등을 미리 우려해 하신 말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친은 해방이후 2변 도운을 개척해 모든 것을 이상호 이정립 형제에게 빼앗기다시피 한 뒤 아예 단체에서 일체 물러남을 선포한 하신 바 있습니다. 부친은 20년간 자식을 키운 뒤 자식을 데리고 신앙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74년 과거 해방직후 부친이 교육시켜 성장한 황원택이라는 사람이 책임 맡고 있는 김제 용화동에 갔다가 해방당시 옛날제자였던 황원택이 군사부 연원을 부정하고 부친에게 자기 밑으로 재입도하라는 수모를 당한 분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친은 증산도 진리세계에서 연원체계를 떠나서는 그 누구도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하신 바 있고 84년 이후에도 이러한 강의를 여러 차례 하신 바 있습니다.

본인은 부친이 과거에 당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자식에게 대물림 하며 당하게 했을 리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92년도 무렵에 네 형은 정신 병자니 말을 걸지 마라 한 이후 그리고 안중건이 <장자> 책자를 건네주며 미소를 짓는 뜻을 알고 도무(道務)에서 멀어져 조용히 상황만 지켜보고 세월만 보내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얼 탈취하고 어쩌고 하는 것은 진리로 보나 양심에 저울질해 보나 참으로 값어치 없는 요망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홍배는 부종정직 해임을 통보하러 와서 해임당한 이유에 대해 증산도 상생방송국 채널권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세칭 경일대 경영학 박사라는 사람의 논리도 안 맞는 가당치 않은 주장에 대해 이 사람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본인 홈페이지 안원전의 담론의 목적이 홈페이지 전면에 다음과 같이 목적이 분명히 게시되어있고 또한 홈페이지 담론에 한민족 대륙사관에 대한 대륙본토의 향토사료를 번역해 400여 편(20권 분량)이 게재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상에서 책을 쓰려면 각종 자료를 인용해야 하고 인용자료는 소위 하이퍼(Hyper)로 클릭하여 링크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타 사이트에서 인용한 하이퍼로 링크된 글은 얼마 안가 사라지는 사례가 빈번해 각종 참고할 만한 글이거나 인용할 글은 그 글의 전반적인 주장과는 상관없이 본인 홈페이지 한 쪽에 이러한 각종 뉴스 평론 비판글 등을 모아놓고 링크시켜서 사용합니다. 이러한 추세는 인터넷 시대의 글쓰는 사람에게는 보편화된 상식입니다. 본인은 이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이 맞는지 박사를 돈 주고 산 사람이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모른다면 말 그대로 박사 신분에 걸맞는 사람이 절대 아닌 것이 되고 알고도 그랬다면 양심이 불량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각종 글을 모아두는 창고로 사용하는 곳을 트집잡아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둥 이명박을 비판하는 바람에 상생방송국 채널신청을 원하는 대로 못해 해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이미 결정한 사안 통고이므로 본인은 이에 대한 코멘트는 일체 안했습니다. 당시 이홍배는 방송위원회 최고실권자 최시중과 함께 케이블 TV 채널권 분배 책임자인 *몽룡이 소망교회 같은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좌보우필인데 안원전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반 기독교성 자료와 반이명박 성격의 비평자료들 때문에 이들 기독교 신자 실권자들에 의해 증산도에서 디스카버리 채널 옆의 교양채널로 배분되도록 신청한 것이 반려되어 시청률이 떨어지는 종교채널로 배분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한심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증산도를 거론하면 종교단체로 알지 누가 교양단체로 알겠습니까. 채널 배분 책임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일반적인 상식을 가졌다면 당연히 증산도 방송국을 종교로 배분하지 교양채널로 배분하겠습니까. 증산도 간부라는 사람이 종교단체인 증산도 방송국을 세상에 홍보하면서 종교방송국으로 채택되도록 하질 않고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교양채널로 채택하도록 했다는 사실자체가 사실 남보기 낯 간지러운 경박한 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추진하던 언 발에 오줌 누기 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체를 개척해 자신들을 불러들여 신앙하게 한 연원의 총사수인 본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본인 모르게 전신도 앞에서 모함해 내쳤습니다. 그리고 본인 앞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앓아누우신 부친 이름으로 해임통보만 한 것입니다. 본인은 간부해임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한마디로 대변했습니다. 결국 본인 말대로 하면 기독교신자 이명박에 의해  증산도 부종정이 해임된거네? 본인은 그 말을 전하는 순간 이홍배의 눈길에 숨겨진 음흉한 의도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30.안병섭은 안중건과 이종성이 형제를 내치고 대화를 일체 단절한 채 모든 것을 법정소송을 통해 하라는 이종성, 안상돈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단지 가난한 증산도 단체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상속문제로 그러려니 하고 단순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파산해 경매까지 당하고 가정마저 뿔뿔이 해체되어 헤어져 남의 사무실을 전전하며 사는 본인에게 5천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까지 진행하는 것을 보고 이건 그런 단순한 차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보면 대국적으로 증산도 판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천지공사의 문제요, 좁게 보면 형제간의 의로움 싸움으로 이해합니다.

본인은 돌에도 떡으로 대하라는 상제님 말씀과 마지막 남은 한조각 형제간의 혈육의 정 때문에 차마 법적 해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어찌하질 못해 왔는데 모든 것을 순진하게 대꾸도 안하면 법적으로는 결국 모두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2014. 7월10일 이종성이 시켜 이홍배 박동희 등이 법정에 제출한 서류를 떼어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부친사후를 대비해 단체를 실질적으로 개척한 부종정인 본인을 내치기 위해 안중건이 이종성을 내세워 이홍배 박동희 이용욱 한응섭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거사해 온 것임을 처음으로  문서상으로 확인했기때문입니다.

이미 이홍배 등이 이종성 등과 짜고 부종정이었던 안병섭 본인을 연판장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음해하여 모략 날조해 개인의 명예를 짓밟음은 물론 타계하기 직전의 정신이 혼미한 부친에게 자신들이 안중건의 종통승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부자간의 천륜을 해할 정도로 자식에 대해 오해하고 돌아가시게 한 억울함은 그 무엇으로 보상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잘려서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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