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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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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지조화 현무경~도안의 집 경만장 안내성 가에서 ~~

작성일 : 14-06-07 11:25


 







천지조화
현무경~도안의 집 경만장 안내성 가에서 ~~

 

 







글쓴이 : 향수

  




<이중성 대개벽경>*기유년(1909)
춘정월 원단에 상제님께서 대흥리 경석의 집에서, 현무경(玄武經)과 병세문(附記 참고)을 지으시니라. 두 권을 양지 위에 놓으시고 흰 병 (가을
金 상징) 하나와 작은 칼 하나를 그 곁에 놓으시고 잘라놓은 종이에 칙명을 쓰시니,

  

*길한 꽃에 길한 열매가 열리고, 흉한 꽃에 흉한 열매가 열리니라(吉花開吉實
凶花開匈實)

  

그 칙서를 말아서 병 입구를 막으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되, “현무경이 천지의 이치를 다하고 조화의 신묘함을 담고 있으니,
이 책이 나오면 천하가 다 알게 되리라.” (

종이에 철도선을 그려놓고 북쪽에 점을 치사 정읍이라 쓰시고, 남쪽에 점 치사 사거리라 쓰신 뒤에 그 중앙에 점을 치려다가 그치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떠나실 때에 점을 치시며 말씀하시되, “이 점이 되는 때에는 세상이 끝나게 되리라.
)

  

-己酉春正元 大先生 在大興 作 玄武經 病勢文 二卷 置洋紙之上 白甁一 小刀一 置其傍 折紙 書勅 吉花
開吉實 凶花 開凶實 厥勅 卷揷甁口 一日 曰 玄武經 窮天地之理 奪造化之妙 此冊 出 爲天下之知-

  

<formulas></formulas>

<대순전경 초판>*기유 년(1909) 정월 1일에 현무경이 탈고되거늘 안 내성의 집에서 백
병(흰 병)에 물을 담은 후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두루마리)을 지어 병입구를 막아 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 위에 현무경 상하 편을
놓아두었더니 선생이 화천하신 후에 경석이 내성에게 와서 현무경을 빌려 가면서 병구(병입구)막은 축지(두루마리종이)를 빼어서 펴보니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씌어 있더라.

  

原文: 己酉 正月 一日에 玄武經이 脫稿되거늘 安 乃成의 집에서 白甁에 물을 담은 후에 洋紙에 글을 써서 卷軸을 지어 甁口를 막어
놋코 그 압헤 白紙를 (깔)고 白紙 우에 玄武經 上下篇을 노아두엇더니 先生이 化天하신 後에 京石이 乃成에게 와서 玄武經을 빌어 가면서 甁口막은
軸紙를 (빼)여서 펴여보니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씨여 잇더라.

  

<2판대순전경>*첨가성구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라는 글과
병세문이 씌어 있었는데 병세문은 이러하니라 “병유대세 병유소세 대병무약 소병혹유약 연 대병지약 안심안신 대병용약 사물탕팔십첩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대병출어무도 소병출어무도 득기유도즉 대병 물약자효 소병 물약자효 지기금지사월래 의통 망기군자무도
망기부자무도 망기사자무도 세무충세무효세무열 시고 천하개병 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 성부, 성자,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재전주동곡 생사판단
성신, 대인대의 무병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동유대성인왈동학 서유대성인왈서학
도시교민화민 공자 노지대사구 맹자 선세제양지군 근일 일본국문신무신 병무도통 조선국상계신중계신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계어인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직자의야 업자통야』

  

<대순전경 초판>*병세문은 주지(두루마리 종이)에 써서 물 담은 백병구(흰 병 입구)를
막아서 차 경석의 집에 두신 것인데 화천(어천)하신 뒤에 발견되었으나 그 후로 원지(원래 종이)는 없어지고 다만 구구상전(입에서 입으로 서로
전함)된 것이니 차서(차례 순서)가 많이 위착(어긋남)된 듯하며 그 이외 산문(흩어진 문장)도 분명한 기록이 없으므로 듣는 대로 기록하니
오락(그릇누락)이 없지 못할 줄로 사(생각)하노라.

  

原文: 病勢文은 周紙에 써서 물담은 白甁口를 막어서 車 京石의 집에 두신 것인대 化天하신 뒤에 發見되엿스나 그 後로 原紙는 업서지고
다만 口口相傳 된 것이니 次序가 만히 違錯된 듯하며 그 以外 散文도 分明한 記錄이 업슴으로 듯는 대로 記錄하니 誤落이 업지 못할 줄로 思하노라.

  

<동곡비서>*기유년(己酉 1909年) 정월 1일에 현무경(玄武經)이 세상에 출현하거늘,
안내성의 집에서 흰병에 물을 담은 후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卷軸)을 지어 병입을 막아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 위에 현무경 상하편을
놓아 두었더니, 선생이 선화하신 후에 차경석이 내성의 집에 와서 현무경을 빌려가면서 병입을 막은 종이를 빼어서 살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더라.

  

<용화전경>*세존님께서 정읍 차 경석 집에 계실 새 기유 년 정월 1일에 백지를 가져오라
하사, 책 2권을 말어 병속에 넣으시고 종이로 마개를 막아 그대로 두게 하신지라. 화천하신 후 그 마개를 떼어보니 길화길실(吉花吉實)
흉화흉실(凶花凶實)라 써 있고, 그 책 2권을 내여보니 한 권은 현무경(玄武經) 부(符)요, 한 권은 현무경(玄武經) 서(書)리라.

  

<용화전경>*이 현무경은 차 윤칠이가 보관 중 당시 관(官)의 통제가 심하므로, 부득이하게
잿더미 속에 숨겨두었다가 얼마 후에 내여 보니 그 자(字)는 여전하나 책지(冊紙)가 가히 상한지라. 고로 본문 위에다 초지(初紙)를 대고
필사한지라, 원문 초에는 초서하시고 지기금지원위대강은 정서(正書)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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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원경(仙政圓經)>*차절(此節)은 현무경(玄武經) 법서(法書)에 십구자(十九者)난
천지이종지수(天地二從之數)라 하신 바 천수구도(天數九度)로 건존증산(乾尊甑山)께서 구년공사(九年公事) 설법(說法) 하시고 지수십도(地數十度)로
곤존고씨(坤尊高氏)께서 십년공사(十年公事) 설법(說法)의 원칙약초야(原則略抄也)라

  

건존증산(乾尊甑山) 께옵서 선후천(先后天) 삼계대업(三界大業)의 공사(公事) 설법(說法)은 대순전경(大巡典經)에 총재이(總裁而)
자(自) 신축년(辛丑年)으로 지(至) 기유년(己酉年)이 구년공사(九年公事) 설법(說法) 종결(終結)하사 계통전수어(繼統傳授於)
곤존고씨이(坤尊高氏而) 곤존(坤尊)께서 자(自) 병인년(丙寅年:1926)으로 지(至) 을해년(乙亥年:1935)이 십년공사(十年公事)
설법이(說法而) 전무전서(全無典書)나 공사시(公事時) 참종인(參從人)과 고민환(高旻煥)이 구상채집기초(究想採集記抄)에
선후불일불시(先後不一不啻)라 항하일사격(恒河一沙格)로되 추일사이가측(推一事而可測)이로다. 연이수기(然而隨其) 건곤양위(乾坤兩位)
사업원리(事業元理) 종지(宗旨)하야 귀의본원이수기성경신(歸依本源而隨其誠敬信)하야 내성의세성업(乃成醫世聖業)하야 만방(万邦)
유일포덕(惟一布德)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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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은
증산이 1909년 06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성심껏 시봉했으며 증산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할 때 가장 큰 조력자가 되었다.
1904년 태운은 당시 15세였던 자신의 넷째 딸 말순(末順)으로 하여금 증산의 수종을 들게 했다. 이 때문에 훗날 말순은 미륵불의 좌보처인
홍덕관음불(興德觀音佛)로 믿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약장, 둔궤 등 증산의 유물이 1907년부터 증산을 모셨던 고판례(高判禮)에게 전해졌고,
마침내 1911년 9월 고부인이 증산의 영(靈)과통한 다음 정읍 대흥리에 증산교단 최초의 교단인 태을교를
창립했다
. 1913년 봄 태운은 대흥리로 가서 고부인을 뵙고 증산이 저술한 현무경(玄武經)을 등사해 와서 그 이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태운은 교권을 장악할 야망을 지녔던 차경석(車京石)과 불화가 생겨 태을교를 떠났다. 태운은 1914년 가을 증산의 본부인인
정치순(鄭治順)을 모셔다 증산의 성령(聖靈)이 감응되게 한다고 주송(呪誦) 수련을 시켰으나 정부인이 수련석에서 실신하여 허사가 되고 말았다.
태운은 자신이 직접 통령(通靈)하겠다고 결심하고, 1915년 봄 모악산 금강대에 올라 백일동안 수도에 전력했다. 마침내 그는 신안(神眼)이 열려
증산의 영을 통해 영서(靈書)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금강대문답(金剛臺問答)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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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道典>*내성이 태을주 공부에 들어가기 전 고수부님을 찾아 뵙고 현무경을 올려
드렸으나 수행을 하면서 ‘손가락 깝작거리는 놈은 다 죽으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떠올라 현무경을 찾아갈 생각을 아예 버리고 공부에
일심하니라. 내성이 수통목에서 일심으로 태을주를 읽어 율려 도수를 실현하고 대흥리에 가서 고수부님께 인사를 올린 뒤에 그 길로 각지를 돌며
태을주를 읽어 병자를 잘 고치니 포교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니라.

  

  

<선정원경(仙政圓經)>*증산(甑山)께옵서 공사(公事)를 행(行) 하시난대,
일반신도(一般信徒)를 열좌(列坐)케 하시고 대학(大學) 일권(一券)과 현무경(玄武經) 일권(一券)으로 자장(自場) 중에서 책(冊) 이권(二券)을
상호교차(相互交次) 하시며, 고씨(高氏)보고 이 책(이冊)을 밟으며 방중(房中)까지 들어오게 한 후에는, 고씨(高氏)를 누우라 하여
기복상(其腹上)에 거좌(踞坐)하야 대도(大刀)를 고씨(高氏) 항부(項部)에 대(對)하며 천지대업(天地大業)에 중도불변(中途不變) 하겠냐고 다짐을
받으시니,

  

<선정원경(仙政圓經)>*고씨(高氏)께서 변리(變理)가 없겠노라 하니 그러면 그렇지
희열(喜悅)하시며 증산(甑山)께서 누우사, 내 복상(腹上)에 앉아서 그와 같이 다짐을 받으라 하신지라. 고씨(高氏)께서 하는 수 없이 그와 같이
하며 변(變)할 리(理)가 있소있가 하시며 의감(疑感)치 말으소소 하시며, 부서(符書)를 서취(書取)하야 소화(燒火) 하시며 천지(天地)에
고축(告祝)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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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3판>*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 버릴 수밖에
없다하시고 상량공사(上樑公事)를 보실 때, 경석에게 백목(白木)을 가져오라 하사 공사를 보시다가 백목이 부족하다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백목을
더 가져오라 하사 이어서 공사를 마치시니라.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기유(1909) 정월 일일 사시 천사께서 현무경을
종필(집필을 마치심)하사 차 경석에게 맡기시다.

  

原文: 己酉正月一日巳時 天師께서玄武經을終筆하사 車京石의게맛기시다

  

<대순전경 3판>*기유 년 설날, 경석의 집에서 현무경(玄武經)을 쓰시어 흰 병에 물을
담은 뒤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 축(卷軸)을 지어 병(甁)입을 막아 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 위에 현무경을 놓아두시니라. 천사
화천(化天)하신 뒤에 병마개를 빼어서 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과 병세문(病勢文)도 쓰여 있었는데,
병세문은 이러하니라.

  

병유대세

病有大勢

  

병유소세

病有小勢

  

대병무약 소병혹유약 연 대병지약 안심안신 소병지약 사물탕팔십첩

大病無藥 小病 或有藥然 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

  

기 도

祈 禱

  

시천주조화정영세물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대병출어무도

大病出於無道

  

소병출어무도

小病出於無道

  

득기유도즉 대병 물약자효 소병 물약자효

得其有道則 大病 勿藥自效 小病 勿藥自效

  

지기금지사월래 예장

至氣今至四月來 禮章

  

의 통

醫 統

  

망기군자무도

忘其君者無道

  

망기부자무도

忘其父者無道

  

망기사자무도

忘其師者無道

  

세무충세무효세무열 시고 천하개병

世無忠世無孝世無烈 是故 天下皆病

  

병 세

病 勢

  

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癒

  

성부

聖父

  

성자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 재전주동곡생사판단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

  

성신

聖神

  

대인대의 무병

大仁大義 無病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동유대성인 왈동학

東有大聖人 曰東學

  

서유대성인 왈서학 도시교민화민

西有大聖人 曰西學 都是敎民化民

  

공자노지대사구

孔子魯之大司寇

  

맹자선세제량지군

孟子善說齊梁之君

  

근일일본국문신무신병무도통

近日日本國文神武神竝務道統

  

조선국상계신중계신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 계어인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朝鮮國上計神中計神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 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직자의야 업자통야 성지직 성지업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 聖之業

  

<증산도 道典>*하루는 상제님께서 현무경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動於禮者(동어예자)라야 靜於禮(정어예)하나니 曰道理(왈도리)요 靜於無禮(정어무례)하면 則曰無道理(즉왈무도리)니라-예에 맞게 동(動)하는 자라야
예에 맞게 정(靜)하나니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도리(道理)요 무례를 보고도 정(靜)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하느니라.

  

<증산교사(甑山敎史)>*계축년(道紀 43,1913) 봄에 고부인(高夫人)을 가 뵈이고
현무경을 등본하여와서 그 오묘한 법을 잠심 추구하더니 이해 가을에 장 기동(張基東), 장 기준(張基準)이 찾아오므로 두 사람을 데리고 본소에
와서 고부인(高夫人)께 뵙고 인하여 일로부터 교단에 협력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증산교사(甑山敎史)>*갑인년(道紀 44, 1914) 정월에 장 기동(張基東)이 본소로부터
와서 경석과 다투고는 내력을 말하니 형렬이 크게 분노하여 교단을 이탈하고 이로부터 경석을 크게 미워하며 기동(基東)과 교단에서 이탈한 종도들로
더불어 따로 교단을 세우기를 꾀하였다. 이해 가을에 형렬은 정부인(鄭夫人)을 데려다가 수련을 시켜서 신력을 통하게 되면 받들어 세워서
고부인(高夫人)을 대항하여 딴 교단을 세우려고 계획하였더니 정부인(鄭夫人)이 수련석에서 실진(失眞)하였으므로 이 계획이 실패에 돌아가
버렸다.

  

<증산교사(甑山敎史)>*을묘년(道紀 45, 1915) 봄에 형렬이 모악산 금강대(金剛臺)에
올라가서 백일동안 수련을 행하여 신안이 열려서 영서(靈書)를 받으니 이 글은 <금강대 문답(金剛臺問答)>이라는 제호(題號)로 세간에
발표되였고 형렬은 이로부터 신력을 통하였다.(<동곡비서>에는 도통심경(道通心經)으로 전함)

  

<선정원경(仙政圓經)>*무진(戊辰) 동지(冬至) 치성(致誠) 후 신도(信徒)
백이십팔(百二十八)을 소집(召集)하사 이십사방위(二十四方位)에 매방(每方) 오인(五人)식 정립(定立) 하시고, 고씨(高氏)께서는 중앙(中央)에
고층(高層)으로 설단(設壇)이 단상(壇上)에 좌정(坐定)하사, 그 공사(此公事)난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 선불유(仙佛儒) 삼도합일(三道合一)의
운도(運度)를 갱고유신(更考維新)하야 창명익화(暢明益和)케 하노라 하시며,

  

<선정원경(仙政圓經)>*고 민환(高旻煥)에게 명(命)하사 현무경(玄武經)을
자초지종(自初至終)히 독송(讀誦)케 하신 후 연죽(煙竹)으로 좌우선(左右旋)으로 두르시니, 즉시(卽時)에 서색채하(瑞色彩霞)가 혼가(渾家)를
요연(繞連)이라. 고씨(高氏)께서 선지조화(仙之造化) 불지양생(佛之養生)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 창호(唱呼)후, 하단(下壇) 즉 채하(彩霞)가
산공(散空)인지라.

  

<증산교사(甑山敎史)>*(김형렬 교단의 포교방법과 현무경파 장기준의 독립)김 형렬 교단의
포교방법은 입교자로 하여금 태을주를 수련하는 외에 각자의 생년지지에 해당한 동물을 그린 물형부(物形符)를 날마다 수십 장 씩 그린 뒤에 그
동물과 각자의 성명을 새긴 사각형 인장(印章)을 찍어서 불사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의미는 『선천에는 문자부(文字符)를 사용하였으나 후천에는
물형부(物形符)를 사용하여 조화권능을 부리는 것인데 인간의 생년지지는 곧 그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지정된 물형부의 자료니 그 지지인 동물을 많이
그려서 팔 때는 필력(筆力)을 세우고 몸에는 주력(呪力)을 세우면 능히 그 물형부로 조화권능을 부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증산교사(甑山敎史)>*그러나 이것은 형렬 자신이 현무경부(玄武經符)를 사용하는 것을
신도들에게 비밀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 후일에 탄로되었다. 병진년(道紀46, 1916) 봄에 신도 중에서 독신자 360명을 선발하여 전국
360군에 파견하여 육무(六戊)를 묻었는데 360군 읍 소재지에서 한날한시에 물형부를 전신주 밑에 묻으라는 것인데 육무를 묻은 지 일 개월
이내에 일본국내에 큰 변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이 허사로 돌아감에 신도들이 낙망하여 버렸고 그중에 장 기준(張基準)은
형렬과의 상종을 끊어버리고 달리 교단을 세워 분립하였으니 곧 후일 법문파(法文派)라고 알려진 교파이다.

  

<증산교사(甑山敎史)>*순천사람 장 기준(張基準)은 원래 나병환자로서 갑인년(道紀 44,
1914)부터 김 형렬에게 추종하였다가 정사년(道紀 47, 1917)에 형렬의 육무 묻은 일이 허사로 돌아감에 실망하고 수개월동안 스스로 수련을
행한 뒤에 현무경의 깊은 뜻을 터득하였다고 주장하고 천사의 도통연원를 받았다고 자칭 신도 수 백명을 거느려 독립교파를
세웠다.

  

<증산교사(甑山敎史)>*무오년(道紀 48, 1918)에 형렬은 전주 위봉사(威鳳寺) 주지
곽 법경(郭法鏡)과 협의하여 위봉사 전주포교당을 근거로 하여 교단을 재건하고 흩어진 신도들을 수습하기에 진력하였다. 기미년(道紀 49,
1919) 구월 대순절에 형렬은 신도 수십 명을 거느리고 금산사 미륵전에 가서 치성을 행할새 금산사 주지 김 윤창(金潤昌)이 『김 형렬과 곽
법경이 공모하여 금산사에 수백 명의 동지를 모아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획책한다』고 일본경찰에 밀고하니 일본경찰이 금산사를
둘러싸고 형렬과 법경을 비롯하여 모인 신도 수 십 명을 모조리 체포하여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전주 일본검사국에 송치하였다. 전주 검사국
예심정(豫審廷)에서는 여섯달 동안 취조한 결과 확실한 증거가 없으므로 이듬해 경신년(1920) 삼월에 전부 불기소로
석방하였다.


  

<선도신정경(仙道神政經)>*어느 날은 고후비(高后妃)께서 돈 삼십 원(三十圓)을
수제(首濟)에게 주시면서 가라사대, 오늘은 네 집을 다녀서 바로 돌아오니라 하시거늘, 수제(首濟)가 영(令)을 듣고 자기(自己)집으로 돌아가
집의 가족(家族)을 보니 온 식솔(食率)들이 굶어서 누워 있는데 아사(餓死) 직전(直前)이거늘, 깜짝 놀랜 수제(首濟)는 주신 돈으로
식량(食糧)을 사다가 우선 미음을 끓여 먹이어 회생(回生)시킨 후 몇 일을 구(救)완하니, 온 식솔(食率)들이 살아나서 생기(生氣)가 돌거늘
그제야 수제(首濟)가 마음을 놓았더라.



<선도신정경(仙道神政經)>*이 때에 들으니 장 기준(張基準)이란 사람이 현무경(玄武經)을
통(通)하였다 하면서 현무경(玄武經) 공부(工夫)를 시키므로 많은 도인(道人)들이 그 문하(門下)에 모여들어 현무경(玄武經)을 공부(工夫)하더라
이로써 수제(首濟)는 남들이 하는 현무경(玄武經) 공부(工夫)가 하도 부러워서 현무경(玄武經)을 배우느라고 두 달 간을 법소(法所)에 돌아가지
않았더니 하루는 어느 사람이 와서 말하되 고 후비(高后妃)께서 돌아오라 하신다 전(傳)하거늘 그제서야 깜짝 놀래며 정신(精神)을 차려
생각(生覺)해 보니 어언간(於焉間) 두 달이 경과(經過)했더라

  

<선도신정경(仙道神政經)>*그 길로 법소(法所)에 돌아가 고 후비님(高后妃任)을 뵈오니
가라사대 너는 그간(間)에 무엇을 했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사실(事實)대로 고(告)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현무경(玄武經) 공부(工夫)는 네가 할
공부(工夫)가 아니니라. 너는 집이나 잘 보고 있다가 일만 이천 명(一萬二千名) 속에 빠지지나 말도록 하라. 이어서 가라사대, 이후(以後)에
누가 나든지 사람이 나리니 그때에는 기념각(記念閣) 하나 잘 지어 줄 것이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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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은당 실기(華恩堂實記)>*종허 노인에게 현무경을 맡기게 되고 또 그것을 구해오게 된
경로는 다음과 같으니라. 즉 정사의 나이 이십사 세 때에 청도 풍각(豊角)의 어느 곳을 지내다가 졸지에 뇌성이 대발하고 폭우가 내리는지라 비를
피하여 어느 집에 찾아드니 주인은 풍병 환자요 부인은 맹인이라, 잠시 피우를 하려든 것이 좀처럼 비가 개이지 않음으로 하는 수 없이 저녁밥을
먹고 그날 밤을 세웠으나 비는 이튿날에도 개이지 않은 채 시냇물은 넘쳐흘러서 건널 수가 없으므로 또 한 밤을 더 쉬게
되었다.

  

<화은당 실기(華恩堂實記)>*내외가 모두 병신이라 딴 사람들의 출입이 희소함으로 그들은
정사를 매우 후대하면서 피차 위로함이 지극한지라 마음에 미안함을 금할길 없어 적적하고 또한 궁금한 판에, 혹 읽을 책이라도 없나 하여 사면을
두루 살펴보니, 한자로 된 글귀와 많은 부적이 그려져 있었음으로 이상하게 느끼어 주인에게 책의 내력을 물은즉, 주인은 이년 전에 한 과객이
들렸다가 자기병을 보고 그 책에 있는 부적을 그려서 먹고 기도를 지성껏 올린다며는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맡겨놓고 간뒤 곧
돌아온다는 사람이 이년이 다 되었어도 종무소식이라고 내력을 설명하고 나서, 그러나 자기는 무식한 사람이라 그가 시키는대로 한번도 해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더라.

  

<화은당 실기(華恩堂實記)>*이에 정사는 그 책을 자기에게 빌려 준다면 경주에 사는 유명한 학자에게 보여 감정을
받은 뒤에 돌려주겠다고 청하여 그 책을 얻어 가지고 경주에 가서 종허 노인에게 보이니 깜짝 놀라면서 이 책은 현무경이라 평소에 한번 구해 보고자
하던 차라고 기뻐하면서 자기는 등서를 할 것이요 원본은 언제까지라도 용처가 있을 때까지 보관하겠다고 한일이 있었었다. 이상과 같은 일이 추억이
되어서 종허 노인을 찾아 환우의 집에 들리니 마침 작은 아들의 집에 출타중이라 곧 기별하여 뵈옵게 되었으며 현무경을 구하려 왔노라고 말하니,
그는 그동안 누차의 수색과 압수에도 불구하고 현무경만은 땅속에 보관해 두었노라고 하면서, 제반 명령의 내용과 공사의 진행관계를 듣고 나더니 몹시
기뻐하더라.
*기유년(1909) 설날 경석의 집에서 현무경을 쓰시어 흰병에 물을 담은 뒤에 양지에 글을 써서 권축을 지어 병입을 막아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위에 현무경을 놓아두시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에 병마개를 빼어서 보니 <>이라는 글과 병세문도 쓰여
있었는데 병세문은 이러하니라.

  

<용화전경>*세존님께서 정읍 차경석집에 계실새 기유년 정월 1일에 백지를 가져오라 하사
책2권을 말어 병속에 넣으시고 종이로 마개를 막아 그대로 두게 하신지라 화천하신 후 그 마개를 떼어보니 길화길실(吉花吉實) 흉화흉실(凶花凶實)라
써있고 그 책2권을 내여보니 한 권은 현무경(玄武經)부(符)요 한 권은 현무경(玄武經)서(書)리라. 이 현무경은 차윤칠이가 보관중 당시
관(官)의 통제가 심하므로 부득이하게 재더미속에 숨겨두었다가 얼마 후에 내여보니 그 자(字)는 여전하나 책지(冊紙)가 가히 상한지라 고로
본문위에다 초지(初紙)를 대고 필사한지라 원문초에는 초서하시고 지기금지원위대강은 정서(正書)하신지라.*



현무경은 차경석성도님집에서 그리셧다는 기록도 있으나 경만장 안내성 성도님 댁에서 남기신것이
확실합니다.3부를 작성하시 엇는데 한부는 도창현에서 불사르시고 한부는 가지고 계셧으며 다른 한부는 조화둔궤에 넣어두신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준 장사수님이 김경학성도님의 연원으로 대학도수를 맡아 연구한것으로 보입니다.장기준도
성인으로 모셔야 할분으로 생각합니다.


해부는 사명기 와 같읍니다. 소멸음해부는 태모님이 사용하신 기록이 있읍니다. 언청계용신도
현무경에 있읍니다. 현묘불측한 현무경은 천지공사를 부로 남기신 것으로 미거한 후인이 알기는 어려우나 부는 신의 宅이요 일점 일획은 모두 천지의
文이라 생각하고 符 아래의 글로서 짐작할뿐입니다.


태모님은 전선필등이 현무경에 빠지자 너희들이
공부할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후천에 신명들을 용사할때 쓰는 글이라고도 합니다.


사명기는 경만장에게 내린 도안의 집 우리들 말복도수에 내린 사명기이므로 사명기를 그려 모시고
혁명에 임하여야 할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상제님께서 태을주는 율려도수라 하시었고 안내성 율려도수는 태모님 앞으로 떨어졋다
합니다.


우리 혁명군은 작지만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작은 포교소부터 시작하여 신앙의 성경신을 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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