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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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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월인삼매] 성장(誠章)의 문리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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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삼매] 성장(誠章)의 문리적 이해











 글쓴이 : 칠현금

  

성장(誠章)에서 ‘백세청풍이제원(百世淸風夷齊院)’과 ‘수양매월(首陽梅月) 만고유풍(萬古遺風)’이 의미하는 뜻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성(誠)의 문리(文理)로서의 자의적 해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문장의 고유한 의미와 경학(經學)의 기본적 뒷받침이 없이 사변적으로 때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끼워맞추고 임의로 해석하는 풍조가 난무하면 경위가 바로 서지 못하고 도가 무너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을 갖추고 있지 못한 자들은 잡다한 설에 쉽게 현혹당하기도 한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는 것이다.


 

‘참된 것은 하늘의 도이고 참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하는 중용(中庸)의 구절은 성(誠)에 대하여 간결하면서도 정묘하게 설명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성(誠)을 참다움이나 성실, 정성 등으로 해석하여 언어적 자의에 치우치고 보면 단지 도덕규범으로서 성(誠)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주자는 성(誠)은 진실무망(眞實无妄)한 것이라 하여 천도(天道)가 존재하는 의의에 편승한 해석을 내놓았고 정이천은 진실무망(眞實無望)하여도 올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없다면 진실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주자는 성(誠)의 본질성을 간파하였고 정이천은 인간의 성찰을 각성한 것이다.

 

중용에서는 또 ‘성(誠)이라는 것은 어렵게 근면한다고 하여 그 안에 들 수 없는 것이고 생각한다고 얻는 것도 아니고 그 본모습을 따라야 성(誠)의 한가운데 드는 도를 얻어 성인이 된다(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고 하였다. 이는 단순히 노력하는 것,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하늘의 도인 성(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부연하여 밝힌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도리로서 ‘성지(誠之)’를 중용에서 부연하여 놓은 것인데, 주자는 이에 대하여 “박학지(博學之), 심문지(審問之),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辨之), 독행지(篤行之)”라는 다섯가지 조목으로 사람이 행하는 도를 설명하였다. 광범위한 지식을 배워서 습득해야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세히 따져서 묻고 명백하게 판별하고 독실하게 실행하여야 한다는 주자의 견해는 참되어 허투른 것이 티끌만치도 없는 진실무망(眞實無望)한 천도의 본연의 모습을 사람이 따르는 방법론으로 피력한 것인데, 도덕적 수양을 쌓는 본보기로서 성(誠)은 결국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선천 유교의 한계이고 다시 공론에 치우치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면 중용에서 성(誠)을 어렵게 설명한 것인가? 그럴 리는 없는 것이다. 중용에서 공자가 설파한 천(天)은 호천(昊天) 상제이다. ‘성(誠)은 호천상제의 도이므로 성지(誠之) 즉 호천상제의 도를 행하는 것이 사람의 도이다’라고 하면 중용에서의 성(誠)의 본질은 잘 파악된다. 따라서 중용에서는 ‘지성여신(至誠如神)’이라 하여 성이 지극하면 신과 같다고 하였다.

 


지극한 성의 도는 앞일을 먼저 알 수 있어서 나라나 가정이 장차 흥함에 반드시 길조가 있고 그 망함에 반드시 요사스런 싹수가 있게 되어 시초점과 거북점에서 볼 수 있고 4체에서 움직인다. 화와 복이 바야흐로 이르려 할 때에는 선이 반드시 앞서서 길조를 알고 선하지 아니함이 반드시 흉조를 먼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극한 성은 신과 같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 善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故至誠如神 - 중용 24장)

 

지성(至誠)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호천상제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얼마만큼 호천상제의 도에 이르렀는가 하는 경지에 따라 앞일을 미리 알 수가 있다고 한 것이다. 즉 선으로 행한 자는 선한 길조가 있게 되어 미리 알 수 있고 그 반대로 선하지 아니한 행위를 한 자는 그 흉조가 미리 있게 되는데, 지성(至誠)이 신과 같다는 것은 신이 그렇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천연(天然)한 자연사물은 호천상제가 펼쳐낸 공덕(功化)이고 사람이 하는 행위는 공화(功化)를 얻는 것으로 이를 득화(得化) 즉 교화(敎化)의 공을 얻고, 득명(得明) 즉 밝은 덕(明德)을 얻고, 득체(得體) 즉 호천상제의 본연의 모습을 얻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동학에서 최수운이 설파한 시천주(侍天主)이고 중용에서 말한 성인의 도인 것이다.

 


크도다! 성인의 도여. 넓어서 넘치는 것이 만물을 발육하게 하고 높고도 높아 하늘에 이른다. 아아! 위대하도다. 예의禮儀가 300가지요 위의威儀가 3천 가지니 그 사람을 기다린 후에 행해지리라. (大哉聖人之道! 洋洋乎發育萬物,峻極于天。優優大哉,禮儀三百威儀三千。待其人而後行。- 중용 27장-)

 

중용에서의 성(誠)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아닌 신인합일(神人合一)인 시천주(侍天主) 행위를 밝힌 것이다. 상제의 공화(功化)를 실행하는 주체인 성인이 나타나면 지성(至誠)으로 신이 응하여 성인이 하는 행위가 곧 상제의 명령으로 천지만물에 교화와 명덕이 미치는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행위를 통하여 지성여신(至誠如神)의 경지에서 성인이 상제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을 기다려서 행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은 어떻게 성(誠)을 행하는가? 예의(禮儀) 즉 예로써 준칙을 삼는 것이다. 신은 어떻게 응하는가? 위의(威儀) 즉 위엄으로 그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예(禮)가 성인이 성(誠)을 행하는 준칙이므로 원래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은 예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송나라 때 중용으로 단행본으로 나뉜 것이다. 성(誠)은 예(禮)가 아니면 행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성(誠)은 호천상제의 호령(號令)이며 인신합덕(人神合德)의 문장이며 성인이 천명을 실행하는 목적이고 이유이기도 하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중용에서 성(誠)을 밝혀 놓은 것은 사서오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이하여 놓은 것이다. 이는 성은 사물의 끝이면서 시작이요(誠者 物之終始) 성이 아니면 사물이 없다(不誠無物)고 한 것이나, 성은 자기 자신을 완성시킬 뿐만 아니라 사물을 완성시키는 것(誠者,非自成己而已也。所以成物也​ - 중용 22-)이라고 한데서도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성은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고 사물도 성공하게 한다’ 는 자사의 말이 얼마나 멋진가. 300가지 예의禮儀와 3000가지 위의威儀가 그에 부합하는 사람을 기다려서 실행된다고까지 하였으니 이 이상 더 무슨 말을 추가할 것인가. 자사는 호천상제의 호령(號令)으로 그 공화(功化)를 인간 세상에 성공시키는 시천주(侍天主) 행위가 예의(禮儀)와 위의(威儀)로 사람이 나서고 신명이 응하여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이 절묘한 창조행위가 천지절문이고 예(禮)를 통하여 행해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하라는 신독(愼獨)을 성(誠)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한 다산은 성(誠)을 사천(事天)이라고 하였다. 호천상제를 섬기는 행위가 성(誠)이다, 다산이 이렇게 말한 것 또한 자사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경학 연구의 결과물로 상제를 섬기는 일이 그 답이라고 결론내고 이 결론적인 의미의 사천(事天)을 하는 행위의 과정으로 피눈물 나는 산고 끝에 다산의 여러 저작이 출현한 것이 아닌가.

 


“군자는 어두운 방에서도 두려워 떨며 감히 악을 저지르지 못하니, 상제가 자신에게 강림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닌 덕은 지정대중至正大中한 것이지만,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바뀌고 달마다 해마다 다르게 되면 덕을 성취한 군자가 될 수 없다. 반드시 굳게 잡고 항상 지켜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뒤에야 그의 덕을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안연을 칭찬하여 ‘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늘은 지극히 성실하기 때문에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고, 땅에는 초목과 금수가 생긴다. 성인은 지극히 성실하기 때문에 성대하게 만물을 육성시킨다. 3백 가지의 경례經禮와 3천 가지의 곡례曲禮는 성인이 나타나야 시행된다.”

 

공자가 논어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인(仁)을 행하라 하였는데, 자사가 중용에서 친절하게 밝혀놓은 것을 다산이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여 내 몸에 상제가 임어하여 계시니 신독(愼獨)하여 예(禮)을 행하는 것이 사천(事天)이며 상제를 모시는 길이고 그 길이 바로 자신도 성공하고 천지만물도 성공하게 한다 하였다.

 

경학(經學)의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묘미라는 것이 이러하다. 이문석경(以文釋經)하고 이경석경(以經釋經)하는 가운데 이도석경(爾釋經)하고 이행석경(以行釋經)하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수양대군에 대적하고, 조광조와 김정과 김식이 요순의 태평성세를 이루고자 하였던 신념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비굴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경학(經學)의 심오한 경지를 체득하였기 때문이며, 타고난 재질이라 할 천부적 재능으로 소시로부터 성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노력에 게으르지 아니하였던 탓에 온 천하에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당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목숨을 걸 수 있었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고, 먼 시대를 내다보면서 이 지상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그리움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성(誠)’이 천명임을 알기에 가서는 안되는 길을 결단코 가려 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도리가 거부된 곳에서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타협과 유혹도 용납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김식이 죽기 직전 새겼다는 백암(白巖)


태인 백암리 김경학에게 대학도수를 붙인 것의 의미

그 자신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역모죄를 둘러쓴 것이 이른바 ‘천하공물(天下公物) 하사비군(何事非君)이란 구절 때문인데, 이는 실록에 전한다.

 


o 선조수정실록 22년 기축(1589,만력17) > 10월 1일(을해)

“사마온공(司馬溫公)의 《통감(通鑑)》은 위(魏)로 기년(紀年)을 삼았으니 이것이 직필(直筆)인데 주자(朱子)가 그것을 그르게 여겼다. 대현(大賢)의 소견이 각기 이렇게 다르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바이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정해진 임금이 있겠는가.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임금은 서로 전수하였으니 성인이 아닌가.” 하고 또 말하기를,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왕촉(王蠋)이 한때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이지 성현(聖賢)의 통론(通論)은 아니다. 유하혜(柳下惠)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맹자(孟子)는 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에게 왕도(王道)를 행하도록 권하였는데, 유하혜와 맹자는 성현이 아닌가.”

 

정여립의 역모죄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선조수정실록의 이 기록은 ‘천하는 주인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이 주인이고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있다’고 번역되어 정여립을 평가하는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천하공물론은 동인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인계열의 사림에서는 일반적 통론이었다.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삼국(三國) 조위(曹魏)를 후한(後漢) 다음 왕조의 정통으로 인정하여 위기(魏紀)로 썼었는데, 주자(朱子)가 그의 사관(史觀)을 문제 삼아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지어 소열제(昭烈帝:유비)를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뒤를 이어 한(漢)의 유통(遺統)을 이은 것으로 기술한 것을 정여립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한 것에 대한 위화도회군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또는 적통이 대가 끊기고 방계에서 임금이 된 선조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전국(戰國) 시대 제(齊)나라의 왕촉(王蠋)이 제(齊)나라가 격파되었을 때 연(燕)나라 대장 악의(樂毅)가 그의 어짊을 듣고 부르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기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 하고 자살하였다.(《사기(史記)》 권82 전단열전田單列傳) 정여립은 이를 들어 유하혜와 맹자의 사례를 통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이 성현의 통론이 아님을 반박하고 있다. 정여립의 죄는 이율곡을 등지고 서인에서 동인으로 말을 갈아탔다는 괘심죄와 주자를 비판한 때문에 주자학적 전통이라는 명분론을 빌미로 하여 당쟁의 희생물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하공물(天下公物)은 열자(列子)에서 보인다.

 


몸은 본래 생명의 주인이고 물건은 몸을 키우는 주인이다. 비록 태어난 자기 몸을 온전하게 한다 해도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얻어 가진 물건을 내버리지 않는다 해도 그 물건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건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몸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자연의 몸을 횡령하여 사유하는 것이고, 자연의 물건을 횡령하여 사유하는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자연의 몸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자연의 물건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유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직 지극한 사람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연과 일치되어 아주 지극하고 또 지극한 사람이라고 한다. (身固生之主,物亦養之主。雖全生,不可有其身;雖不去物,不可有其物。有其物,有其身,是橫私天下之身,橫私天下之物。不橫私天下之身,不橫私天下物者,其唯聖人乎!公天下之身,公天下之物,其唯至人矣!此之謂至至者也)​

 

다산의 여유당전서 ‘심경질서’의 발문에도 천하공물론이 등장한다.

 


학문이란 것은 천하의 공물이다. 그 주장이 참으로 도리에 배반되는 내용이라면 비록 대인군자로부터 나온 것일지라도 오히려 신뢰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그 보다 더 하챦은 사람임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주장이 참으로 도리에 들어맞는다면 비록 비루하고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일지라도 오히려 마땅히 세상에 널리 드러내야하는 것인데, 하물며 그러한 사람들 보다 더 나은 사람임에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學問者, 天下之公物也. 苟其言之倍道, 雖出於大人君子者, 尙不敢尊信, 況下於是者哉. 苟其言之中理, 雖出於鄙夫庸人者, 尙當表章之, 況進於是者哉.『與猶堂全書』題・ 跋 <心經疾書跋>)

 

열자에서는 성인이 자연을 천하의 공물로 보는 것으로 논하였고, 다산은 학문을 천하의 공물로 보았으며, 정여립은 공물인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이 어찌 정해져 있는 것인가라는 반론을 이미 망해버린 한나라가 아닌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은 사마광의 통감이 직필이라 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여 왕조가 바뀌고 임금 또한 바뀌었으면 그 시대를 따라 임금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논한 것이다. 다산은 학문이 누구에게서 나오더라도 도리에 맞으면 세상에 드러내어야지 학문에 주인이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러한 논지는 유교의 오래된 이상향이기도 한 대동(大同) 사상의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백성이 더불어 잘사는 대동(大同)의 이상은 천하가 공물(公物)이란 것을 전제로 하여 성립하기 때문이다. 붕당의 폐해에 실망한 정여립으로서는 권력이 사유물이 되어 임금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그 폐해가 천하에 파급되는 것에 대한 좌절감에서 벗어나고자 궁행(躬行)으로 대동사회를 실행하고자 한 것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경학의 결론이 사천(事天)이라는 답을 얻고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이 대동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천하의 공물로써 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을 위하고 정파의 이익을 위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을 개탄하면서 학문을 천하의 공론이라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천하가 성리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확신이 정여립과 다산에게 있었던 것이다.

 

문리(文理)를 궁구하고 석경(釋經)에 전고의 전적을 살피지 아니한다면 도가 어찌 행하고 성인이 어디에 몸을 의탁하여 나올 것인가. 다산은 18년간의 유배지에서 경학을 완성하고 현실에 대한 냉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해결책을 찾아서 저술로 후세에 남겼는데, 18년간 세상과 절연하고 지낸 필자는 전하여 내려온 한 줄의 글로 귀감을 삼았으니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기억이 저물은 어둠의 한 가운데서 이 기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얀 백지마냥 무지한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고인월(古人月)에 황중심(皇中心)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여하튼 다행이라 할 것이다.

 

성장(誠章)에 신명이 출입왕래하는 길이 있고 예장(禮章)에 사람이 행하는 길이 있음은 중용의 도가 성(誠)과 예(禮)로 사람을 기다려 행하여지는 도수가 있는 것이다. 성(誠)을 행하려 하는가. 예(禮)로써 다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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