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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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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징비록과 꽉 막힌 증산도(서나파)의 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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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과 꽉 막힌 증산도(서나파)의 도정



 








 글쓴이 : 현포

  


유성룡은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생각했다. 국왕과 대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도주하면 그것으로 조선은 멸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가가 우리 국토 밖으로 한 걸음만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자른 것이다.“

이때 선조가 국경밖 남의 나라로 도주했더라면 전란의 수습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었을것이며 임금이 앞장서고 대신들도 동조하여 나라와 국토를 버리는, 훗날 경술국치를 주도한 이완용일파에 버금가는 욕을 먹었을것입니다.

징비록을 보면서 비록 신립장군이 패전했다고는 하나 위기에 대응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유성룡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이 효율적으로 전란수습에 나서고, 평상시 안이한 관치보다는 갑작스런 전란을 맞이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충의지사들과 각 군영의 충성스런 장수들이 밀린 전세를 만회할 수 있는데 지금 확 밀렸다고 해서 도주부터 생각한다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의 올바른 행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징비록의 세세한 전쟁상황을 보며 왜군이 임진년에 쳐들어왔을때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적목표는 속전속결의 신속한 진격으로 빠른 시간안에 조선의 요충지와 상징적인 도읍부를 몇개라도 완전히 장악해서 임금을 국경밖으로 몰아내고 행정체계등을 접수하고 최대한 민심을 수습했더라면(곡식을 풀던가..) 조선은 그때부터 잠시나마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땅안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략적으로 왜군은 불리해질수밖에 없으며, 당시 조선군이나 명군이나 왜군이나 조총과 대포의 차이는 있었지만 셋 다 상황에 따라 고만고만한 오합지졸의 모습도 많이 보여준것같습니다.

풍신수길의 야욕으로 처음에는 저들도 거창하게 조선을 정벌하고 명나라까지도 접수한다고 바다를 건너왔지만...비록 아무대비도 없이 한방 얻어맞아 정신이 없던 조선도 시간이 갈수록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며 강력히 대응하자, 점차 패기를 잃고 해안가노략질이나 하고 섬나라 들판이나 통일하던 오합지졸 왜구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설사 그때의 왜군이 조선을 점령해도 조선을 속국으로 다스려나갈만한 역량은 없었을것입니다. 결국은 풍신수길이라는 한 인간의 무모한 야욕으로 삼국의 군대와 조선의 백성이 전란에 신음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순신장군과 각 지방의 의병활동과 특히 명나라의 개입이 없었으면 임진왜란은 더 긴 세월을 전란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풍신수길 이 개노므스키...


징비록을 보면서 그동안 알았던 임진왜란은 그저 이순신장군과 권율장군의 활약으로 대변되던 수치스런 역사정도로만 알았는데... 풍전등화의 위기속에서 빛을 발한 유성룡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위고하의 장수들과 의병들, 그리고 명나라에 원군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 침착하게 대응한 서애선생같은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리더쉽에 따라준 수많은 백성들을 새롭게 볼수가 있어 후손으로서 무한한 긍지를 징비록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시금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징비록...

단 몇줄로도 기록할수 있는 역사의 굵직한 사건과 인물도 중요하지만 그 뼈대에 붙은 수많은 살점과도 같은 이름 없는 민초들과 충절과 배신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역사를 읽는 독자나 후손으로 하여금 한층 더 애증의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 역사의 진면목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민족의 역사를 보면서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것이 리더쉽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사회지도층, 즉 위정자들의 리더쉽을 볼때,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 명철하고 강력한 리더쉽 아래 정책의 방향성이 통일되어야 하는데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심각한 분열이 일어난다는것입니다.

누구라도 어깨위에 견장(대소신료의 벼슬아치,국회의원,장관,기타) 을 달아주면 각자 지들이 잘나서 그리된줄알거나

자신이 맡은 직분보다 임명권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일에만 노력하는 이상한 근성에만 충실해,

국가대계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가 힘들다는것입니다.(황극제의 서나파도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국난이라는 위기를 당해, 아무리 급박하고 경망한 와중이라도 유성룡선생처럼 국가의 근본은 영토,백성,주권이라는 기본 명제에 입각해서 대소장단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신하 된 자들이 그러한 대계를 살피지 않고 당장의 임금의 심기나 임금 개인의 안위만 신경쓴다면 아래로 관리에서부터 대다수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국가를 통솔하는 본이 서지 않고 영이 서지 않을것입니다.


 

忠孝烈國之大綱이라.

이나 國亡於忠하고 家亡於孝하고 身亡於烈하니라.

충효열은 나라의 큰 기강이니라.

그러나 나라는 충() 때문에 망하고 집안은 효() 때문에 망하며 몸은 정렬(貞烈) 때문에 망하느니라.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때문에 집안은 망하고 貞烈 때문에 몸은 망하는것일까요.

상제님의 말씀은 충효열이 나라의 큰 기강이지만 그것이 편중되거나 편벽되게 작용하면 도리어 나라와 집안과 몸을 망치는 원흉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학문을 하는 학자나, 종교를 믿는 신앙자나,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이 중도와 중용을 모르기 때문이며, 혹 배워서 알기는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와 수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중도, 중용이라는 말을 논하고 강조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이나 중요한때에는 사견,사정,사욕에 치우쳐 의식과 감정이 과항되어 중도를 이탈하고 중용을 망각하는 일개 범부로 전락하고 마는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팔만사천법문을 다 버리더라도 불교는 중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깨우쳐주기 위해 생겨났고, 유교의 사서오경을 전부 공부하지 않더라도 유교 역시 중용 하나만이라도 가르쳐 주기 위해 그 옛날 성인들께서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것입니다.

임금을 보필하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보살피는 국가의 신료로서 유성룡선생은 한결같이 중도를 견지하며 대계를 살펴 실행에 옮겼으며, 이항복선생은 잠시 중도를 살피지못했으나 곧바로 중도의 견지를 회복했으며, 이순신장군 역시 장군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들을 아무런 사적인 불만의 표시도 내지 않고 오로지 왜적의 침략에 꺼져가는 국가의 존망을 위해 절망을 희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 초인적인 극한의 인격으로 병사들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한, 불세출의 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그 이상을 초월한 성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장군의 일생을 수놓은, 수많은 삶의 조각들이 범인은 생각지도 못할 중도의 한계를 넓혀 이탈하지 않고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한 처세의 중용을 실천하기 위한 끊임없는 극한의 몸부림의 연속이었다는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욕이나,사견,사정을 앞세우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중도,중용에 벗어난 의견이나 정책을 끝까지 고집하며 임금을 현혹시키고 정론과 간언,충언을 말살시킨다면 이것이 어찌 사람이라 할수 있으며 그것은 저 산속의 배고픈 이리나 승냥이와 다를바없는것입니다.

조선의 역사는 수많은 이리떼, 승냥이떼의 틈바구니에서 홀로 깨어진 의식으로 외로이 싸우다, 쓸쓸이 지는 해와 함께 사라져 간 인물들과의 간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중도와 중용이 그리도 어려운것인가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 아이라도 생각하는 바와 행동하는 바가 사리에 합당하고 명철하다면 그것이 중도이지, 무엇이 중도이겠습니까?


어떻게 경솔히 나라를 버리자는 의논을 내놓는가. 그대가 비록 길가에서 임금을 따라 죽더라도 궁녀나 내시의 충성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이 한번 퍼지면 인심이 와해될 것이니 누가 수습할 수 있겠는가.”


각자 맡은 직분이 다른 바, 궁녀와 내시의 역할이 있고, 임금의 정책을 보좌하는 대신의 역할이 다른바

대신이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내시처럼 임금의 신변만 보살피는 충성을 한다면 그 즉시 중도를 벗어난것이며, 임금이 내시의 충성심에 지나치게 의존해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이 역시 임금으로서 중도를 벗어난것이며, 감정을 가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간혹 빠져들수밖에도 없는, 그 중도를 벗어난 처신과 상황들이 결국은 군주도 패망하고 나라도 망한 역사를 역사는 한결같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춘추오패중의 한 사람인 제환공이 입맛이 없을 때, 자신의 자식을 삶아 바친 역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거세하여 내시가 되어 제환공을 모신 수초라는 내시가 있었습니다.

관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식을 죽인 자는 임금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며,

역시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몸을 천하게 여긴 수초, 역시 임금께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들을 멀리 하라고 간언했지만

제환공은 역아와 수초가 자신을, 제 자식보다 제 몸보다 더 위하며 충성한다고 믿었기에 그들을 곁에 두어,

훗날 역아,수초,개방 등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키자 깊숙한 궁궐에 유폐되어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당한채 물한모금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어죽어 수개월동안 벌레가 들끓도록 그 시체가 방치되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 사례를 보더라도 정치의 세계에서도 중도의 현실을 예리하게 직시하는 관중이 있는 반면, 인간사의 평범한 중도를 이탈해도 너무 이탈한 역아와 수초의 , 자신을 위한 옳은 인줄 알았던 제환공은 역시 잘못된 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지 않고 내면을 꿰뚫어보는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그것이 옳던 그르던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기분과 의중에만 기준을 두거나, 혹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각기 이해득실에 따라 의견이 사방팔방으로 나뉘고 분분해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을 수도 없이 연출하며,

권력을 가진 권신이 혹은, 정도를 이탈한 군주가 오판을 해도 감히 직언과 충언을 하지 못하는 것이 망하는 국가, 망하는 조직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 모두가 공동체의 규범과 규약이라는 세계관이 결여된 소인들의 노예근성이며, 그것은 다분히 썩어빠진 특권의식에서 연유하는것이라 봅니다. 그 특권의식의 뿌리가 가장 심화된것이 조선의 양반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양반,상놈,서자,남존여비 이른바 글을 읽고 배운 사람들이 참 지독하게도 그것을 유교의 법도로 체계화시키고 그것이 조선을 지탱하는 반상의 구별이며 근본이라고 배운 사람일수록, 나이 든 어른일수록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문제는 그 법도를 스스로(조선백성)에게만 엄격히 적용시키는 악순환의 우를 범하며, 세계적 보편적가치관을 추구하지 않았던 맹목의 오류라고 봅니다.

그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국제정치(신라와 당나라, 조선과 명나라)라는 집안 바깥의 큰 무대(외교)에서 패배한 위정자들의 교묘한 정치적술수(자신들만의 기득권인 학연 혈연 지연의 좁은 연대감과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사대주의에서 기원했다고 봅니다. 설사 민족,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한쪽 팔, 다리가 잘려나가 불구가 되어도 내 한몸, 내집안이 속한, 내 당파의 기둥뿌리만 안전하다면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지배층 기득권자들의 정치권리의 남용이 국가적으로는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역사를 통해 알수 있으며, 결국 지금도 민족의 존속, 국가의 존속이라는 존엄한 명제 앞에서 천사의 얼굴을 가장한 기득권층의 세력들과, 양심적이고 보편적 세계관의 시민의식과 혁명적 의지를 가진 세력과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라 생각합니다.

악랄한 양반상놈서자의 세계에서 무슨 개인의 창의성이 나오고 자발적계몽이 나올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악조건의 환경에서 이순신장군이나, 장영실, 유성룡선생, 그 외 수많은 이름모를 우국충정의 인물들이 나온건

어디까지나 제도적 여건이나 전 구성원의 의식이 활성화 된 토양이나,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단지, 조선의 백성이라는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에서 자생적으로 나온것이지. 국가와 사회지도층, 남녀노소 전 계층이 어우려져 우리모두는 각자 맡은 일은 다르지만, 하나의 평등하고 존엄한 공동체(조선)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연대의식에서 비롯한 사회적목표의 환경에서 나온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민족이 우리사회가 무엇보다 시급히 회복해야 될 문제가 이 문제라고 봅니다.



















현포 16-01-14 14:16

 

... 특권의식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덧씌워진 가식을 존중하고 자신도 그 가식으로 존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식의 졸렬한 축소지향적심법입니다. “네가 죽어야만 내가 산다”라는 상극정신을 교묘하게 학문의 이름으로 빗대고, 사상의 이름으로, 통치이념의 원리로 대부분의 기간을 둔갑시킨 사회, 국가가 조선(조선 중,후기)이라는 나라였습니다.
그 결과 개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조선이 당시 세계역사의 변방이었던 왜놈들과 청나라군대에 임금까지 쫓기고 구고삼배의 치욕을 당했던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성룡은 노비조차도 인간으로 바라보는 양명학에 끌렸음에 틀림없다. 유성룡이 훗날 영의정이자 도체찰사로서 노비 중용을 주장하는 혁명적 정책을 제시한데는 이 시절 양명학을 읽으면서 받은 충격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르네상스] “14∼16세기(1300년 ~ 1600년)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
-중략- 과학적 측면에서 보는 르네상스의 중요성은 근대과학의 진원지로서가 아니라, 종래의 학자적 사고의 전통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직인(職人)의 전통이 결합하는 계기가 되어 실험과 실용의 정신을 낳았다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르네상스 정신은 중세(476년-1453)년를 이어온 과학의 변화와 더불어 16 ·17세기의 J.케플러, 갈릴레이 등을 낳게 하였으며, 이는 다시 뉴턴으로 이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문주의자의 활동과 각국의 르네상스 (두산백과)

당시의 조선의 학자, 사대부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유성룡선생께서도 양명학을 보고 나서야,
휴머니즘과 실용적인 인재등용에 기반한 노비중용이라는 혁명적사고를 했다는 점을 봐도 알수가 있습니다.
1492년 콜럼부스는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디디고,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1522년 마젤란은 세계일주를 마쳤으며, 임진왜란은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중략- 동인도회사를 먼저 설립한 곳은 네덜란드이며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커피·사탕·쪽·면직물 등을 수입하였다. 하지만 여러개 무역회사가 경쟁적으로 무역에 나서자 가격이 폭락하고 회사들 사이에 경쟁은 치열했다. 그로인해 여러개의 회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는데 세계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인도로 향하는 해상무역은 중상주의를 내세운 유럽 여러 나라의 사활을 건 상업전(商業戰)의 일환을 이루고 있었다. 1602년 이전까지는 개별적인 무역회사들이 설립되었다가 1602년 3월 네덜란드에서는 여러개의 무역회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동인도회사를 출범시켰다. 영국에서도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으며 본격적인 무역에서는 네덜란드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인도회사 [East India Company, 東印度會社] (두산백과)

당시 서유럽문명권은 중세라는 시대를 빠져나와 르네상스와 대항해기술로 지구라는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때 조선은 성리학의 절대세계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때였습니다. 비록 그들이 약탈이라는 비문명적 수단을 썼지만
현실이라는 세계는 약탈자와 약탈을 당하는 피정복자도 힘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점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세계관과 진취적인 세계관이 결여된 민족,사회,국가가 역사의 현실앞에서는 얼마나 허약하고 초라한 실패자,낙오자가 되는지는 1592년 임진왜란을 맞은 우리 조상들의 조선을 봐도 뚜렷이 알수 있습니다.

(지금의 증산도 도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제님진리를 이 세상에 접목시키기 위해서 먼저 이 세상을 알아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천하사일꾼들이 천하를 공략할 독창적 마인드로 상제님진리와 세계를 통찰하고 통합해야 할 원대한 작업의 새싹이 움터야 할 환경조차 짓밟아버리고, 진리가 오로지 종정님 한 사람의 개인 사유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판안,판밖이나,세상사람 누가 봐도 이해되지 않고 생뚱맞은 일들이 서나파의 도정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지구 동쪽 끝 극동의 협소한 지역적 우물에 갇혀 성리학의 세계관만 알고 그것을 자신들의 통치논리로 둔갑시킨 사대부와 양반, 고지식한 유학자들, 이들을 싸잡아 기득권층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몇몇 유성룡선생과 정약용선생과 같은 수많은 인물들이 세계시민의 보편적 사고관과 이성적인 개혁적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당리당략이라는 뿌리깊은 기득권층의 모함과 질시에 목숨 연명하기도 힘들었을것입니다.
성리학이 훌륭한 학문이지만, 이 학문의 세계에 지배층,기득권자들의 정치논리가 끼어들면서 성리학을 우물속으로 쳐박아넣고 말았던것입니다. 그것이 임진왜란을 겪으며 사회지도층이 반성은 하지 않고, 날마다 파당을 지어 집안싸움하며
볼썽사나운 꼴만 연출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결정적 망국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우리가 퇴계 이황, 율곡 이이같은 훌륭한 성현을 배출한 조선의 자랑스런 후손이라고 자부하기 이전에
당시,명나라 청나라는 물론, 지금의 중국 지도자들은 자신들도 존경하는 뛰어난 성현들의 나라, 조선과 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훌륭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배출한 성현에 걸맞지 않게, 각자 자기들만의 조그마한 이해득실에 따라 내분이 심하고 서로 싸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예리하게 지켜보는것이 오늘날의 엄연한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오선위기의 훈수가 천지공사로 질정되었다 해도, 그것은 대국적인 천지공사의 틀일뿐 그 틀속에서 자체적으로 응용하고 변통해야 할 수많은 주체적인 과제들까지 천지공사의 운명론에 맡기는 수동적인 자세는, 글로벌 역학관계속의 대한민국이나 성사재인해야 하는 증산도 도정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개개인은 물론이고 단체와 조직을 이끌어가는 최고 리더인 지도자가 통합적인 인문학적 세계관과 통찰력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거니와 자칭 황극제라 불리고 싶어하는 종정님은 언제인부터인가 모든 도정정책의 방향과 조직의 효율을 밖으로 향해,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정님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스템으로 전락시켜 안으로 안으로 폐쇄되고 쪼그라드는 도정으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부종정님과 혁명가에게 중요도정을 맡기셨다면 그 분들은 이런 식으로 도정을 이끌지 않았을것입니다.
도대체 두 분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 출교에 처하고 내쳤는지 대다수의 신도들은 그 자세한 내막도 모르게
간부들은 쉬쉬하고 일방적으로 인신공격과 매장하기에만 급급한 상황은 분명, 바로잡혀져야만 하고 신앙세계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서나파의 간부들 중에는 간혹 진실을 알면서도 말못하고 대다수는 쉬쉬하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지방의 포감,간부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마녀사냥에 동참하듯 신중하지 못한 처세를 하는 것이 오늘의 도정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반드시 밝혀지게 될것입니다.
그래야 종정님 개인의 허황된 아집으로 어지럽게 꼬인 상황을 모두 풀어내고 다시금 태사부님께서 뿌려놓으신 천하사 도정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될것입니다.
개벽이 얼마남지 않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시간이 없는 것은 이 지구상에 또 다시 태사부님을 대체해 누군가 다시 상제님사업의 씨를 뿌릴수도 없거니와
설혹 그런 정신나간 인간이 나온다 해도 그 씨를 뿌릴 시간이 없다는것입니다.
우리 성사재인의 일꾼들이 다시는 그 사람과 그 시간이 아예 없음을, 명철하게 앎으로서 말없는 천지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것은, 우리 모두가 천지로부터 겸손함을 부여받고 태어났다는 자성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세계라는 현실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어떻게 인식해 나아가는가! 에 따라서 왜 개개인은 인간양심의 회복을위해 노력해야 하고, 왜 보편적이고 균형적인 이성 회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서서히 가지게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이 기초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종교(서나파)만이,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우물속의 개구리밖에 안될것입니다.
그러한 간단한 예가 지금의 증산도(서나파) 도정에서도 일어나고 있는것입니다.
거듭되고 반복된 사오미개벽타령이 얼마나 허망한것인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이 스스로 정립해야 하는
세계관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종정님의 입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영원히 좁은 시야의 헛꿈에서 벗어나지못할것입니다.
상제님신앙, 상제님진리는 각자가 만들어가는것이지, 종정님의 입에서 모든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유치한 마패와 병정놀이에 온 정력을 쏟아붇는 종정님과, 아무것도 모르는(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성도님들 개개인도 자신의 힘과 노력, 의지로 증산도가 속해 있는, 또는 증산도를 둘러싸고 있는 이 거대한 세계의 실체에 대해 아무도 탐구하거나 관조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고 오로지
도둑놈심보 마냥 종정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는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물안의 증산도밖에 모르며 증산도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눈감고 귀를 닫는 옹고집의 맹신자밖에 안된다는것입니다.) 그 알려고 하지 않는 성도님들의 현주소가 지금의 서나파입니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
옛말에 서울 가본 사람과 안가본 사람이 싸우면 안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종정님은 상제님진리 중복살림의 지도자로 끝나고 어울리는것이지, 지금은 갈수록 시대와 현실에 뒤떨어지며 오히려 신도들을 맹목과 맹종(盲從-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無條件) 남을 따름)으로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중복시절의 종정님교육에는 그 시절에 맞게끔 체계적인 상제님진리의 정리와 나름대로 보편적 세계관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어 당시의 신도들에게 상제님진리를 보는 안목을 틔워준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는 중복지도자의 교육능력이 한계에 다다른것도 사실입니다.
그토록 원하던 개벽은 오지 않고, 오히려 세계라는 현실은 나 보란 듯이 성숙과 매듭의 시루 속으로 흥미진진하게 한창 익혀들어가고만 있을뿐인데, 이 현실이라는 보편적 세계관과는 동떨어진채 아직도 개벽조급증의 끈을 놓지 않고, 저잣거리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혹세무민의 마패를 도정의 전면에 내세우는것만 봐도 분명 중복지도자의 사명이 다했음을 열 번 백번, 깨닫고도 남을것입니다.
상제님신앙을 시작하면서 초복이든 중복이든 말복이든 상제님, 태모님말씀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상제님진리, 상제님말씀에만 파묻혀 세상과 동 떨어진채 고립되어 신앙을 하라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즉, 증산도에, 상제님의 진리에 심취할수록, 어떻게 하면 상제님진리를 이 거대하게 흘러온 세상에 접목시킬수 있을까 라는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꿈꾸어야 할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현실의 상황은 어떤 상태일까? 라는 의문과 발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것이며, 신앙하는 사람, 천하사 하는 사람의 기초적인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위원회에서 발간한 통합경전을 숙독하는 것은, 매달리는 신앙에서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전환되는 인식의 경계를 확대하고 사고의 폭을 유연하게 넓히는 분명한 첫걸음이 될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의 종정님은 성도님들이 그러한 길로 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 한 채 언제 파탄이 날지 모르는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개벽이 아니면 이야기가 안되고 조직과 단체의 통솔이 안되는 종정님, 마패와 별계급장, 하이고~~~ 말이 안나옵니다.


통합경전에 수록되어 있는 보천교 경의 상제님말씀을 해석해보았습니다.
각자 상황인식과 시야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수 있겠지만,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보며,
감히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으로 세상에 누가 되지 않는 마음으로 해석을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상제님말씀을 음미하고 음미해서, 깊이 받들면 받들수록 철저히 천지공도에 입각한 무서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규구(법도)중에 있는 너에게 친히 간여하고 싶지 않노라."

세상에 때가 이르러서야만 깨닫게 될 너에게, 때가 되지 않았는데 그 세상이치(법도)를
겪어야만 하는 너에게 나는 사사로이 무엇이 옳고 그르고, 짧고 길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노라.
*규구[規矩] 지름이나 선의 거리(距離)를 재는 도구(道具)

"네가 행복을 구하느냐?
너의 행복은 너 스스로를 증진시키나니 크게 지혜롭지는 않을지라도 어찌 크게 어리석으리오.
오로지 일심으로만 능히 얻을수 있고 빛날 수 있느니라."

행복을 구하는 자는 스스로를 개발하는 것이니 크게 지혜롭지 않아도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오로지 일심이라는 것은 한곳에만 매몰되어(판안 봉사들), 마음과 정성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너의 행복을 구하려거든 주위를 둘러보고 세상을 둘러보아 모든 사람이 나보다 먼저 행복하기를 바라야 하느니라.
그런 일심이라야만 진정한 행복을 얻을수 있고 그 행위 또한 빛나리라....
지도자가 신도들을 능동적으로 개벽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대인으로 양육하지 않고, 오히려 개벽에 쫓기는 졸장부로 만들어버리고 마패로 욕심을 부추겨, 아무런 근거없이 상제를 팔아 또 다른 신분의 차별(허황된 육임군,별 계급장)을 약속해도 그 진실과 허실을 파악하여, 그것이 내 스스로 구하는 행복증진의 결과가 아니라면 과감히 거부하고,
다시 시작하는 길을 가야 할지언정 초심의 나, 본연의 나를 회복하여 어둠일지라도 광야로 나아가 혁명의 대열에 동참하라. 맹신자가 우글거리는 우물속(편향된 일심,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烈)에서는 결코 너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수 없으리라.

"이미 병을 베풀었다면 또한 약도 베풀도록 하라. 장차 그 덕을 논할것이니라.
법률로써 강제한 연후에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으로 갈증을 구제하는 것은 내가 하지 않노라."

중복지도자가 어느 때부터 초심의 열정과 겸손의 덕을 잃어버리고, 사오미개벽과 독불장군의 기형적이고 패권적인 도정으로 신도들의 신앙과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샤머니즘,토테미즘보다 못한 정체불명의 마패쪼가리로 신도들을 농락했다면, 이제서라도 상제님 진리의 무한한 변화성(세 살림도수)과 영속성을 깨닫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그것이 곧 약이 될것이며, 상제께서도 만인에게 약을 베푸는 그 용퇴의 덕을 논하시겠지만, 물러나지 않고 인심(신도들의 인심)이 폭발할때까지 버티다가 강제로 물러나게 된다면 상제께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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