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홈페이지 :::


  Total : 1495 (1490 searched) , 7 / 43 pages  

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월인삼매] 성장(誠章) ‘수양매월(首陽梅月)’과 두문동 성수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익명으로 다운만 받아도 됩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월인삼매] 성장(誠章) ‘수양매월(首陽梅月)’과 두문동 성수



 








 글쓴이 : 칠현금

  




성장(誠章)에서 ‘수양매월(首陽梅月) 만고유풍(萬古遺風)’이라 한 것은 청사에 이러한 유풍이 길이길이 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성장(誠章)의 물형 안의 ‘백세청풍이제원(百世淸風夷齊院)’에서 예시하는 백이숙제의 유풍을 말한 것이다. 백이숙제의 유풍은 사실 조선 선비들의 유풍이며 전통이고 이는 성장(誠章)에 그 선비들이 지키고 이어가고자 하였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즉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정안군 이방원과 조영규에 의하여 선죽교에서 피살된 1392년으로부터 두문동에 은거하였던 고려유신으로부터 백이숙제는 청절의 상징으로 정신적 지주이며 존숭의 대상이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목은 이색이나 그의 제자 야은 길재를 통하여 조선조 사림에 깊숙이 뿌리내린 전통이었다.

 

고려사열전에는 정몽주(鄭夢周, 1337 丁丑~1392 壬申)의 이름에 대하여 ‘자가 달가(達可)이며... 그 모친 이씨(李氏)가 임신했을 때 꿈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갑자기 떨어뜨리고 놀라서 깨어 난 뒤 낳았으므로 이름을 정몽란(鄭夢蘭)이라고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하게 빼어났으며 어깨 위에 검은 점 일곱 개가 북두칠성처럼 벌여져 있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을유년) 모친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검은 용이 뜰에 있는 배나무로 올라가기에 놀라서 깨어 나가 보니 바로 정몽란이었다. 그래서 정몽룡(鄭夢龍)으로 고쳤으며 관례(冠禮)를 하고 나서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탄생에 얽힌 꿈 이야기는 포은보다 200년 후에 태어난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에게서도 보인다. 이율곡은 덕수이씨 이원수와 신사임당 사이에서 1536년(중종 31년, 丙申) 강릉 북평현 외가에서 태어났다. 이는 이원수가 강릉에 오랫동안 세거하여 온 신씨집안에서 데릴사위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이율곡은 학문과 그림으로 명성을 떨친 어머니 신사임당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사임당은 '어린아이의 머리는 백지와 같다. 부모의 가르침으로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서화에 능하였던 사임당의 곁에서 율곡은 다소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글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석류알을 보고 율곡에게 물었다. "아가, 이것이 무엇 같으냐?" 잠시 생각에 잠긴 율곡은 고시를 인용하여 "석류 껍질 속에 부서진 붉은 구슬[石榴皮裏醉紅珠]"이라고 답했다. 이때의 율곡의 나이는 겨우 입을 떼고 말을 더듬거릴 수 있는 고작 세 살에 불과했다. 이는 율곡이 세 살 때 이미 말과 글을 배우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율곡의 나이 여덟 살 때 이원수가 파주로 이주하게 됨에 따라 율곡은 임진강 화석정(化石亭)에서 살게 되었다. 원래 이곳은 야은 길재(吉再)가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하루는 율곡과 우계 성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혼은 백인걸에게 수학한 뒤에 퇴계 이황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율곡과 성혼은 한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평생 친구로 지냈다. 하루는 성혼이 자랑하듯이 말했다. "나는 일곱 줄을 한꺼번에 읽을 수가 있소." 율곡은 웃으면서 "나는 한꺼번에 겨우 대여섯 줄밖에는 못 읽소."라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열 줄을 한꺼번에 읽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했을 때 용이 아이를 감싸 품 안에 넣어주는 꿈을 꾸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사임당은 어린 율곡을 현룡(見龍)이라고 불렀다.

 

유교의 경전이 제대로 도입되기 전에 이미 성리학에 정통하였던 포은의 이름이 주나라를 꿈에 그리워 한다는 뜻의 몽주(夢周)인데 초명이 몽룡(夢龍)이었던데 비하여 정확히 200년의 시차를 두고 율곡의 초명이 현룡(見龍)인 점은 기이하다 할 것이다. 포은의 시호가 문충(文忠)인데, 포은이 1392년 임신년 선죽교에서 피살된 지로부터 64년만인 1456년 병자년에 사육신이 죽었고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인 성삼문의 시호가 충문(忠文)인 것과 성삼문의 오랜 동료였던 신숙주의 시호가 포은과 동일한 문충(文忠)인 것도 특징적이다.

 

임신년인 1392년에 포은이 피살되고 64년이 지난 1456년 병자년에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81년이 지난 1472년 임진년 12월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매월당 김시습은 신묘년인 1471년 봄에 한양에 들어왔다가 성종3년이던 이 해 가을에 수락산에 터를 잡고 은둔할 마음을 먹었다. 태종 17년인 1417년 정유년(丁酉年) 6월 정유일(丁酉日)에 태어났던 신숙주(申叔舟)는 3년 뒤인 1475년 성종6년 을미년(乙未年) 여름 6월 무오일(戊午日)에 세상을 떠났다. 병자년에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참화를 당하고 다시 64년이 지난 1519년(중종 14) 기묘년 음력 11월에 조광조, 김정, 박훈, 김식 등의 사림파가 숙청을 당하는 기묘사화의 참변이 또 일어난다. 신숙주가 세상을 떠난 지 45년째 되던 해이다. 이율곡이 태어난 것은 사육신이 참변을 당한 해로부터 80년째이며 세조실록이 완성된 1471년 임진년으로부터 64년, 기묘사화가 일어난 해로부터 18년째에 해당하는 해였다. 이율곡이 태어난 1536년(丙申)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 태어난 해이기도 한데 6년 뒤인 1542년 임인년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조 최대의 첨예한 논쟁인 기축옥사의 중심에 선 인물인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태어난 것은 율곡과 송강이 태어나고 10년이 지난 뒤인 병오(丙午)년이다. 1589년 기축년 옥사사건은 3년간 진행되었는데 정여립을 비롯하여 1000여명이 참화를 입은 조선조 최대의 선비들의 화란이었던 이 사건의 발단과 경과의 중심에 해당하는 인물이 이율곡과 정철이었으니 1592년 임진년에 왜란을 당하고 이듬해 정철이 강화에서 굶어 죽기까지는 조선개국으로부터 200년이 지난 때였다.(1392년 임신년에 포은이 피살되고 1393년에 조선이 개국하였고 1592년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났다) 조선 최대의 역모사건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기축옥사가 일어난 것도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70년에 해당하고 3년간 참화가 진행되었으니 72년이란 시간을 채운 이 참변 끝에 찾아온 것이 임진란이었다.

 





중종 37년 1542년 임인년 10월 의성의 외가에서 아버지 유중영(柳仲郢,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조 최고의 경세가로 불린다. 1558년 17세 때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5세손 이경의 딸과 혼인했다. 유성룡은 어린 시절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았는데 4세 때 이미 글을 깨우친 천재였다. 20세에 관악산 암자에서 홀로 맹자를 읽고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승려가 도둑으로 변장하여 유성룡의 담력을 시험하였다고 한다. 이때 그는 굳은 의지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글을 읽었고, 승려는 그가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전한다. 1562년 가을, 21세의 유성룡은 형 운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업에 매진했다. 퇴계는 이들 형제의 학문적 자질을 높이 사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형 운룡은 당시의 선비들이 학문이 채 영글기도 전에 과거시험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는 세태를 한탄하고, 과거시험보다는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형 운룡에 이어 유성룡을 본 스승 퇴계는 그가 하늘이 내린 인재이며 장차 큰 학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퇴계는 “마치 빠른 수레가 길에 나선 듯하니 매우 가상하다”라고 감탄하였고 동문수학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내가 퇴계선생 밑에 오래 있었으나 한 번도 제자들을 칭찬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그대만이 이런 칭송을 받았다”고 놀라워했다. 기축년에 사옥이 일어나고 서인이 전권을 장악했을 때 유성룡은 나이 50으로 좌의정이 되어 이조판서를 겸직했고, 51세가 되던 이듬해 임진년(1592)에 선조의 특명으로 병조판서를 겸임하면서 군기를 관장하게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곧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호서, 호남, 영남을 관장하는 삼도 도체찰사라는 직책을 맡아 전시 상황의 군사 업무를 관장하면서 전국 각처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게 하고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를 편성했다. 다시 신임을 얻어 영의정에 복귀하여 1598년까지 조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해 일본과의 화친을 주도했다는 누명을 씌운 북인 세력의 거센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파직되었다. 이로 인하여 이듬해 고향인 하회마을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뒤에 누명이 벗겨지고 관직이 회복되었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7년동안의 선조의 부름을 거절하며 고향을 지키게 하였다. 이충무공에게 선무1등공신 녹훈과 좌의정이 증직되었던 1604년(甲辰)에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의 저술을 마치게 된다.

 

정암 조광조의 시호가 문정(文正)인데 이율곡의 시호가 문성(文成)이었고 퇴계 이황의 제자로 충무공 이순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또 임진란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징비록을 남겼던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시호가 또 포은과 신숙주와 시호와 같은 문충(文忠)이다. 이들의 시호와 태어난 해, 시대의 격변이 일어난 해의 의미는 두문동성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성장(誠章)의 ‘백세청풍이제원(百世淸風夷齊院)’과 ‘수양매월(首陽梅月) 만고유풍(萬古遺風)’에 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두문동 성수의 중심에 64와 81이란 숫자가 있고 거기에 포은과 성삼문과 신숙주와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이율곡과 정철과 정여립이 있고 유성룡이 있다. 기묘사화 때의 성균관대사성 동천(東泉) 김식(金湜) 또한 조광조와 같은 임인생이었다.

 

성장(誠章)이 병신(丙申)의 물형이라고 하였으므로 이에는 이율곡을 불러 그 사명을 맡겼다고 할 수 있고, 거기에 포은에서 성삼문에 이르는, 또 조광조와 김식에 이르는 이제원의 도수가 붙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정여립을 비롯한 조선 사림의 원혼을 푸는 도수가 들어 있다 하겠다. 이 가운데 멸문을 당하여 중천신이 된 성삼문이 있고 그 전후로 수양과 매월당 김시습이 있다면 성장(誠章)에서 백이숙제이제원과 수양매월 만고유풍의 의미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천문지호에 세 개의 문(三門)이 있다고 하였는데, 성삼문의 태어나고 죽는 일에도 ‘삼초(三哨)’의 문답이 있었다. ‘태어날 때 세 번 묻더니 죽을 때도 세 번 신문 당하고 죽었다’는 성삼문의 운명이 참으로 기이하지만 하늘이 그를 특별히 쓰기 위하여 큰 업을 남겼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여기서 꼭 하나 되짚어 보고 싶은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의미이다. 성리학적 토대 위에 설립된 조선에서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교육을 통하여 학업을 쌓아야 했고 왕세자의 자리는 고된 학업을 쌓고 또 시험을 통하여 그 성취도를 검증받아야만 했다.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성리학적 이상에 얼마나 충실하려 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통 적장자 계승의 왕위계승의 정통성이란 원칙은 이상하리만치 지켜지지 못했다. 즉 적통인 정실인 중전 소생의 아들이어야 하고, 적통 중에서도 장자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조선의 왕위계승에서는 불가피하게 적용되기가 어려웠다. 개국조인 태조 이성계부터가 우선 차남이었고, 최초의 적장자였던 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병사하였고, 그 뒤를 이은 단종 또한 정변으로 물러나서 시해되었다. 성종의 맏아들로 등극한 연산군은 31세로 폐출당했고, 중종의 적장자인 인종 또한 재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31세로 병사하였다. 명종 사후 적통이 끊어지게 되어 후계가 없자 중종의 후궁 소생 덕흥대원군의 3남인 선조가 방계로 즉위한다. 이후 효종의 적장자로 현종이 등극하였으나 34세로 병사하였고, 현종의 적장자였던 숙종이 재위 45년 10개월로 60세의 일기로 승하하니 적장자로 유일하게 제대로 재위를 한 임금이다. 개국조인 태조부터 고종까지 26명의 왕 가운데 적장자 출신 임금은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 등 여섯 명에 불과한 것이다.

 

적장자가 폐출당하는 정변까지 일어나면서 기구하게 이어져 온 조선의 왕위계승은 당요(唐堯)가 순(舜)에게 선양한 것에 못지아니한 숙명적이고도 강제적인 상황이었다 할 것이니 이것이 단종의 한인가, 단주의 한인가. 오백년 동안 종묘사직을 떠받친 성리학적 전통 속에서 백이숙제의 한만큼이나 뿌리 깊은 왕통의 한이 의미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성삼문이 지키고자 했고 우려하고 우려했던 일이 이런 것이었을까.




만사지 15-08-11 21:16

  

성장(誠章)에서 ‘수양매월(首陽梅月) 만고유풍(萬古遺風)’이라 한 것은 청사에 이러한 유풍이 길이길이 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성장(誠章)의 물형 안의 ‘백세청풍이제원(百世淸風夷齊院)’에서 예시하는 백이숙제의 유풍을 말한 것이다.
    




  



만사지 15-08-11 21:16

  

백이숙제의 유풍은 사실 조선 선비들의 유풍이며 전통이고 이는 성장(誠章)에 그 선비들이 지키고 이어가고자 하였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즉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정안군 이방원과 조영규에 의하여 선죽교에서 피살된 1392년으로부터 두문동에 은거하였던
고려유신으로부터 백이숙제는 청절의 상징으로 정신적 지주이며 존숭의 대상이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목은 이색이나 그의 제자 야은 길재를 통하여 조선조 사림에 깊숙이 뿌리내린 전통이었다.
    




  



옥수 15-08-11 21:56

  

정몽란(鄭夢蘭)- 정몽룡(鄭夢龍)-관례(冠禮) 후  정몽주(鄭夢周
    




  



옥수 15-08-11 21:57

  

꿈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갑자기 떨어뜨리고 놀라서 깨어 난 뒤 낳았으므로 이름을 정몽란(鄭夢蘭)이라고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하게 빼어났으며 어깨 위에 검은 점 일곱 개가 북두칠성처럼 벌여져 있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을유년) 모친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검은 용이 뜰에 있는 배나무로 올라가기에 놀라서
깨어 나가 보니 바로 정몽란이었다. 그래서 정몽룡(鄭夢龍)으로 고쳤으며 관례(冠禮)를 하고 나서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오 15-08-11 22:27

  

사임당은 '어린아이의 머리는 백지와 같다. 부모의 가르침으로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서화에 능하였던 사임당의 곁에서 율곡은 다소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글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해오 15-08-11 22:30

  

율곡과 성혼은 한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평생 친구로 지냈다. 하루는 성혼이 자랑하듯이 말했다.
"나는 일곱 줄을 한꺼번에 읽을 수가 있소." 율곡은 웃으면서 "나는 한꺼번에 겨우 대여섯 줄밖에는 못 읽소."라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열 줄을 한꺼번에 읽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했을 때 용이 아이를 감싸 품 안에 넣어주는 꿈을 꾸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사임당은 어린 율곡을 현룡(見龍)이라고 불렀다.
  
글을 한번에 읽는 방법은 현대에도 가능한가를 실험한 것인데 그 시대에 이미 방벙을 알았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칠현금 15-08-11 23:06

  

타고난 인재들이 있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도문에도 인재가 이처럼 쏟아지겠죠.
    




  



사오리 15-08-11 23:15

  

최고의 문장은 남다른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쓰고자 하는 내용
에 꼭 알맞게 할 뿐이며, 최고의 인품은 남다른 특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
라 다만 인간 본연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호반도시 15-08-12 01:18

  

성리학에 정통하였던 포은의 이름이 주나라를 꿈에 그리워 한다는 뜻의 몽주(夢周)인데 초명이 몽룡(夢龍)이었던데 비하여
정확히 200년의 시차를 두고 율곡의 초명이 현룡(見龍)인 점은 기이하다 할 것이다.
    




  



호반도시 15-08-12 01:18

  

포은의 시호가 문충(文忠)인데, 포은이 1392년 임신년 선죽교에서 피살된 지로부터 64년만인 1456년 병자년에
사육신이 죽었고 사육신의 대표적 인물인 성삼문의 시호가 충문(忠文)인 것과 성삼문의 오랜 동료였던
신숙주의 시호가 포은과 동일한 문충(文忠)인 것도 특징적이다.
    




  



혁명밀알 15-08-12 02:29

  

조선조 최대의 첨예한 논쟁인 기축옥사의 중심에 선 인물인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태어난 것은
율곡과 송강이 태어나고 10년이 지난 뒤인 병오(丙午)년이다.
    




  



혁명밀알 15-08-12 02:30

  

1589년 기축년 옥사사건은 3년간 진행되었는데 정여립을 비롯하여 1000여명이 참화를 입은 조선조 최대의 선비들의
화란이었던 이 사건의 발단과 경과의 중심에 해당하는 인물이이율곡과 정철이었으니 1592년 임진년에 왜란을 당하고
이듬해 정철이 강화에서 굶어 죽기까지는 조선개국으로부터 200년이 지난 때였다.
(1392년 임신년에 포은이 피살되고 1393년에 조선이 개국하였고 1592년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났다) 조선 최대의
역모사건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기축옥사가 일어난 것도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70년에 해당하고 3년간 참화가
진행되었으니 72년이란 시간을 채운 이 참변 끝에 찾아온 것이 임진란이었다.
    




  



목련 15-08-12 06:31

  

성장(誠章)이 병신(丙申)의 물형
    




  



각설탕 15-08-12 07:08

  

이율곡이 태어난 1536년(丙申)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 태어난 해이기도 한데
6년 뒤인 1542년 임인년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조 최대의 첨예한 논쟁인
기축옥사의 중심에 선 인물인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태어난 것은 율곡과 송강이 태어나고
10년이 지난 뒤인 병오(丙午)년이다
    




  



동선 15-08-12 09:12

  

유성룡은 나이 50으로 좌의정이 되어 이조판서를 겸직했고, 51세가 되던 이듬해 임진년(1592)에 선조의
특명으로 병조판서를 겸임하면서 군기를 관장하게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다.
    




  



함초롱 15-08-12 09:31

  

천문지호에 세 개의 문(三門)이 있다고 하였는데, 성삼문의 태어나고 죽는 일에도 ‘삼초(三哨)’의 문답이 있었다.
‘태어날 때 세 번 묻더니 죽을 때도 세 번 신문 당하고 죽었다’는 성삼문의 운명이 참으로 기이하지만 하늘이
그를 특별히 쓰기 위하여 큰 업을 남겼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칠현금 15-08-12 16:39

  

시간적으로 쬐끔 여유가 되시는 분은
정여립에 대하여 정리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거 하나만 제대로 파고들어도 '전주동곡해원신'의 의미는 거의 마스터될 겁니다.
    




  



바라기 15-08-12 17:00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시호가 또 포은과 신숙주와 시호와 같은 문충(文忠)이다.
이들의 시호와 태어난 해, 시대의 격변이 일어난 해의 의미는 두문동성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성장(誠章)의 ‘백세청풍이제원(百世淸風夷齊院)’과 ‘수양매월(首陽梅月) 만고유풍(萬古遺風)’에 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바라기 15-08-12 17:01

  

두문동 성수의 중심에 64와 81이란 숫자가 있고 거기에 포은과 성삼문과 신숙주와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이율곡과 정철과 정여립이 있고 유성룡이 있다.
기묘사화 때의 성균관대사성 동천(東泉) 김식(金湜) 또한 조광조와 같은 임인생이었다.
    




  



객1 15-08-12 17:35

  

팔팔은 곰배팔
팔구는 72 아니것습니까 ~
    




  



바람아구름아 15-08-13 00:04

  

유성룡은 어린 시절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았는데 4세 때 이미 글을 깨우친 천재였다.
20세에 관악산 암자에서 홀로 맹자를 읽고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승려가 도둑으로 변장하여 유성룡의 담력을 시험하였다고 한다. 이때 그는 굳은 의지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글을 읽었고, 승려는 그가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전한다.
    




  



멜론 15-08-13 06:50

  

후원의 나뭇 잎사귀에 꿀로 글자를 써서 결국은 뉘명을 쓰게 만들었던 조선의 간륵한 역사
무슨 수든 안 썻겠습니까.
    




  



현포 15-08-13 21:49

  

성장(誠章)이 병신(丙申)의 물형이라고 하였으므로 이에는 이율곡을 불러 그 사명을 맡겼다고 할 수 있고, 거기에 포은에서 성삼문에 이르는, 또 조광조와 김식에 이르는 이제원의 도수가 붙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정여립을 비롯한 조선 사림의 원혼을 푸는 도수가 들어 있다 하겠다. 이 가운데 멸문을 당하여 중천신이 된 성삼문이 있고 그 전후로 수양과 매월당 김시습이 있다면 성장(誠章)에서 백이숙제이제원과 수양매월 만고유풍의 의미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280    (초중말복 숙구지 문왕 추수도수) 광명이 열리는 세살림~~  안원전   2017/06/26  706
1279    시절화 인물꽃 - 이런 시절(時節)도 있읍니다~~`  안원전   2017/07/02  488
1278    이율곡 선생의 예언 일화  안원전   2017/07/09  901
1277    수부사명(水府司命)  안원전   2017/07/22  873
1276    중화경이 제책되어 나왓읍니다. 이제 본격적인 세살림의 시작입니다  안원전   2017/08/19  505
1275    74년 안 운산(安雲山) 총사수(總師首)의 재 기두(再起頭)와 84년 중복살림의 선포내막  안원전   2017/08/08  777
1274    증산도 제1 부흥의 역사로 기록된 600만명의 보천교시대(이종물사명)  안원전   2017/06/08  1163
1273    범 증산계 통합경전 경전개략  안원전   2017/06/12  757
1272    [정역으로 보는 인사] 간태궁(艮兌宮)과 인신상화(寅申相火) / 칠현금  안원전   2017/08/06  509
1271    보천교 윤고문(보천교총정원)의 상해 임정 독립운동자금  안원전   2017/08/21  475
1270    도통맥을 직접전한 선매숭자 ~  안원전   2017/07/02  674
1269    오작도烏鵲圖23<벽력표에 대한 소고>  안원전   2016/01/22  984
1268    가장 큰 천하사 ~도안 세살림  안원전   2017/08/13  494
1267    후천으로 이끄는 세살림~ 문왕과 이윤의 사명~  안원전   2017/07/09  693
1266    미륵존불로 강림하신 증산 상제님  안원전   2016/04/28  998
1265    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도통판과 남조선배도수  안원전   2017/07/06  1109
1264    21세기 미래문명 만능 광물자원 희토류 정보  안원전   2017/07/31  1291
1263    선정원경은 상제님 태모 고수부님 결연(結緣)시기를 계묘년(癸卯:1903)으로 기록  안원전   2017/07/21  580
1262    징비록과 꽉 막힌 증산도(서나파)의 도정  안원전   2017/07/27  644
1261    회상12 <칼利>  안원전   2015/07/30  1008
1260    변산 화둔공사의 숨은 의미~  안원전   2017/06/25  674
1259    소 금단과 장수시대~~~  안원전   2017/07/01  583
1258    중화경~ 세살림의 교과서~  안원전   2017/08/07  481
1257    세살림 도정으로 크게 일어나길~~`  안원전   2017/06/12  592
1256    세살림과 후천가을 4차산업혁명~신 에너지 시대  안원전   2017/07/16  503
1255    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기러기 날고 현무문 열어 판안으로  안원전   2017/07/07  1129
1254    청음 이상호 남주 이정립, 막내 이순탁에 대한 댓글  안원전   2017/07/16  1462
1253    (초중말복 숙구지 문왕 추수도수) 문왕의 도수는 당대에 못 이루는 것  안원전   2017/06/15  1071
1252    진법을 보여주는 댓글-천지공사 핵심  안원전   2017/06/29  547
1251    희토류와 4차산업혁명~3살림  안원전   2017/06/14  627
1250    [월인삼매] 성장(誠章)과 성리대전의 성편  안원전   2017/07/05  931
1249    [월인삼매] 문자상형으로서 성장(誠章)  안원전   2017/07/05  1164
1248     [월인삼매] 성장(誠章)에서 용봉 도등 로고의 성격과 의미  안원전   2017/07/05  889
1247    [월인삼매] 성장(誠章)의 문리적 이해  안원전   2017/07/05  656
1246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 (1903~1993)  안원전   2017/06/21  716

[1][2][3][4][5][6] 7 [8][9][10]..[43] [NEXT]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